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123주년… 국내 유일 ‘백년’ 제약기업

박지원 기자

입력 2020-04-27 03:00:00 수정 2020-04-2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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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국민의 건강을 지켜온 기업] - 동화약품
국내 최초 양약… ‘활명수’로 유명세
코로나 치료제 개발도 박차



1897년 창립해 올해로 123주년을 맞은 동화약품은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활명수와 후시딘, 판콜, 잇치 등 블록버스터 일반의약품을 다수 보유한 국내 최초의 제약사다. 일제감정기 시대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철학과 제약보국의 이념으로 설립된 동화약품은 국내 제약기업 중 유일하게 일업백년(一業百年)을 넘어선 기업이기도 하다.


○ 국내 최초의 제약사

우리나라 제약업의 역사는 동화약방의 활명수 개발과 그 시작을 같이한다. 1897년 궁중 선전관 민병호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양약인 ‘활명수’를 개발했다. 민병호 선생은 동화약품 초대 사장이자 아들인 민강 선생과 함께 활명수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을 창업했다.

급체, 토사곽란만으로도 쉽게 목숨을 잃던 구한말, 복용할 마땅한 약이 없던 민중은 궁중비방에 서양의약이 결합돼 탄생한 활명수에 열광했다. 활명수는 만병통치약 취급을 받으며 불티나게 팔렸고 활명수를 모방한 짝퉁 제품들이 성행했다. 1910년 동화약방은 활명수를 보호하고 가치를 차별화하기 위해 부채표를 만들고 상표등록을 한다. ‘부채표가 아닌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 문구로도 유명한 동화약품의 부채표는 국내 최초의 상표등록 사례이기도 하다.

동화약방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민족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3·1 운동 직후 설립된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 간 비밀 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운영했다. 당시 동화약방의 사장이었던 민강 선생은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고 정보를 수집했으며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행정 책임자였다.

1937년 2월 26일 민강 선생의 순국 이후 기울어만 가는 민족기업 동화약방을 인수한 사람이 동화약품 5대 사장 보당 윤창식 선생이다.

윤광열 회장은 동화약품의 7대 사장이다.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재학 시절, 일제에 강제 징집됐다가 광복군에 합류해 중대장으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민강 선생, 보당 윤창식 선생과 윤광열 회장까지 동화약품은 세 명의 독립운동 최고경영자를 배출했다.

윤광열 회장은 활명수에 탄산을 첨가한 ‘까스활명수’를 개발한 주인공으로 까스활명수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1973년 10월 10일 ‘보건의 날’에 우리나라 최초의 희귀약품센터가 개관한다. 이 희귀약품센터는 윤광열 회장이 취임 이후부터 집중한 사업으로 영리적 측면을 철저히 배제할 것을 당부하며 이룬 성과다.


○ 신약 연구개발 및 연구소와 공장

한국 제약업계의 신약 30개 중 제3호 신약 밀리칸주, 제23호 신약 자보란테 등 2개의 신약 개발을 일궈낸 동화약품 연구소는 1973년 설립돼 다양한 우수 의약품 및 첨단 신약 개발의 기틀을 마련했다. 현재는 궤양성대장염 치료제 DW2007, 알레르기 천식 치료제 DW2008, 소염진통복합제 DW6008 등의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천식 치료제로 개발 중인 DW2008은 한국 파스퇴르연구소에 의뢰해 실험한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6월 중 2상 임상시험에 착수할 계획이다. 동화약품은 DW2008을 ‘SARS-CoV-2에 의한 질환의 예방 또는 치료용 약학적 조성물’로 특허 출원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치료제가 시급한 만큼 바로 환자에게 쓰일 수 있도록 ‘치료 목적 사용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창립 123년을 넘어 200년 기업으로의 지속성장을 꿈꾸는 동화약품은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말라’는 동화정신을 바탕으로 국민과 국가의 건강한 삶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박지원 기자 j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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