[인터뷰] ‘살아있는 전설’ 홍란이 말하는 진심

김도헌 기자

입력 2020-06-08 11:33 수정 2020-06-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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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란. 사진제공 | KLPGA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16년 차. 2005시즌에 데뷔해 2020시즌까지 단 한 시즌도 투어 카드를 잃지 않았다. 최장기간 연속 시드 유지와 최다 경기 출장(319대회)의 대기록을 갖고 있다. 그가 대회에 나설 때마다 KLPGA의 역사가 새로 바뀐다.

1986년 생으로 올해 나이 서른넷, 홍란(삼천리)이 걷고 있는 길이다.

2018년 3월 브루나이 레이디스 오픈을 마지막으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지만 정규투어 통산 4승의 감격을 누렸다. 319번 출장 경기에서 2위를 차지한 건 5번. 톱5에도 30번 들었고, 수준급 성적의 잣대인 톱10에도 64번이나 이름을 올렸다. 톱10에 오른 비율은 전체 출전 경기의 약 20%. 5번 나가면 그 중 1번은 톱10에 들었다. 단순히 오랜 기간 뛴 것뿐만 아니라 실력도 빼어나다는 것을 기록이 증명한다. 16시즌 동안 총 벌어들인 상금은 22억7787만5711원.

그러나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시간이 흐르면서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는 부쩍 줄었다. 이번 시즌 평균 비거리는 205.5m, 전체 124위에 불과하다. 그보다 드라이버 거리가 짧은 선수가 몇 안 된다. 한창 멀리 나갔던 2014년 225.5m에 비한다면 정확히 6년 만에 20m가 줄었다.

거리는 줄고,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강하다. 7일 끝난 제10회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롯데 스카이힐제주CC·파72)에선 1라운드(71타)~2라운드(67타)~3라운드(62타)~4라운드(74타), 합계 274타로 공동 5위에 올랐다. 새 시즌 3번의 대회 출전 중 가장 좋은 성적. 그러나 3라운드에서 개인 생애 최고 기록인 10언더파(62타)를 몰아치며 단숨에 공동 1위에 올랐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8일 연락이 닿은 그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3라운드 종료 후 “모든 선수는 우승을 목표로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최종 라운드를 돌아보며 “퍼팅이 잘 안 되면서 전체적으로 흔들렸다. 생각대로 플레이가 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후회하고 아쉽다고 한들 별로 도움 될 게 없다”면서 “마지막 18번 파5 홀에서 다행히 버디로 게임을 끝내 좋은 기분으로 다음 대회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위안을 삼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소속으로 모처럼 KLPGA 투어에 출전한 동갑내기 지은희(34·한화큐셀)와 나눈 뒷얘기도 털어놨다. “은희하고 ‘하루에 몰아치면 안 돼’라고 말하며 서로 웃었다.” 지은희는 이번 대회에서 첫 날 9언더파를 몰아치며 공동 1위에 올랐다가 이후 주춤, 최종 10언더파 공동 17위로 대회를 마쳤다. 홍란은 어렸을 때 지은희와 2부에서 같이 뛰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가 2위, 지은희가 3위로 정규투어 시드를 획득했고 현재 무대는 다르지만 둘 모두 변함없이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휴대폰을 통해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지은희와 나눈 이야기를 전할 때, 이미 우승을 놓친 아쉬움은 털어버린 듯 했다. “페이스가 전반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시즌 초에 좋은 성적을 내면 자신감을 이어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우승은 놓쳤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6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변함없이 꾸준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비결이라고까지 할 건 없을 것 같고…”라고 잠시 뜸을 들인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쉬는 날 클럽은 잡지 않아도 근력운동은 빠지지 않고 했다”면서 “큰 부상 없이 지금까지 투어 생활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두 번째로 꼽은 건 마음가짐. “쉴 때, 골프에 빠져있지 않으려 한다. 내 삶과 골프를 분리해서 밸런스를 잡으려고 노력한다.” 누구보다 ‘길게’ 투어 생활을 하고 있지만 골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 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오히려 더 오래 함께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세 번째는 스폰서 덕분”이라고 했다. 메인 스폰서인 삼천리와 인연을 맞은 건 올해로 7년째. “삼천리는 홍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선수 양성에 목적을 두고 후원을 해 주신다. 만약 삼천리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는 정말 큰 행운이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따로 매니지먼트사를 두지 않고 있음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제는 걸어온 길보다 남아있는 길이 짧은 게 냉정한 현실. 이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실력이 안 된다면, 당연히 그만 두는 게 맞다. 내가 만약 시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런 끝이 온다면 순응할 것”이라는 말에는 프로로서 당당히 능력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 순간까지 필드에 나서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러면서 마음 속 깊은 곳의 속내도 털어놨다.

“주변에선 400경기 출장을 목표로 하라고 하지만, 사실 난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300경기를 목표로 하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온 것도 아니다. 400경기를 목표로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그 숫자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그리고 그것 때문에 골프가 하기 싫어질까 봐 그게 싫고 두렵다. 400경기에 뛰려면 앞으로 3년 이상 더 뛰어야 가능한 숫자다. 숫자에 목표를 두기보다, 언젠가 실력이 안 돼 은퇴하게 되더라도, 그 순간까지 후회 없는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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