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기업, 코로나로 수요 감소-저유가에 ‘휘청’…새 금융위기 뇌관 되나

구가인 기자 , 조유라 기자

입력 2020-03-27 18:35 수정 2020-03-27 19:12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사진 출처 픽사베이

“셰일기업을 포함한 세계 천연자원 시추회사의 50%가 2년 내 파산할 수 있다”

미국 셰일기업 파이어니어내추럴리소시스의 스캇 셰필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세계 에너지업계의 부도 위험이 가시화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특히 셰일업계 동향이 심상치 않다. 기존 에너지원에 비해 비싼 채굴비용, 경쟁 격화 등으로 고전하던 와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 저유가 고착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증산경쟁까지 만나 업계 전체가 공멸 위기에 놓였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상당수 미 셰일업체들은 수익을 내기보다 금융회사의 투자로 연명해왔다. 이에 따라 셰일업계가 도산하면 많은 돈을 투자한 주요 금융사 또한 덩달아 파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2007년 미 모기지업계의 줄파산이 다음해 전대미문의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졌듯 셰일업계의 현 상황이 대형 위기의 서막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고유가+금융위기가 낳은 셰일 부흥

셰일가스는 한때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았다. 이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및 세계 에너지업계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미국의 행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 국제 유가가 100달러에 육박하자 정책적으로 셰일업체 육성을 장려했다. 걸핏하면 석유를 무기화하는 중동 산유국에 휘둘리지 않고 ‘에너지 자립’을 이루겠다는 의도였다.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전으로 채굴 원가가 하락한 것도 업계 발전에 일조했다.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 때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셰일가스 채굴 원가는 약 45달러까지 하락했다.

특히 금융위기에 따른 서비스업의 고용 감소로 고민하던 버락 오바마 당시 미 행정부는 고용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 부흥에 총력을 펼쳤다. 바로 해외로 나간 미 기업의 본국 회귀를 촉구하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이다. 정부가 법인세 인하 등 각종 세제 혜택을 제시하는 가운데 셰일 활황으로 에너지가격이 하락하자 미국 내 생산단가가 낮아졌다. 이것이 미 제조업 전반에 훈풍을 불러일으키고 셰일업계에 대한 추가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켰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미국은 2018년 8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이 됐다. 셰일가스와 셰일유는 지난해 기준 일일 약 1500만 배럴에 달하는 미 에너지 생산량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말 그대로 ‘셰일 혁명’이다.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아프가니스탄 종전 협상 타결 등 중동정책의 대대적인 변화도 ‘석유 때문에 중동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 비싼 원가·취약한 수송 인프라·환경 규제 등 부담

하지만 셰일가스가 기존 에너지원을 완전히 밀어내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우선 셰일은 보통 일반 원유 및 천연가스가 묻힌 곳보다 약 2~4km 깊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또 암석층의 미세한 틈에 넓게 퍼져 있다. 원유나 천연가스를 추출할 때보다 훨씬 깊고 더 넓게 파야 한다는 뜻이다. 생산 비용이 비쌀 수밖에 없다.

그간 많이 떨어졌다지만 셰일 채굴의 손익분기점(평균 약 45달러) 역시 원유보다 훨씬 비싸다.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1배럴을 생산할 때 불과 10달러 정도의 비용만 쓴다. 유정(油井) 개발 후 약 2~3년이 지나면 생산량이 급격히 하락한다는 점도 생산 단가를 낮추지 못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셰일업체가 기존 에너지기업보다 경기 변동과 저유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셰일가스는 원유에 비해 수송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다. 액체 상태인 원유는 탱크에 저장해서 트럭, 열차 등 일반 교통수단을 통해 운반할 수 있다. 천연가스는 기체의 특성 상 생산지에서 저장 허브까지 파이프라인을 통해서만 수송이 가능하다. 현재 미 셰일가스의 생산 거점은 남부 텍사스와 뉴멕시코주에 걸쳐있는 퍼미안 분지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핵심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운송을 어렵게 한다.

물과 화학약품을 섞어 강한 압력을 가한 뒤 지층을 깨부수는 추출 공법 또한 환경오염의 주범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지하수 오염, 지반 침하우려 등이 상당해 규제 강화에 따른 채굴비 증가 여지가 크다. 이미 프랑스는 셰일가스 채취를 금지하고 있다. 상당수 미 지방정부도 채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 셰일발 ‘뱅크런’ 우려

2014년 이후 국제 유가가 줄곧 하락하면서 최근 몇 년간 셰일업계의 위험이 속속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 법률회사 헤인즈앤드뷴에 따르면 파산한 북미 셰일 및 에너지기업 수는 2017년 24개, 2018년 28개, 지난해 42개로 증가했다. 지난해 파산 금액 역시 257억6769만 달러로 2017년(85억4352만 달러)과 2018년(131억5576만 달러)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 와중에 등장한 코로나19 악재와 산유국간 증산 경쟁은 치명타를 안겼다. 이달 들어 미 유명 셰일기업 트리포인트 오일앤가스프로덕션이 한국의 법정관리에 해당하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한국석유공사가 출자한 EP에너지도 파산신청을 하고 채권단과 회생여부를 협의하고 있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최근 옥시덴탈 페트롤리움의 신용등급을 ‘투자 적격’(Baa3)에서 ‘투자부적격’ 등급인 Ba1로 내렸다. 옥시덴탈의 시가총액 역시 올해 초 대비 80% 하락해 현재 100억 달러를 밑돌고 있다.

