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에 기업가 정신으로 탄생한 한국 100년 기업 ‘경성방직’

김현수기자

입력 2020-03-31 17:20 수정 2020-03-3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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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방직 동아일보DB

1919년 10월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요릿집 태화관. 28살의 젊은 교육자이던 인촌 김성수, 철종의 사위인 박영효, 국어학자 이희승 등 당대 지식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7개월 전 3·1운동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이곳에서 주식회사 ‘경성방직’(현 경방)의 창립총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올해 101살이 된 경방은 한국 최초 근대적 기업의 효시로 꼽힌다. 한국 최초의 법인은 한성은행(1897년)이지만 경방은 주식 공모 등을 거쳐 근대적 기업의 형태를 갖췄기 때문이다. 경방 뿐 아니라 두산(1896년 설립), 동화약품(1897년 설립) 등도 한국의 대표 장수기업으로 꼽힌다.

이들 기업은 해외의 100년 기업과 구별되는 특징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구한말과 식민지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엄혹한 시절에 ‘우리 힘으로 나라를 살리고 싶다’는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한 기업가 정신이 창업 중심에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경방은 1919년 창립 초기 총 2만 주 중 지분 90% 가량을 188명에 달하는 소액주주들이 나눠가지고 있었다. 창립 멤버인 인촌은 조선 부호들로부터 더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많은 조선인이 참여한 민족기업을 세우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1인 1주 운동을 벌였다. 전국을 돌며 ‘주식이라는 종이 조각에 왜 쌀 두가마니 값을 내야하느냐’는 지방 유지들을 설득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제약기업인 동화약품도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창립됐다. 동화(同和)라는 상호는 1897년 동화약방 창립 당시 주역에서 따온 말이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金)도 자를 수 있다. 나라가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이 평안해진다”는 문구에서 이름을 따왔다. 한국 최초의 등록상표인 동화약품의 ‘부채표 활명수’는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1896년 박승직 상점이 효시인 두산은 1946년 해방 후 두산상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일제가 남기고 간 맥주 공장을 인수하며 제조 기업의 틀을 갖췄다. 두산은 본업을 바꿔가며 끊임없이 변화해 한국의 장수기업 중 가장 규모가 큰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특징이다. 박승직상점의 히트상품은 ‘박가분’이란 화장품이었고, 두산 설립 이후 OB맥주가 본업이었지만 현재는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등 기계 및 에너지발전 산업이 핵심 사업이 됐다. 숱한 위기 속에 ‘사업보다 기업을 잇는 게 중요하다’며 진화해 온 덕분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삼성,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등 한국을 대표하는 5대 그룹의 평균나이는 65.6세로 100년 기업을 향해 가는 중반 쯤 와있다. 지난해 50주년을 맞이한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기술로 행복한 미래”를, 올해 53주년을 맞은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신년사에서 “모빌리티 시장의 판도를 주도하는 ‘게임 체인저’”로 100년 기업을 향해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현수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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