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바퀴도 안 달렸던 ‘동네 아줌마’에서…사막마라톤 완주한 임희선 씨[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 기자

입력 2020-03-07 14:46 수정 2021-01-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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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선 씨는 그동안 살면서 억눌렸던 울분을 사하라사막마라톤을 완주하며 떨쳐내고 왔다고 했다. 임희선 씨 제공.
사막이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모래언덕과 모래바람, 오아시스가 없으면 물 한 모금 나지 않는 삭막한 오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네 한바퀴도 달리지 않았던 평범한 아줌마 임희선 씨(47)도 그중 한명이었다. 그는 2018년 10월 불현듯 모로코 사하라사막마라톤 참가신청을 하고 6개월을 준비해 2019년 4월 230km를 6박 7일 만에 완주한 뒤 또 다시 새로운 ‘오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평범한 동네 아줌마가 사하라사막마라톤에 출전한다고 하자 졸지에 ‘미친년’이 됐다. 제대로 된 운동 한번 해본 적이 없고 깡도 오기도 한 번 제대로 부려본 적이 없이 살아왔기에 친구들의 눈에 제정신으로 보였을 리 없긴 했다. 한 친구는 ‘네 삶의 터닝 포인트니 뭐니 하면서 새로 태어나고 싶은, 뭐 그런 기분이면 차라리 성형외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한번 끓어 오른 내 가슴은 식지 않았다. 그래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삶을 뜨겁게 살아낼 수 있겠어. 이왕지사 미친년 소리를 들을 바에야 제대로 미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직장도 그만두고 훈련에 매진했고,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사하라로 떠났다.”

그에게 사막은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지만 동경의 대상이었다. “6, 7살 때쯤이었나. 엄마는 늘 ‘난 사막에 갖다 놔도 살 사람’이라고 했다. 그 때마다 대체 사막은 어떤 곳이기에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 ‘페르시아 왕자’ 속 사막도 있었다. 그곳에는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르시아 왕자가 살았고 가슴에다 불을 놓고 재를 뿌리는 마법사 아라비아 공주도 살았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초등학교 들어가서 책에서 본 사막은 모래언덕이 멋있게 펼쳐져 있었다.”

임 씨는 2014년 한 TV 다큐멘터리에 모델이자 탤런트인 이언정 씨가 사하라사막마라톤 출전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가보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그동안 나를 억눌러왔던 모든 것을 떨쳐낼 곳을 찾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며 인연을 맺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떠나면 어떡하지?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 울분 등 모든 것을 떨쳐내고 맘껏 울 장소를 찾았다. 그곳이 어렸을 때부터 동경했던 사막이었다. 뛰고 걷고 하면서 극한에 도전하면 나를 억눌렀던 모든 것을 발산할 수 있지 않을까?”

임희선 씨는 사막에서 곤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장비를 잘 준비해 발에 물집이 잡히지는 않았다고 했다. 사막은 모래만이 아니라 깨진 돌이 많아 자칫 신발 밑창이 바로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임희선 씨 제공.
대학 때부터 산악부에 들어가 산을 탔고 평소 등산을 즐겨했기에 기본 체력은 있었다. 그래도 사막은 다를 것 같아 이미 갔다 온 ‘선배’님들에게 물어물어 차근차근 준비했다.

“헬스클럽에 등록했고 인천 송도 집 근처 공원에서 걸었다. 선천적으로 달리기에 맞지 않는 심장이란 의사의 말에 뛰기 보다는 걸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대회 직전에는 10km 배낭을 메고 30km를 5시간 정도에 걸을 수 있게 됐다. 사막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운동만큼 정직하게 나를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다’를 느꼈다. 개을리 하면 바로 역효과가 나타났다.”

이렇게 준비했어도 사막은 ‘지옥’이었다. 첫째 날 32.2km, 둘째 날 32.5km, 셋째 날 37.1km, 넷째 날 무박 2일 76.3km(롱데이), 마지막 날 42.2km. 여기에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 6일 동안 먹을 식량과 침랑 등 13kg 배낭을 메고 달려야 한다.

“모든 날이 힘들었지만 모래언덕(Big Dune)을 계속 넘어야 하는 둘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움직였다. 그런데 걷기 위해 한 발을 떼면 중심축이 되는 한 발이 모래 속으로 쑥 들어갔다. 다시 그 발을 빼내어 한 걸음 옮기면 이번엔 다른 발이 전보다 두 배는 깊게 모래 속으로 빠졌다. 움직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치 개미귀신이 파놓은 개미지옥 안으로 온 몸이 빨려 드는 기분이랄까. 몇 시간동안의 사투 끝에 만신창이가 돼 퍼져 있었다.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신이 몽롱했다. 그 때 외국 참가자들이 ‘너 괜찮니’라고 했을 때 정신이 돌아왔다. 그들이 물을 건네며 의료차를 불러준다고 했다. 그럼 포기다. 손을 저으며 안 된다고 했다. 대한민국 아줌마가 누구 인가. 그 옛날 자식들 업고 걸리고 식구들 먹여 살려보겠다고 집 채 만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이산 저산을 넘었다. 나도 대한민국 아줌마다. ‘고3’ 아이도 있다.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100m~300m 심지어 400m가 넘는 끝없는 모래언덕의 파도를 헤쳐 나갔다. 두 번째 체크포인트 메디컬센터에서 쓰러졌다. 의사들이 포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제한시간 11시간보다 1시간50분 빨리 둘째 날 레이스를 마쳤다.”

