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밝히는 연등처럼… 힘겨웠던 모두에게 자비정신 깃들기를

동아일보

입력 2020-05-22 03:00 수정 2020-05-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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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가 꽃피는 세상] - 부처님과 자비정신
지혜롭고 자비로운 존재 부처님
‘자비’는 우정-공감 뜻하는 단어
생명 벗 삼고 아픔에 공감하는 부처님의 자비정신 되새겨보길


불자들이 최근 부산 삼광사를 찾아 여러 빛깔의 연등 아래에서 기도하고 있다. 연등을 다는 것은 부처의 지혜를 빌려 번뇌와 무지로 가득찬 세계와 자신의 내면을 밝게 비추자는 염원도 담고 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이미령 불교칼럼니스트 경전번역가
“이왕이면 좋은 자리에 우리 가족 등을 달고 싶어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연등 접수를 할 때면 이따금 이런 요청을 받습니다. “대웅전 안 부처님 정면이면 좋을 텐데. 하기야 그 자리는 돈 많은 사람들 차지겠지요?”

그 기분 알 만합니다. 그러잖아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 때문에 늘 마음이 상해 있는데 부처님에게마저 차별받는 것 같기 때문이지요. 도대체 비싼 등을 좋은 자리에 내걸면 복을 더 많이 받는다는 구절이 팔만대장경 어디에 적혀 있을까요? 불교 칼럼을 쓰는 입장에서 경전을 숱하게 뒤져봤지만 그렇게 계산기 두드리는 부처님은 경전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다 등값이며 장소에 차등이 생겨났는지 두고두고 반성해야 할 일이지만 단언하건대 그런 부처님은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놓으시지요. 대웅전 안이나 절 밖 외진 곳이나 모두가 부처님 세상이니 말입니다.

이참에 부처님이란 어떤 존재인지 한 번 짚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부처님을 규정하는 내용은 경전에 아주 많지만 낱말 두 개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혜와 자비이지요. 부처(붓다)라는 말이 깨달은 자, 깨어난 자라는 뜻인 만큼 부처님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은 지혜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지혜를 설명하는 건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나 자신이 깨달아봐야만 부처님 지혜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 테니 지혜 설명은 접어두기로 하지요. 다만 자비에 대해서는 말할 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비를 사랑이란 뜻을 지닌 하나의 낱말로 알고 있는데 사실 자와 비라는 글자 두 개가 합쳐진 말입니다. 자(慈)는 마이뜨리를 번역한 말인데 우정을 뜻하는 어원에서 왔습니다. 우정이란 상하의 차별을 떠나 있지요. 저 높고 훌륭한 부처님이 저 아래 중생을 향해 내리쏟는 구원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상대방을 나의 벗으로 받아들이는 그 마음, 상대를 나와 평등하게 대하는 우정 어린 마음이 ‘자’라는 뜻인 거지요. 부처님이 제자에게 “나를 그대의 벗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한 경(經)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립니다.

자비에서 뒷글자인 비(悲)는 까루나를 번역한 말입니다. 까루나에는 슬픔, 연민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제 설움에 슬픈 것이 아닙니다. 내 사랑하는 벗에게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고, 그 벗이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니 그게 나의 고통처럼 느껴져서 슬픈 것입니다. 그래서 까루나를 동정(同情)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동정이란 말은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고생하는 것도 서러운데 동정까지 받아야 하니 더 서럽다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거든요. 하지만 동정이란 말에는 같이 느낀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당신의 그 서럽고 힘든 상태를 내가 딱 그렇게 겪었기 때문에 그 아픔을 똑같이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비로운 부처님이란 수많은 생명을 벗으로 삼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존재라는 말이 됩니다.

부처님오신날에 연등을 밝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되새겨보자는 것입니다. 작고 여린 생명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피아(彼我) 사이에 굵고 진하게 긋던 금을 지워버리고, 생명이라는 그 딱 하나의 공통 본질을 보듬는 존재가 되어보자는 것이지요.

세속은 자꾸 나와 남을 구분 짓게 합니다. 남과 달라야 하고 남 위에 서야 하고 남보다 빨라야 한다고 다그칩니다. 이렇게 종일 나와 남을 가르고 우위에 서느라 파김치가 되어 어두운 밤거리에 나서면 봄밤을 곱게 밝히는 거리의 연등이 우리를 반깁니다. 그 연등 아래를 지나다 새삼 깨닫는 사실이 있습니다. 등불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제 불빛을 다른 등에 나눠주면 제 본래 불빛이 줄어들지는 않으면서도 세상을 더 환히 밝힌다는 점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생한 올해는 세상의 병고를 내 아픔으로 함께 앓느라 부처님이 한 달 늦게 오신다고 합니다. 지혜와 자비의 부처님 발걸음에 연등을 밝혀야겠습니다. 병을 앓느라 힘들었던 모든 이들, 돌보느라 고생했던 모든 이들, 고생을 감수하며 묵묵히 꿋꿋하게 견뎌내신 모든 이들에게 그 고운 연등 빛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이미령 불교칼럼니스트 경전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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