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답답한 속내, 물감 짜 풀어내듯… 스타는 그림으로 말한다

김민 기자

입력 2020-04-30 03:00 수정 2020-04-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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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솔비-하정우-밥 딜런-보위… 그림에 빠진 유명 연예인들 많아
“대중미술 저변 확대” 긍정 평가속, “컬렉터 역할에도 관심을” 주문도


유명 인사의 그림은 자기표현 수단으로 그림을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미술의 대중적 저변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수 나얼, 배우 심은하, 가수 데이비드 보위, 밥 딜런, 배우 임하룡, 하정우의 작품. space xx·토포하우스·방송 및 유튜브 캡처
철공소가 많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엔 ‘예술촌’이 있지만 미술계에선 아는 사람만 찾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평일인 17일 이곳 한 건물 지하에 꾸준한 발길이 이어졌다. 가수 나얼이 개인전 ‘염세주의적 낙관론자’를 열고 있는 대안공간 ‘스페이스 엑스엑스(space xx)’였다.

전시장에서 나얼의 콜라주와 드로잉, 설치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30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e메일 신청을 받아 매일 선착순 40여 명만 관람할 수 있다. 찾는 사람 대부분은 나얼의 팬으로 보였다.

연예인의 미술 전시가 이제 익숙한 현상이 되고 있다. 나얼도 이번이 벌써 10번째 개인전이다. 가수 솔비나 배우 하정우 등도 그림을 공개해 화제몰이를 했다. 해외에서도 배우 조니 뎁, 가수 밥 딜런, 데이비드 보위뿐만 아니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자신의 그림을 깜짝 공개한 바 있다.

유명 인사들은 왜 그림에 빠질까? 작품을 보면 직업 특성상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속내를 풀어내는 경향이 보인다. 악성 루머에 시달린 솔비는 심리 치료로 미술을 시작했다. 일기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에 담으며 조금씩 세상에 발을 내디뎠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코미디언 임하룡의 그림엔 눈이 가득하다. 그는 “시선 받기를 원하지만 또 그 시선이 때론 부담스러운 마음을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2007년부터 그림을 그린 하정우는 과거 인터뷰에서 연기하며 느끼는 절실한 감정을 집에 가지고 와 그림에 담는다고 했다.

나얼은 전시장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등 종교적 색채를 과감히 드러낸다. ‘염세주의적 낙관론자’라는 제목도 기독교도로서 자신을 비유했다. 이문정 리포에틱 대표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감사하게 살지만 세상의 불행에 슬퍼하는 종교인으로서의 모습’이라고 평했다.

이들의 활동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친근하게 느끼는 ‘대중 미술의 저변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비친다. 특히 예술을 전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 그림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연예인의 그림 전시는 평소 전시를 보지 않았던 사람도 한 번쯤 미술을 감상하는 첫 경험이 되기도 한다. 최근엔 일반인도 퇴근 후 드로잉이나 풍경화를 그려 보는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한다.

최두수 space xx 대표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반응이 많아 깜짝 놀랐다. space xx는 실험적 작품을 선보여 알음알음 찾는 곳이었는데, 온·오프라인에서 관심의 폭이 훨씬 확장됐다”고 말했다. 나얼 개인전의 관람 신청은 매일 100∼150건이 들어온다고 한다.

다만 연예인의 작품이 그의 명성을 넘어 작품 자체로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평생 작품을 쌓아가는 전업 작가를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작가는 “바스키아가 포함된 컬렉션을 가진 가수 Jay-Z 등 해외 유명 인사처럼 국내 유명인들이 안목을 키워 작품을 후원하는 컬렉터로도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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