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 두기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이자 훌륭한 봉사”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4-20 03:00 수정 2020-04-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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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출신 홍지영 신부가 전하는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회와 코로나19

2018년 6월 아르헨티나 루한의 성모대성당에서 한복 입은 성모자상을 모시는 축복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현지인 신부, 문한림 주교, 한국순교성인 성당 권완성 신부, 오푸스데이 홍지영 신부. 홍지영 신부 제공
“아르헨티나는 알려진 대로 축구와 신앙의 나라입니다. 축구와 교회가 빠져 있는 이곳 사람들의 현재 삶은 그야말로 큰 고통입니다.”

아르헨티나 아우스트랄대에서 강의 중인 홍지영 신부(47)의 말이다. 1986년 현지로 이민을 간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 신학을 접한 뒤 영성(靈性) 강화를 최우선으로 삼는 오푸스데이(신의 사역) 사제가 됐다. 오푸스데이 서울센터 지도신부를 지낸 그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현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은 어떤가.

“확진자는 약 2700명, 사망자는 120여 명이다. 아르헨티나는 국경 폐쇄와 이동 차단을 통해 빠르게 상황을 통제했고, 병원과 의료 시스템이 괜찮아서 피해가 적은 편이다. 브라질 에콰도르 칠레 등 주변국과 비교할 때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한국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는 5월이면 겨울인데 지금부터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느 때와 달리 우울한 부활절(12일)이었다. 그곳은 어땠나.

온라인으로 미사를 진행하는 아르헨티나 현지 교회 모습.
“2개월 전부터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방침에 따라 모든 성사(聖事) 집전이 중지됐고 부활절 미사도 유튜브 등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최소한의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만 가능한 상태다.”


―대학가 분위기는 어떤가.

“지난해부터 아우스트랄대에서 심리와 영성, 그리스도교 문화 강의를 맡고 있는데 올해는 모두 온라인 강의다. 부활절 전후에는 기숙사 생활하는 교수들과 집에 못 돌아가는 외국인 학생 50여 명이 모여 조촐하게 미사를 올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자 없이 부활절 미사를 집전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부활 전야 미사는 승리와 빛에 대한 말씀을 강조하셨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2주일 전쯤 있었던, 전염병과 싸우는 도시와 세계에 대한 축복식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우리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교황님의 호소와 기도가 너무 간절하게 다가왔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교황을 위한 기도도 있었나.

“이곳은 가톨릭 신자가 90% 이상이다. 교황님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상상 이상이다. 올 3월 여성의 날에 맞춰 성모 성지인 루한에서 정부의 낙태법을 반대하는 교회 주최 행사가 열렸다. 여기서도 교황님을 위한 기도가 있었다.”


―아르헨티나에는 한국인으로는 해외교구의 첫 주교로 임명된 문한림 주교가 있다. 문 주교 근황은 어떤가.

“문 주교님은 산마르틴 교구의 보좌주교인데 교구장 주교께서 건강이 많이 좋지 않다. 그래서 문 주교님이 교구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어 매우 바쁘지만 건강은 좋은 상태다.”


―현지 교민 상황은 어떤가.

“교민은 2만5000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대부분 의류와 식품 등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경제와 사회활동을 못해 어려움을 겪는 분이 많다. 올해가 이곳의 한국인 가톨릭공동체 형성 50주년이다. 한국순교성인성당을 중심으로 관련 행사와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한인 2, 3세를 돕기 위한 신앙적, 교육적 노력이 활발하다.”


―한국에는 다시 오게 되나.

“올 1월에도 개인적인 일로 한국을 방문했다. 대학에서 5년 정도 강의한 뒤 다시 한국에 복귀해 활동할 예정이다.”


―어려움을 겪는 신자들을 위한 말씀을 해 달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신자들이 참석하는 미사가 중단됐는데, 이런 모습이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이자 훌륭한 봉사다.”


―개인적으로 어떤 기도를 하고 있나.

“그동안 우리가 너무 외적, 물질적인 가치만 추구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고 있다. 이 위기는 내면의 소중한 것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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