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청년 김대건의 고민은 현재 젊은이의 고민”

당진=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6-01 03:00 수정 2020-06-0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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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낳은 ‘한국의 베들레햄’… 내년 탄생 200주년 행사 준비 활발
“큰 사랑으로 한 몸같이 주를 섬기라”… 순교전 편지글 신자들에 큰 가르침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도 찾아와 청년들에 ‘기억과 희망’ 메시지 남겨


김대건 신부 생가가 있는 솔뫼성지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으로 한국 가톨릭사에서 기념비적 공간이 됐다. 이용호 신부는 “당시 교황께서 솔뫼성지를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생가 앞에는 기도하는 교황 동상이 들어섰다. 당진=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충남 당진 솔뫼성지는 ‘한국의 베들레헴’으로 불린다. 솔뫼는 소나무 언덕이란 뜻이다. 이 성지에는 한국 최초의 사제이자 25세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생가가 있다. 이 집안에서만 11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인 내년을 희년(禧年)으로 선포하는 등 가톨릭교회 차원의 기념과 쇄신 운동을 전개한다. 희년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제정된 해다. 5월 18일 솔뫼성지를 담당하고 있는 이용호 신부(53)를 만났다.


―솔뫼성지가 바빠질 듯하다.

“솔뫼뿐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가 힘을 모으고 있다. 올해 11월 한국 교회의 상징인 서울 명동대성당 희년선포미사에 이어 김대건 신부를 조명하는 행사들이 이어진다.”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 성직자들을 보호하는 주보성인(主保聖人)이 바로 김대건 신부님이다. 그분의 삶과 신앙이 한국 교회 전체에 특별하다는 의미다. 주교회의 차원의 준비위원회가 꾸려졌고, 전국 교구 대표와 평신도들도 참여해 20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새삼 놀라운 것은 김대건 신부가 순교 당시 25세의 청년이라는 점 아닐까.

“많은 분들이 ‘젊은 나이에 순교할 수 있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진다. 왜 순교했을까, 그런 고민을 신자뿐 아니라 한국 사회와 공유하는 것도 탄생 200주년의 숙제다.”

―죽음을 앞둔 김대건 신부의 갈등은 없었을까.

2014년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 있는 김대건 신부 생가를 찾아 기도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전교구장인 유흥식 주교, 이용호 신부(왼쪽부터). 이용호 신부 제공
“신부님이 감옥 안에서 쓴 편지를 보면 처음에는 살고 싶어 했다. 조선 정부에서도 지식이 있는 젊은이를 죽이는 게 아까워 배교(背敎)를 설득한다. 옥중 편지를 비롯한 자료를 보면 신부님은 나중에는 순교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김대건 신부는 죽음을 앞두고 편지글을 남겼다.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그 편지는 신자들에게 큰 가르침이었다.

“신부님은 가톨릭이 전래된 이후 처음으로 얻은 신부, 바로 영적 아버지였다. 사제가 없는 시기에 그분의 유지였기에 글을 아는 이들은 수도 없이 베껴 썼고, 모르는 이들은 말로 외웠다. 착실한 목자는 바로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1821∼1861)였을 것이다.”


―우리는 ‘청년 김대건’을 어떻게 봐야 하나.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다룬 영화 ‘저 산 너머’를 연출한 최종태 감독과 김대건 신부님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200년 전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와 세계 강국의 입김에 시달리는 오늘날 한반도의 상황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까? 지금이 순교의 상황은 아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젊은이들의 고민은 여전할 것이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그때 왔던 젊은이들이 매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데이’ 모임을 갖는다. 그때 만나 결혼하고 아이 세례명을 프란치스코라고 지은 이들도 있다. 화동이었던 아이들은 아직도 ‘교황 할아버지’라고 한다. 그 대회 이후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분들이 적지 않지만, 교황께서 주신 메시지가 잊혀지는 것 같아 아쉽다.”


―그 메시지는 무엇인가.


“각종 행사에 참석하면서 4박 5일간 교황이 주신 메시지를 계속 읽게 됐다. 한국 사회를 바라봤던 교황님의 눈이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기억과 희망’이다. 세월호 참사 등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하고, 미래를 위한 희망도 버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제 서품 뒤 줄곧 성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성지전담 신부’인가.

“본당 신부가 좋다는데 제대로 못해 봤다(웃음). 솔뫼에서만 12년째다. 앞으로 어떤 일이 주어질지 모르지만 솔뫼는 기도하는 성지로 가꾸고 싶다. 관광객들도 많이 찾지만 미사가 쉼 없이 진행돼 경건한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올 11월 복합예술공간이 들어선다. 공연과 전시, 기도와 집회가 가능해 비신자들에게도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당진=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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