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병원장 단톡방’이 코로나 중환자 살렸다

동아일보

입력 2020-04-23 03:00 수정 2020-04-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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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보호구를 착용한 의료진이 격리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대구=뉴스1
올 2월 말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자 보건당국은 사실상 크게 당황했다. 중증 환자가 쏟아지는데 어느 병원으로 보낼지조차 결정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초기 혼란이 컸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대구지역 병원장들의 적극적인 소통이었다. 이들은 수시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상황을 주고받으며 환자 치료를 위한 정보를 공유했다. 별도의 컨트롤타워가 없었는데도 병원장들이 빠르게 소통한 덕분에 초기 혼란을 줄일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병원장들은 각 병원의 병실 부족 상황을 알리고 여유가 있는 병원은 적극적으로 환자를 받아주는 등 끈끈하게 협력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당시 단체대화방이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패스트트랙’ 역할을 한 것이다.


○ 대화방에서 ‘민관협력 네트워크’ 활동

대구지역 병원장들의 단체대화방은 총 3가지다. 2월 18일 대구지역 신천지예수교 첫 환자인 31번 환자가 발생한 후 상황이 심각해지자 병원장들과 실무교수 등으로 만들어진 ‘대구 총괄대책반 단톡방’이 첫 번째다. 이 대화방에는 대구지역 상급종합병원인 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과 대구파티마병원, 대구의료원 등 병원장이 모였다. 이후 병원 내 실무를 담당하는 감염내과, 호흡기내과 교수들이 참여했다. 이곳을 통해 병원장들은 코로나19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가 모자라면 타 병원에 요청했다. 또 중환자를 위한 인공호흡기 등 장비와 마스크, 장갑 등 물품이 모자랄 때도 이 대화방을 통해 공유할 수 있었다.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이 제안해 만들어진 또 다른 단체대화방도 있다. 이 대화방에는 대구지역 병원장, 대구시의사회, 병원협회, 대구시 관계자 등이 모두 모였다. 마지막으로 2월 26일경 보건복지부가 제안한 세 번째 단체대화방이 만들어졌다. 전국 42개 상급종합병원 병원장과 복지부 관계자 등이 모인 곳이다.

의료계에서는 대규모 감염 사태 속에서 이 대화방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정보 교환이 훨씬 쉬워졌고 환자 전원(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문의할 때도 큰 효과를 봤다. 긴급한 상황에서 각종 서류나 보고 절차 없이 대화방을 통해 병원장들이 재량으로 빠른 판단을 내린 덕분이다.

단체대화방에 참여한 대구지역 병원장은 “대구시와 의료계가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빠르게 공유한 덕분에 심각한 혼란 속에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며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시간 대화를 통해 가능한 한 빨리 환자를 이송시키고 약을 나눴다”고 말했다.


○ 대화방 통해 의료시스템 문제도 개선

단체대화방에서 제기된 의료시스템 문제가 개선된 사례도 있다. 2월 말 영남대병원은 대화방을 통해 중환자 3명을 타 시도에 위치한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시키기로 했다. 해당 지역 병원장과는 모두 합의를 마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1명은 경기지역의 한림대성심병원에 전원됐다. 하지만 나머지 2명은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거부했다. 다행히 한 지자체는 10시간 만에 승인해 이송이 가능했지만 다른 지자체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갈 곳이 없던 중환자 1명은 결국 다른 지역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감염병이 유행할 때 상급종합병원 전원은 해당 병원의 결정과 상관없이 지자체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원이 불가능하다. 지역 내 감염 확산을 막으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일부 지역의 환자가 폭증할 경우에는 자칫 의료시스템에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이에 따라 김성호 영남대병원장은 복지부에 “지자체가 제동을 걸지 못하도록 효율적인 방법을 강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덕분에 지난달 1일 국립중앙의료원에 전원상황실이 꾸려졌다. 각 병원장이 결정하면 지자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해당 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게 바뀌었다. 이후 대구지역에서 80명이 넘는 중환자가 타 지역으로 이송됐다. 22일 0시 기준 대구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는 전일 대비 1명에 그쳤다. 총 6836명의 확진자 중 693명이 전국 47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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