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신문은 세상을 읽는 생존수단”

김기윤 기자

입력 2020-03-12 03:00:00 수정 2020-03-1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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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 내 삶 속 동아일보]
<4> 연극 연출가 김재엽 한예종 교수


김재엽씨가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에서 아버지가 남긴 기록물을 보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아버지는 그 시절에 맨날 동아일보만 봤다. 우리도 ‘소년 동아일보’만 구독해줬고 달마다 ‘월간 신동아’도 빼먹지 않으셨지.”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의 1막 5장. 극 중 형은 아버지 손에 항상 들려 있던 신문을 떠올리며 동생 ‘재엽’에게 이 대사를 던진다. 작품 속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구독했던 동아일보는 세상을 읽는 그의 눈이자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가족 이야기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한 ‘알리바이 연대기’는 김재엽 연출(47·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100% 실화에 기초한 자전적 이야기다.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난 그는 “평생 구독자였던 아버지(고 김태용) 덕분에 이 작품을 쓸 수 있었다”며 아버지 사진을 어루만졌다. 김 연출의 작품은 2014년 제50회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을 수상하며 2대에 걸친 인연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평생 한 번도 신문을 바꾸지 않으셨어요. 믿음과 신뢰가 있었으니까요.”

김 연출은 “‘알리바이 연대기’를 집필하면서 아버지 병 수발을 들며 임종까지 지켰다. 대구경북 지역에 평생 사시며 꿋꿋하게 동아일보만 고집했던 아버지의 애정은 각별했다”고 회고했다.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으로 백지광고 사태가 났을 때 아버지가 익명으로 후원금을 보내셨더라고요. 워낙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고, 검소하셔서 어디 돈을 보내거나 후원할 분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후원 감사 메달’까지 집에 보관하셨던 걸 보면 그만큼 특별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 “아버지는 평생 한번도 신문을 안바꾸셨죠” ▼

김재엽 연출은 작품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동아일보)신문에 다 나온 겁니다. 인제 사람들 다 아는 거예요” “아버지, 이거 ‘동아’일보지요? ‘동쪽’ 할 때 ‘동’ 자, ‘아세아’ 할 때 ‘아’ 자, 맞지요?” 등 아버지와 형의 실제 발언을 대사로 썼다. 작품은 2014년 동아연극상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연극대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상 등 그해 연극상을 휩쓸었다.

김 연출도 ‘소년동아’를 보고 자랐다. 그는 “요새 웹툰 보는 아이들처럼 ‘강가딘’ ‘돌배군’ 등 연재만화를 좋아했다. 마당에서 신문을 가져오면 매일 누나와 이불 속에서 신문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한자, 학습섹션, 책 소개, 직업군 인터뷰까지 빠짐없이 읽은 뒤에도 늘 ‘지면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다.

TV에 아는 인물이나 특정 이슈가 나오면 아버지는 “저분이 저 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 하고 아들에게 스크랩해 둔 연관 기사를 건넸다. 김 연출은 “재일교포로 태어나 한국사회에 적응해야 했던 아버지에게 신문은 세상을 읽는 생존 수단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문화부 기자나 PD를 꿈꾸던 김 연출은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해 우연히 ‘문우극회’ 활동을 하며 연극에 발을 들였다. ‘혜화동 1번지’ 동인을 거쳐 현재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의 대표를 맡고 있다.

“10년은 연극에 매진해야 동아연극상 수상작이 될 만한 작품이 하나 나오는 것 같았다”는 그는 용산 참사를 다룬 ‘여기, 사람이 있다’ 공연 후 1년간 독일로 떠났다. 베를린 예술대학 방문교수로 지내며 겪은 자전적 이야기는 귀국 후 연극 ‘생각은 자유’로 재탄생했다. 그가 만난 재독 간호사들의 삶은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가 되어 2017년 무대에서 피어올랐다.

자전적 경험을 시대적 상황과 연결시켜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고 평가받는 김 연출은 “남성성에 대한 반성을 담아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소외된 어머니와 누나, 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요즘 어머니를 열심히 인터뷰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동아연극상은 군사정권 시기에 검열 받을 만한 사회비판적 작품에도 상을 주는 전통과 힘이 있었다. 재정적으로 상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겠지만 연극인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고마워했다. 본보에는 “아버지께 평생 신뢰감을 준 것처럼 진실의 무게를 가진 보도를 계속 부탁한다”며 “동아 100년 역사가 가진 정체성과 다양성이 둘로 나뉜 한국사회의 틀을 깨버릴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당부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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