특히 상당수 셰일업체의 부채 규모가 심상치 않아 추가 파산 가능성이 있다. 무디스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4년 사이에 만기가 돌아오는 북미 에너지회사의 부채는 총 860억 달러(약 105조8000억 원)에 이른다. 한때 ‘셰일혁명의 선구자’로 평가받던 미 대표 에너지회사 체서피크의 부채만 90억 달러다.

셰일기업이 파산하면 이들에게 투자한 주요은행 또한 부도 위기에 몰리는 ‘셰일발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다. JP모건체이스, 씨티은행 등 굴지의 미 대형은행도 자기자본금의 7~15%를 에너지업계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드 허스 미 휴스턴대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셰일업계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들이 붙잡고 있던 실날 같은 끈을 잘라냈다”고 진단했다.

미 석유연구소(API)에 따르면 에너지 부문은 미 국내총생산(GDP)과 고용의 각각 7.6%, 5.6%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셰일업체의 위기가 미 경제 전체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구조다.

특히 중소형 에너지업체의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인다. 미 독립석유협회(IPAA)에 따르면 1일 평균 7만5000 배럴 미만을 생산하는 중소형 기업은 약 9000개. 이들이 미 원유와 천연가스의 각각 83%, 90%를 생산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만 450만 개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에너지자원공학)는 “대형 기업은 유가 하락 시 화공 등 대체 분야를 찾아 버틸 수 있지만 중소형 업체는 위기대응 능력이 취약해 저유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셰일기업이 몰려있는 텍사스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셰일업계의 메카’로 불리는 텍사스 서부 미들랜드에서는 인구 14만 명의 약 42%가 에너지 관련업에 종사한다. 셰일업계의 구조조정이 가시화하면 도시 전체가 휘청거릴 가능성이 있다.

● 새 금융위기 가능성도 거론

일각에서는 셰일기업의 도산 위험이 새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07년 4월 미 2위 모기지업체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미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유례없는 활황을 보이는 시점에 대형 모기지업체가 파산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이 등장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지속된 저금리 정책을 속히 중단하고 유동성 고삐를 조여야 한다는 경고가 잇따랐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 및 연준 고위 관계자, 금융전문가 등은 입을 모아 “금융시장 극히 일부에 국한된 현상이다. 미 경제와 금융시장 전반은 건강하다”고 외쳤다. 결국 다음해 9월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모건스탠리, AIG 등 대형 금융회사가 줄줄이 무너지면서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이를 감안할 때 셰일발 위기가 뱅크런 정도를 넘어 새로운 금융위기의 전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기운 숭실대 교수(경제학)는 “셰일 발 금융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 저유가 기조가 당분간 바뀔 것 같지 않고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경제의 피해도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2014~2016년 유가하락 시기 미 셰일기업들은 생산거점 이전, 기술 개발 등으로 위기를 견뎠다. 그 전에는 북부 노스다코타와 몬태나주에 걸친 배큰필드, 텍사스 이글포드 등이 핵심 생산지였지만 생산성이 높은 유정을 활발히 개발한 덕에 퍼미안 분지가 새 거점으로 부상했다. 월가의 투자도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 달리 양질의 광구가 바닥을 드러냈는데 생산단가는 여전히 높고 국제유가는 더 떨어져 신규 투자를 유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재선 앞둔 트럼프 행정부, 지원책 내놓을 듯

11월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보수 텃밭이자 29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미 2위 텍사스주를 살리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셰일업계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적절한 때에 사우디와 러시아의 원유증산 경쟁에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25일 사우디에 “17년만의 최저치로 떨어진 국제 유가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사우디와 러시아에 제재를 가해 감산을 압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셰일업계 요구를 받아들여 전략비축유(SPR) 비축 물량도 확대하고 있다. 정부가 시중에 넘쳐나는 원유를 사들여 유가 하락을 방지하자는 차원이다. 19일 미 에너지부원유 3000만 배럴에 대한 구매 절차를 시작했다. 향후 추가 구매를 통해 이를 7700만 배럴로 늘리기로 했다.

23일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하지 않았던 회사채 지원 방안까지 발표하며 대대적인 돈 풀기에 나선 것 역시 셰일발 연쇄 부도를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준은 기업의 신규채권 발행 및 유통을 지원하는 비상 금융기구를 설립해 회사채 시장을 안정시키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투자위험 등급 채권(정크본드)의 약 15%가 셰일기업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전 세계의 에너지 수요 급감이다. 온기운 교수는 “설사 사우디와 러시아가 원유증산 경쟁을 중단하고 감산을 시작해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각국의 이동제한령, 교역 감소 등으로 에너지 수요가 자체가 완전히 줄었다. 감산이 효과를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