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보고’ 한라산, 세계가 주목하는 명산으로 우뚝

임재영 기자

입력 2020-03-25 03:00 수정 2020-03-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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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국립공원 지정… 올해로 50주년
자생식물 2000종-고산식물 100종 서식
세계 유일 유네스코 4대 보호지역 품어


한라산 최정상 백록담은 산정화구호에 물이 찼다가 빠지기를 반복하며 독특한 장관을 연출한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사람들은 매일매일 한라산을 보고 생활한다. 북쪽인 제주시에서는 격하게 요동치는 계곡과 날카로운 능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남쪽인 서귀포 시내에서 바라보면 매끈한 꽃봉오리가 봉긋 솟은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한라산 정상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자신의 고향에서 본 전경이 최고라고 여긴다. 한라산은 제주사람에게 제주 그 자체로 여겨질 정도로 대표 상징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한라산은 해발 1950m로 남한 최고봉이다. 남북관계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한민족을 연결하는 산이다. 금강산, 지리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로 불렸다.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1970년 3월 24일이다.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조선시대부터 명산, 영산(靈山)으로 인식됐으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 등의 핵심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국내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 국립공원 지정 50년

제주도를 형성한 화산활동은 신생대 4기인 200만 년 전부터 꾸준하게 이뤄지다 70만 년∼30만 년 전에 화산폭발이 급격하게 진행됐다. 한라산 백록담을 둘러싼 정상의 분화구가 형성된 것은 수십만 년 전에서 최근 4000∼5000년 사이로 지질시대 기준으로 보면 나이가 젊은 편이다. 한라산은 화산 분출에 의한 원추형 순상화산체로 만들어졌으며 화산 분출 당시 지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한라산 동서쪽 방향으로는 점성이 낮은 화산이 흐르면서 다소 평탄하고 남북으로는 점성이 높은 용암이 흘러내려 타원형의 섬이 탄생했다.

조선시대에는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의 화산 분화구가 생경하게 비쳤다. 1530년에 편찬된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한라산은 고을의 남쪽 20리에 있는 진산이다. 한라(漢拏)라고 말하는 것은 운한(은하수)을 끌어당길 만하기 때문이다. 혹은 두무악(頭無岳)이라 하니 봉우리마다 평평하기 때문이요, 혹은 원산(圓山)이라 하니 높고 둥글기 때문이다’고 기록했다. 육지 산 정상이 우뚝 솟은 봉우리 형태인데 반해 한라산은 정상이 분화구여서 다른 느낌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각종 고지도에서는 연못이 있는 한라산 정상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기도 했다.

한라산은 광복 이후 제주도 4·3사건으로 닫혀 있다가 1955년 9월 개방됐다. 산악인들과 더불어 식물학자들이 연구 테마로 한라산을 먼저 주목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한라산이 자원의 보고임을 알게 된 일본인들이 식물 등 다양한 분야의 논문을 발표한 터여서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국내 식물연구 1세대로, 문화재 위원이던 박만규 박사는 1962년 제주식물조사단장으로 방문한 데 이어 1964년 동식물상과 지질 등을 포함한 최초의 한라산종합학술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1966년 10월 한라산은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82호)으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 지정은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천연기념물 지정에 앞서 1965∼1966년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까지 차량이 다닐 만한 도로를 개설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가 반대 여론 때문에 백지화됐다. 이런 사건들로 한라산을 지키자는 의식이 널리 퍼졌고 결국 1970년 3월 24일 국립공원 반열에 올랐다. 지리산이 1967년 국내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1968년 한려해상·계룡산·경주에 이어 한라산은 설악산, 속리산과 함께 지정됐다. 한라산 가치나 명성에 비하면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당시 학자들의 공로와 지역 주민 노력 때문에 가능했다.


■ 독특하고 수려한 자연자원

한라산의 가치를 논할 때 식물분야가 가장 먼저 손꼽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위도에 위치하면서도 해발 1950m까지 올라가는 지형 때문에 난대식물부터 한대식물까지 다양한 식생을 보여준다. 국내 자생식물의 48%가량인 2000여 종이 한라산에서 자라고 있다. 빙하기 이후 섬이 고립되면서 해발 1500m 이상 아고산대에는 북극 주변에서나 자랄 수 있는 고산식물 100여 종이 분포하고 있다.

백록담 부근에서만 볼 수 있는 암매(돌매화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키 작은 나무다. 5월 말 바위에 박힌 수정처럼 하얀 꽃을 피운다. 솜털이 달린 부채 모양을 한 한라돌창포, 산악인들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한라솜다리, 가시가 날카로운 섬매발톱나무, 순수한 백색미를 뽐내는 한라구절초, 약재로도 쓰이는 제주황기, 볼록한 개구리배를 연상시키는 한라장구채 등도 고산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이다. 고산의 극한 추위, 우기와 건기가 교차하는 계절의 변화 등에 적응하느라 대부분 크기가 작은 게 특징이다.

