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 100년 역사와 나아갈 길]1900∼1945, 근대적 제약산업의 출현

동아일보

입력 2020-04-27 03:00 수정 2020-04-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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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국민의 건강을 지켜온 기업]
갑신정변, 갑오경장 등 거치며 한약업에서 양약 위주로 재편
일제강점기에도 유한양행-금강제약소 등 민족 제약회사 설립


193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인 활명수 포장 장면, 코르크 병마개를 손으로 낱개 포장하고 있다. 한국제약협회 70년사 제공

국내 약업계는 18세기 후반부터 한약업이 융성했지만 개국과 갑신정변(1884년), 갑오경장(1894년) 등 역사적 사건을 거치며 1900년 무렵을 기점으로 의약품 시장이 양약 위주로 재편됐다.

근대적 제약산업의 효시는 1897년 지금의 서울 중구 순화동에 설립된 동화약방(동화약품의 전신)이다. 이곳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브랜드이자 소화제인 ‘활명수’ 등을 제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법인 제약기업은 1913년 한약방을 경영하던 이석모가 한약업자들을 규합해 창립한 조선매약주식회사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 병합된 전후로 일본의 약업자들이 대거 국내로 들어왔고 1912년 약품영업취체규칙 제정 등을 통해 약품취급의 업무범위와 취급자 자격 등을 제도화하며 조선인의 의약품 제조 및 판매활동이 큰 불이익과 제약을 받았다.

조선인 약업자들은 혹독한 차별을 받으면서도 유한양행, 금강제약소, 삼성제약소 등 근대적 개념의 민족 제약회사들을 설립했다. 특히 1926년 영구 귀국한 유일한이 조선 최초의 서구식 제약기업인 유한양행을 설립해 미국 제약기업들의 약품을 수입 및 공급하기 시작하며 일본인 약업자들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전용순이 설립한 금강제약소는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합성의약품인 매독 치료제 ‘젠바르산’을 발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일본은 1939년 조선의약품통제주식회사를 신설해 의약품의 생산과 공급·가격 등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함께 배급제까지 시작했다.

그 결과 광복을 맞이할 무렵 한국인이 경영하는 제약업소는 통계상으로 모두 255곳 제조품목이 2236개 품목에 달했지만 대부분 유명무실해 제약시설을 제대로 갖춘 업소는 30여 곳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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