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성, 첫 그랑프리 3연패…막을 자 없었지

정용운 기자

입력 2020-05-27 05:45 수정 2020-05-27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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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성.

■ 경륜에도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2000년 이후 ‘지존 시대’ 연 스타들

지성환 ‘4대 천왕’ 제치고 독주 체제
바통 이은 현병철·홍석한 지존 시대
조호성, 기록 갈아치우고 황제 등극

경륜에 다른 스포츠 종목처럼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누가 입성할까. 1994년 경륜 원년부터 함께 한 박창현 최강경륜 발행인이 연도별로 은륜스타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시리즈 두 번째로 2000년 이후 ‘지존 시대’를 연 경륜스타들을 알아본다.


● ‘지존 시대’ 연 지성환·현병철·홍석한

2000년 이후 엄인영(4기)이 주춤하며 창원팀이 수도권에 밀리기 시작할 무렵 등장한 지성환(6기)은 한 차원 다른 기량과 함께 돌풍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km 독주 금메달리스트인 지성환은 페달링부터 남달랐다. 스타트할 때 엉덩이를 들지 않는데도 순간 스피드가 뛰어났고, 종속은 한 바퀴 승부를 나서도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죽마고우였던 원창용(2기)을 따라 창원에 둥지를 튼 지성환은 단숨에 당시 경륜 4대 천왕(엄인영, 주광일, 김보현, 원창용)을 물리치며 밀레니엄 시대 첫 그랑프리 우승자가 됐다. 이는 벨로드롬에서 처음으로 1인 독주시대가 열리게 된 사건으로, 팬들은 그를 ‘경륜 지존’이라 불렀다. 하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이후 급격히 기량이 떨어지며 마크 추입 위주의 평범한 선수로 전락해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성환의 바통을 이어받은 선수는 국내 최고의 스프린터란 찬사를 받던 현병철(7기)과 홍석한(8기)이다. 현병철은 20 01년 그랑프리에서 우승했고, 홍석한은 2002년과 2003년 ‘두 번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그랑프리의 불문율을 깨고 2연패에 성공했다.

홍석한은 초등학교 시절 왼쪽 다리 마비 증세를 호전시키기 위해 올라탄 자전거가 인생을 바꿔놓은 케이스라 화제가 됐다. 2016년에는 누구도 엄두 못 낼 500 승이라는 대업을 이뤘고, 현재도 그 숫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 ‘벨로드롬의 황제’에 오른 조호성

경륜 역사를 크게 양분화한다면 조호성(11기)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눠볼 수 있다. 그의 등장으로 벨로드롬이 떠들썩했는데 중장거리 출신은 경륜에서 통할 수 없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조호성은 세계대회(월드컵) 우승자답게 데뷔 초부터 승승장구했다.

처음 출전한 2005년 잠실 경륜장에서 열린 마지막 그랑프리 대상경륜을 접수했고, 광명으로 옮긴 후에도 2년 연속 우승하며 그랑프리 3연패를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최다 연승, 상금 등 경륜의 모든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명실상부한 ‘벨로드롬의 황제’로 등극했다.

조호성은 그야말로 약점이 없었다. 전법은 선행부터 추입까지 자유자재였고 경주 중 갑작스러운 위기 대응능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때 조호성의 연승을 저지하기 위해 특정지역 서너명이 견제해도 특유의 각력과 전술로 응수하며 많은 명승부를 만들어 냈다.

2008년 조호성이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갑작스레 은퇴를 선언한 후에는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가 됐다. 1980 년 이후 출생자들의 전성시대가 열리며 이전엔 보기 어려웠던 4점대의 무시무시한 고기어도 출현했다.

수도권과 경상권으로 양분되었던 지역 구도에 호남팀이 가세하는 등 개인 못지않게 지역 다툼 또한 활발해졌다. 노태경(13기), 김민철(8기), 송경방(13기), 이욱동(15기)의 접전을 뒤로 이명현(16기)이 1인자 계보를 2011∼2012년까지 이어갔고, 이명현이 기흉으로 주춤한 이후엔 박병하(13기), 박용범(18기), 이현구(16기) 등이 권좌 다툼을 벌였다. 최근 4년은 또 정종진(20기)의 독식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과거에 비하면 선수층이 확실히 두터워졌다.

정용운 기자 sadz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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