자생식물 가운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구상나무는 한라산 생태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해발 1400m 이상 고지대에 숲을 형성한 구상나무는 같은 속 식물인 분비나무나 전나무 같은 생태학적 지위를 갖고 있다. 구상나무는 세계적으로 한라산에 가장 광대한 숲을 형성하고 있지만 2006년 738.3ha였던 면적은 2015년 626ha로 15.2% 감소했다. 10년 동안 구상나무 숲 112.3ha가 사라진 것이다. 태풍으로 뿌리가 흔들리고 가뭄, 겨울철 폭설 등 복합적인 기상이변으로 구상나무가 말라죽은 것으로 분석됐다.

최고 경관은 한라산의 ‘심장’으로 흰 사슴이 뛰어놀았다는 백록담이다. 분화구 면적 21만230m²의 전형적인 산정화구호로 둘레가 1720m, 동서 직경이 다소 긴 타원형이다. 분화구 최대 높이가 1950m, 바닥이 해발 1838m인 점을 감안하면 깊이는 112m이다. 분화구에 물이 가득 찬 모습이 장관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토사가 흘러내린 탓에 호수 깊이가 점차 얕아졌다.

영실 기암괴석과 오백나한(명승 제84호)은 백록담, 물장오리오름과 더불어 한라산 3대 성소로 ‘신선들의 정원’으로 불린다. 화산 분출로 형성된 소규모 분석구인 장구목, 왕관릉, 큰드레, 만세동산, 삼형제오름, 성널오름, 어승생 등의 오름과 함께 탐라계곡, 어리목계곡, 산벌른내, 아흔아홉골, 수악계곡 등은 굴곡진 풍경으로 입체감을 더해준다. 봄이면 고산평야지대인 선작지왓을 비롯해 백록담 남벽 밑 등지에서 산철쭉과 털진달래 꽃의 붉은 향연이 펼쳐진다.


■ 한라산과 함께한 사람들

한라산은 신령스러운 산이었기에 경외의 대상이었다. 탐라국시대부터 백록담 북쪽 기슭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겨울철에 제를 지내다 보니 동사자가 생겨나면서 조선 성종 원년(1470년)부터는 제주시 산천단에 제단을 마련하고 산신제를 올렸다. 조선시대 관리와 유배 온 학자 등이 한라산 등정기를 남기기도 했다.

제주에서 예로부터 스님들이 정진했던 곳으로 한라산 영실지역을 꼽는다. 존자암, 수행굴, 두타사 등 과거 조선시대 기록에 불교 관련 명칭이 상당히 남아 있다. 영실탐방로 입구 부근 존자암은 1993년 발굴 작업 이후 복원된 사찰이다. 당시 제주대박물관 조사 결과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세워진 사찰로 추정됐다.

고려시대부터 최대 말 사육지였던 제주에서는 상산(上山)방목이 이뤄졌다. 백록담 부근 해발 1400∼1950m에서 여름철 소와 말을 산으로 올려 보냈는데 진드기를 구제하고 신선한 풀을 먹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1975년부터 방목이 금지됐으며 최근 제주조릿대 번성으로 특산식물 등이 위협을 받자 제주조릿대를 말의 먹이로 제공하는 시험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제주도 4·3사건 역시 한라산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1948년 10월 토벌대는 해안에서 5km 이상 떨어진 산간지역으로 통행을 전면 금지시켰다. 사실상 한라산 출입이 통제된 셈이었다. 당시 무장대는 어승생악 일대에 거점을 마련하고 훈련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장오리와 테역장오리 사이 넓은 평야지대도 무장대의 훈련지로 알려졌다. 무장대뿐 아니라 산간 지역 민간인들도 난리를 피해 한라산 속 동굴 등에 숨어 살기도 했다.

한라산 사라오름을 비롯해 곳곳이 명당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묘를 만들기도 했다. 국립공원 지정 이후 버섯재배를 위해 대량으로 나무를 베는 도벌에 대한 단속이 직원들의 주요 활동이기도 했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상돈을 비롯해 세계 거봉을 섭렵한 국내 전설적인 산악인들이 겨울 산악훈련을 했던 곳이 한라산이다.




▶ 한라산국립공원은…

1966년 10월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82호) 지정
1969년 10월 5·16도로(제1횡단도로) 개통
1970년 3월 한라산국립공원 지정
1973년 12월 1100도로(제2횡단도로) 개통
1974년 12월 어리목∼정상, 성판악∼정상,관음사∼정상, 영실∼정상 등산로 정비
1994년 7월 윗세오름∼남벽∼정상 구간 자연휴식년제
1996년 3월 진달래밭∼정상, 용진각∼정상 자연휴식년제
2002년 12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2003년 3월 성판악·관음사코스 정상 구간 전면 개방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2010년 10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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