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하게 만든 백신은 ‘몸 안에 독 붓는 꼴’”…백신 개발 어디까지?

윤신영 동아사이언스기자

입력 2020-04-21 18:20 수정 2020-04-2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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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전 세계적으로 250만 명에 이르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근본적으로 종식시킬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대한 열망도 커지고 있다. 바이오기업과 글로벌 제약사를 중심으로 약을 개발하기 위한 행보가 빨라지면서 이른 시일 내에 치료제와 백신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잦은 중간성과 발표와 대중의 열망이 만나 빚은 ‘착시’일 뿐 치료제와 백신 개발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치료제와 백신은 안전성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려도 제대로 임상시험을 거친 뒤 출시해야 ‘몸 안에 독을 붓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국국립보건원(NIH) 의학도서관이 운영중인 임상시험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코로나19’와,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와 관련해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임상시험은 21일 현재 692건이다. 미국 텍사스대 약대 교수팀이 14일 의학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가운데 109건이 실제로 환자 모집을 하거나 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치료제 관련 임상시험으로 분류된다.

이들 대부분은 기존 약이나 후보물질의 용도를 바꿔 코로나19용으로 다시 임상을 하고 있는 ‘약물재창출’ 전략을 쓰고 있다. 백지 상태에서 후보약물을 찾으려면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에 취한 지름길 전략이다. 에볼라 치료제 후보물질이었다 최종 탈락한 렘데시비르와,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 C형간염치료제 리바비린 등이 이 전략으로 임상을 진행하고 있거나 임상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이들 후보물질의 ‘중간성적표’를 매겨 보면, 현재 기대를 걸어 볼 만한 치료제 후보물질은 렘데시비르가 거의 유일하다. 세포실험에서 적은 양을 투약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줄이는 효과가 확인됐다. 경쟁자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8분의 1, 클로로퀸의 31분의 1 정도로 적은 농도만 써도 효과적이었다. 11일 미국 의학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은 이 약을 중증 호흡기 환자에 투약한 결과 증상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대조약과 비교하는 등 엄밀한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권장해 화제가 된 약이다. 바이러스 침투시 세포막과의 융합을 차단하거나, 바이러스 복제를 위한 세포 내부 막 형성 과정을 차단하는 원리로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다. 중국과 프랑스 연구팀이 이 약을 투약한 코로나19 환자에게서 증상 완화와 바이러스 감소 등을 확인해 발표했다. 하지만 엄밀한 임상시험을 거친 게 아니어서 임상과정이 필요하다. 투약 농도가 높아지면 부작용 우려도 있어 국내에서는 낮은 농도로 투약중이다.

반면 칼레트라와 리바비린은 효과가 미약하고 부작용 우려는 커 ‘낙제’로 나타났다. 칼레트라는 3월 중국 연구팀이 199명의 환자에게 투약해 3월 NEJM에 발표했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리바비린 역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환자 연구에서 바이러스 제거 효과가 일부 있었지만 간수치 상승이나 용혈성 빈혈 등 부작용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낙제를 면한 후보물질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연구센터장은 최근 한 의학포럼에서 “국내에서도 렘데시비르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비교하는 연구와, 칼레트라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비교하는 연구,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발병 전에 먼저 투여하는 연구 등이 진행되거나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100개 이상의 임상이 진행되고 있는 치료제와 달리, 백신은 갈 길이 더 먼 상황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일(현지시간) 발행한 보고서 등에 따르면 임상시험에 들어간 백신은 미국과 중국에서 개발 중인 5개뿐이다. 미국국립알레르기및감염병연구소(NIAID)와 미국 생명공학사 모더나가 지난달 16일 유전물질인 리보핵산(RNA) 기반의 백신을 개발해 임상 1상을 시작했고, 중국군사과학원과 생명공학기업 캔시노가 다른 바이러스 게놈을 택배상자처럼 이용해 목표 유전자를 삽입해 인체에 주입하는 방식(바이러스 벡터)을 실험 중이다. 미국 이노비오는 DNA를 주입해 체내에서 항원을 만들어내는 방식의 백신을 개발해 미국에서 이달 초부터 4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 중이다. 이노비오는 국제백신연구소(IVI) 및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내에서도 임상을 할 계획이다. 이들은 모두 독성을 확인하고 투약 농도를 결정하는 임상1상 단계다. 제롬김 IVI 사무총장은 3월 말 본보 기고에서 “임상시험을 축약해 실시해도 어떤 백신이 효과적일지 파악하는 데에만 12~18개월 걸린다”며 “여기에 생산을 위한 시간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바이오업체들도 정부 지원 속에 연이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 총력전에 나섰다. 21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뛰어든 곳은 18곳이다. 셀트리온, SK바이오사이언스, GC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등 국내 주요 업체부터 바이오벤처까지 다양하다.

국내 제약바이오업체들이 신규 개발 소식을 들고 나올 때마다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등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실제 치료제·백신 개발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목적으로 식약처에 임상시험계획(IND)을 신청했지만 현재까지 허가를 받은 국내업체는 부광약품뿐이다. 2007년 출시한 B형 간염 치료제 레보비르를 사용하는 내용으로 임상2상을 승인 받았다.

국내 바이오벤처인 이뮨메드도 이달 말 시험보고서를 내고 임상 1상을 마무리한 뒤 7월께 임상 2상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B형 간염 후보물질로 식약처에 시험계획을 신청한 상황이다. 압타바이오는 당뇨 합병증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APX-115를 코로나19용으로 바꿔 임상 2상을 추진 중이다. 체내에서 바이러스 침입시 활성산소를 만드는 과정을 방해하는 약으로, 임상1상을 거쳤고 세포실험에서 렘데시비르의 3분의 1 정도의 항바이러스 효과를 확인했다. 그 외 다른 업체들의 경우엔 식약처에 IND를 신청했으나 자료 보완 요구 등을 받거나, 후보물질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신은 GC녹십자,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기존 백신 역량을 보유한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제넥신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과 함께 빠르면 6월께 임상 개시를 목표로 DNA 백신을 개발 중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들 모두 현재로선 전임상 단계에 머물고 있다.

거대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국내 바이오벤처까지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앞 다퉈 나서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할만한 성과가 나오지 못하는 것은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연구가 부족하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성준 한국화학연구원 신종바이러스(CEVI)융합연구단 팀장은 “실험실에서 인체 세포에 감염시키면 2~3일만에 세포를 죽이는 메르스 바이러스와 달리,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일주일 이상 감염시켜도 세포를 죽이지 않고 감염 상태를 유지하는 등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특성을 알아야 딱 맞는 치료제와 백신을 만들 수 있는데 치료제나 백신을 너무 성급하게 만들어 부작용이 생기면 백신이 아닌 독을 접종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박혜숙 이화여대 의대 교수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은 매우 시급하지만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해 실용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장 올해 안에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할 수 없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개발에 매진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고 수년에 걸쳐 출몰할지 모를 제2, 제3의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진지를 구축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김성준 팀장은 “미국기업 이노비오나 모더나 등이 빠르게 백신을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속허가를 받아 임상을 시작할 수 있던 것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을 당시 백신을 만들면서 백신 개발 플랫폼을 갖춘 덕분”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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