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43% 신속 치료… K방역 이끈 ‘생활치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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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6-04 03:00 수정 2020-06-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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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30개 개설… 코로나 입원병상 부족 해결사로 각광

경기 안성시에 위치한 경기국제1생활치료센터(우리은행 연수원) 앞에서 의료진이 새로 입소하는 코로나19 경증환자들의 검체를 채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죄송하지만 남는 병상이 없습니다.”

올 3월 초 대구지역 보건소 직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입원 병상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러나 시내 병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달 1일 대구지역 누적 확진자는 2569명에 달했지만, 입원환자는 898명에 불과했다. 병상이 부족해 1600여 명은 입원을 기다려야 했다.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상황실을 통해 다른 지역 병상을 찾았다. 입원에 며칠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자택에서 대기 중이던 중증환자 3명이 사망했다. “빨리 입원시켰으면 구할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이 보건당국 관계자와 의료진의 마음을 짓눌렀다.


○ 입원대기 몇 시간으로 단축
입원대기 환자 중 세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3월 1일 보건당국은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 개소를 발표했다. 병원이 아닌 외부 격리시설에서 코로나19 경증환자를 치료하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다음 날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첫 생활치료센터가 마련됐다. 9일은 생활치료센터가 가동된 지 100일째다. 그동안 전국에서 30개의 생활치료센터(정부 운영 19개, 지자체 11개)가 개설됐다. 이곳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1일 기준 총 4927명. 전체 확진자의 43%가 생활치료센터를 거쳐 간 셈이다. 이 중 3933명이 완치돼 퇴소했다.

생활치료센터 표준화 모형 개발에 참여한 양유선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박사는 “생활치료센터의 가장 큰 성과는 속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전파 속도가 빠른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상 환자를 최대한 빨리 분류하고 격리하는 게 중요한데 생활치료센터가 이를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실제 센터 개소 후 입원까지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단축됐다. 대구1·2생활치료센터 의료지원단장을 맡았던 이재태 경북대병원 핵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초기 입소자 632명은 진단검사 이후 입소까지 평균 7.8일이 걸렸다. 하지만 센터가 자리 잡고 나서 대기시간은 수 시간으로 크게 줄었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센터가 생긴 뒤로는 보건소 직원들이 병상을 찾아 ‘전화 뺑뺑이’를 돌리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경증환자들이 생활치료센터로 분산되기 시작하면서 한때 2335명(3월 4일)에 이르던 대구지역 대기환자 수는 8일 만에 1000명 아래로 내려갔다. 3월 말부터는 대기환자가 사실상 사라졌다. 이에 따라 긴급한 치료를 요하는 중증환자들도 신속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재태 교수는 “모든 코로나19 환자를 병원에 수용하려 했다면 의료체계가 마비됐을 것”이라며 “센터 개소 이후 빠른 환자 격리가 이뤄져 지역사회 확산을 조기에 억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센터 내 코로나19 감염 0건
사실 환자를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 입원 치료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례가 없는 시도이기에 환자 분류와 관리부터 치료, 인력운용, 숙식, 폐기물 처리까지 모든 운영방안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하나라도 빈틈이 생기면 감염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비전문가가 맡을 순 없었다. 이창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생활치료센터반장은 “병원도 아닌 외부시설에서 환자를 관리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의료진이 적지 않았다”며 “감염내과 전문의와 대형병원장들을 일일이 설득하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다.

보건당국은 중국 우한(武漢) 교민들이 격리돼 있던 임시시설도 참고했다. 하지만 우한 교민들이 단지 고위험군이었던 것과 달리 생활치료센터 입소자는 확진자라는 점에서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했다. 정부는 센터당 40명 이상의 의료진을 배치해 교대로 근무하도록 했다. 이동형 X레이도 설치했다. 확진자와 외부인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병실 내부에 체온계, 혈압계 등 자가진단 키트를 비치했다. 또 센터별로 병원급 책임 관리기관을 정했다.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주요 대형병원들도 자문을 맡았다.

촘촘한 관리 덕에 1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센터 내 감염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경북·대구2생활치료센터에서 의료봉사를 한 손장욱 고려대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수천 명의 환자와 수백 명의 의료진이 한 공간에서 장기간 함께 있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라고 말했다.


○ 경증치료 ‘국제 표준’으로
해외 각국은 한국의 생활치료센터를 주시하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이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최근 방영했다. 일본 보건당국은 올 4월 생활치료센터와 유사하게 코로나19 경증환자를 호텔 등 숙박업소에서 수용하는 지침을 만들었다.

정부는 코로나19 장기전과 다른 감염병 유행에 대비해 생활치료센터 표준모형을 만들고 있다. 완성되면 이를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안건으로 상정할 계획이다. 국제 표준모형이 된다는 것은 각국이 감염병 경증환자를 비의료기관에서 격리 치료할 때 생활치료센터 모형을 참조하게 된다는 뜻이다. 유보영 중수본 생활치료센터반 환자시설1팀장은 “법령 개정을 통해 생활치료센터 지정요건과 절차에 대한 규정을 명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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