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지줄대는… 강, 산, 바위

글·사진 옥천=김동욱 기자

입력 2020-04-25 03:00 수정 2020-04-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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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고장 충북 옥천군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조헌이 낙향해 후학들을 가르치던 서당인 이지당.
충북 옥천에는 금강이 굽이굽이 휘감아 돌면서 흐른다. 그 강줄기를 따라 부릉산, 오봉산, 마성산, 둔주봉 등이 솟아 있다. 물길 따라 산길 따라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옥천은 정지용(1902∼1950년)의 시 ‘향수’로도 유명하다. 시인의 고향이 옥천이다. 워낙 잘 알려진 시였지만 1989년 이 시에 김희갑이 곡을 붙이고 박인수, 이동원이 노래를 불러 더욱 친근해졌다. 그래서 옥천에는 이름에 ‘향수’가 붙은 길이 많다. 물길, 산길에 더해 향수길도 옥천만의 매력이다.

원래 산이었지만 대청댐 준공 이후 산 일부가 물에 잠겨 물 위에 바위가 떠 있는 형상이 된 부소담악.
‘부소담악.’ 이름부터 신기하다. 부소무니 마을 앞 물 위에 떠있는 산이라 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부소무니란 마을 이름도 신기하다. 군북면 추소리의 부소무니는 풍수지리에서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생김새를 말하는 연화부소형 명당이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금강의 상류 물줄기 중 하나인 서화천을 따라 기암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숨은 병풍이라 불렸다. 서화천이 유턴을 하듯 급격하게 휘어감아 나가는 끝에 암봉이 줄지어 서 있다.

부소담악은 2008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하천 100곳에 포함된 곳이다. 그만큼 풍경이 아름답다. 물 위에 솟은 40∼90m 높이의 절벽이 강줄기를 따라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그 길이만 700m에 이른다. 부소담악은 원래 산이었다. 하지만 대청댐이 세워지면서 산 일부가 물에 잠겼다. 이후 산봉우리들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바위처럼 보이게 됐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풍경은 아니지만 부소담악의 분위기는 신비롭다.

부소담악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추소정까지는 나무 덱으로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추소정은 2008년 조성된 2층짜리 정자로 전망대를 겸하고 있다. 외관은 평범하지만 추소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놓치면 아쉽다.

추소정에서 부소담악 능선을 따라 끝자락까지 갈 수 있다. 능선길은 좁고 험한 편이다. 날카롭게 솟은 바위들과 좌우 양쪽으로 절벽이 펼쳐져 있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별다른 안전시설도 없어 발걸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소담악 끝자락에 다다르면 물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모습의 커다란 암석들이 나타난다. 암석 위에는 힘겹게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암석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뒤로 서화천과 산들이 배경처럼 펼쳐져 있다.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부소담악과 그 주변 풍경을 한눈에 담으려면 멀리서 봐야 한다. 부소담악 뒤편에 솟아 있는 해발 581m의 환산(고리산)에 오르면 부소담악의 길게 뻗은 형상과 그 주위를 끼고 흐르는 서화천을 볼 수 있다. 왕복 4시간 정도가 걸린다.

둔주봉 275m 전망대에서 금강을 내려다보면 동서가 바뀐 한반도 지형이 보인다.
옥천에는 부소담악 외에도 빼어난 절경이 많다. 그중 하나가 둔주봉 한반도 지형이다. 국내에는 한반도 지형을 쏙 빼닮은 명소들이 몇 군데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이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다. 관광객이 늘자 원래 서면이었던 행정구역 이름을 2009년 한반도면으로 바꿨다. 이곳 외에도 충북 진천군의 초평호 한반도 지형, 전남 신안군 증도면 우전해수욕장의 한반도 해송숲 등이 한반도 지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둔주봉 한반도 지형은 이들 지형과는 조금 다르다. 동쪽과 서쪽이 뒤바뀐 모양이 특징이다.

한반도 지형은 둔주봉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서 마주할 수 있다. 둔주봉 오르는 길은 옥천군 안남면 행정복지센터에서 1.5km 정도 마을길을 따라 걸어가면 나타나는 계단부터 시작된다. 계단을 올라 오솔길에 접어들면 솔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소나무들이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고 있다. 경사가 약간 가파른 편이지만 중간에 의자들이 있어 쉴 수 있다. 30분 정도 올라가면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전망대(해발 275m)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반도 지형은 좌우가 바뀌어 있지만 전망대 정자에 설치된 반사경을 통해 보면 제대로 된 모양을 볼 수 있다.

둔주봉 한반도 지형의 위에서 아래까지 길이는 1.45km로 실제 한반도를 980분의 1로 축소한 크기다. 날씨가 좋다면 전망대에서 인근의 산봉우리도 볼 수 있다. 맑은 날이면 남쪽으로 전북 무주군 덕유산 정상, 남서쪽으로 충남 금산군 서대산 정상, 북동쪽으로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 정상 천왕봉이 보인다.

장령산 기슭에 위치한 용암사는 일출을 보기에 좋은 곳이다.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인 552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용암사에서 180m 정도를 나무 덱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인 운무대가 나타난다. 용암사 운무대에서 바라보는 운해와 일출은 미국 CNN의 관광 정보 사이트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50곳에 포함됐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한 간절기나 이른 봄, 늦은 가을에 가장 일출을 보기 좋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옥천읍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첩첩이 솟은 산과 봉을 볼 수 있다.

용암사에는 쌍삼층석탑(보물 제1338호)과 마애여래입상(충북도유형문화재 제17호)도 있다. 대웅전 뒤 붉은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은 신라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거나, 마의태자가 만들었다거나 하는 전설이 있다.

1960년대에 축조된 교동저수지는 걷기에 좋은 곳으로 주변에 옥천향교, 정지용 생가 등 볼거리도 많다.
옥천읍 교동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옛 국도 37호선에서는 신세계가 펼쳐진다. 이 길은 금강변을 따라 군북면 국원리를 지나 소정리까지 8km 정도 이어진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드문드문 고개를 내미는 금강을 볼 수 있다. 강 건너 수직으로 솟은 산과 그 아래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풍경이 그림 같다. 봄에는 벚꽃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터널을 이룬다. 길을 따라 달리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서화천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앞쪽에는 물, 뒤에는 구릉이 있는 이지당이 나온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조헌이 후학들을 가르쳤던 서당이다. 조헌은 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를 되찾고 금산전투에 나섰다가 의병 700명과 함께 전사했다. 처음에는 서당이 있던 지명을 따서 각신서당이라 불렀다. 하지만 우암 송시열이 조헌의 삶을 기려 이지당(二止堂)으로 이름을 바꿨다. ‘산이 높으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는 구절에서 지(止) 두 글자를 따왔다. 대청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롭다.

옥천의 구읍은 예전에는 옥천의 중심이었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고 옥천역이 옥천읍 금구리에 들어서면서 쇠락했다. 구읍에는 번화했던 옛 모습을 반영하듯 100년도 넘은 오래된 한옥이 많다. 구읍을 가로지르는 실개천 옆에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들어서면서 구읍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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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읍에서 가장 큰 길은 정지용의 이름을 딴 지용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빼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향수’가 자꾸만 입에서 맴돈다.

글·사진 옥천=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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