밤에도 달려야 하는 롱데이의 칠흑 같은 밤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사막의 밤은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간에 머리에 쓴 랜턴이 고장 나기도 했다. 방향 감각을 잃으면 사막의 ‘고아’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온 박세훈 청년과 일본에서 온 ‘레나’란 여자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롱데이를 마쳤다.”

사막에선 모두가 도움을 준다. 임 씨는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온 참가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롱데이 때 체크포인트를 떠나 1시간을 걸었을까. 날이 밝아 선글라스를 찾아보니 없었다. 선글라스가 없다면 햇빛이 너무 강렬해 마지막 날 레이스를 할 수 없다는 뜻. 다시 돌아가 찾아야 했다. 온 길을 돌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그래도 완주를 위해선 돌아가야 했다. 그 때 묘수가 생각났다. 돌아가며 오는 사람들에게 ‘너 선글라스 2개면 하나면 빌려줘’라고 했다. 여러 사람이 지나고 독일에서 온 ‘사비나’란 여자가 선글라스를 빌려줬다. 완주하고 돌려달라고. 사막에서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완주했다.”

사막마라톤 참가자들은 발바닥 등 발이 으깨져도 참고 완주한다고 한다. 사막은 그들에게 넘어야할 산일 뿐이지 포기해야 할 두려움이 아니란다. 임희선 씨 제공.
임 씨는 철저한 준비로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10명중 7,8명은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난 국내 사막마라톤 경험자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 하루에 물을 3병을 주는데 한 병은 완주한 뒤 발을 씻는 데 썼다.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잘 닦아 주고 바셀린로션을 바르고 잘 말린 뒤 양말을 신고 잤다. 또 출발하기 전 다시 바셀린로션을 바르고 질 좋은 발가락 양말을 신고 그 위에 다시 등산 양을 겹쳐 신은 뒤 사막전용 신발을 신었다. 그래도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혀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참고 완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의지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임 씨가 사하라사막마라톤을 완주하고 오자 국내 사막마라톤 전문가들도 놀랐단다. “사막마라톤을 많이 다니고 울트라마라톤도 뛰는 이무웅 선배님(현재 만 77세)이 장하다고 했다. 솔직히 이 선배님은 내가 완주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 완주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마라톤과 울트라마라톤을 하던 ‘고수들’도 완주하기 힘든 극한의 레이스 인데 평범한 아줌마가 완주하면 급이 낮아질 것 같다며.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장하다고 박수를 보냈다.”

임 씨는 말했다. “사실 사하라사막마라톤은 누구나 신청하면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나 완주할 수 있는 대회는 아니다. 실제로 포기 하는 사람이 많다. 난 완주했다는 그 자체로 너무 행복했다.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동안 나를 억눌렀던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왔다. 이젠 어떤 일도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임 씨는 사하라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준비하고 다녀오면서 사막마라톤을 갔다 온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사막에 가는 분들은 두 부류다. 마라톤의 연장선상에서 극한의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남편과 사별했거나 자식이 자살했거나 가슴에 상처를 입은 분들이 찾는다. 사막이란 공간에서 치유의 길을 찾는 것이다.”

그는 사막마라톤에 가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오해가 있다고 했다. “사막마라톤에 가려면 경비가 만만치 않다. 내 경우 장비 구입까지 700만 원 정도 들었다. 이렇다보니 일부에서 ‘사막마라톤엔 돈 많은 사람들이 놀러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한푼 두푼 모아서 간다. 한 분은 옥탑방 보증금을 빼서 다녀오기도 했다. 다양한 사연과 의지가 그들을 사막으로 가게 한다.”

임 씨는 사하라사막마라톤 완주기를 ‘차라리 사막을 달리는 건 어때’라는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최근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등반 계획을 세웠다. 당초 4월에 갈 예정이었는데 최근 눈사태로 한국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가족 반대로 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을에 다시 떠날 계획이다. 사하라사막에도 다시 갈 것이다.

“사하라에 가기 전 사막마라톤을 경험한 선배들이 ‘가면 다시 가고 싶은 곳’라고 했다. 둘째 날 빅 듄을 넘으면서 ‘이런 거짓말을 하다니’하며 욕을 했다. 그런데 한국에 오자마자 다시 가고 싶은 게 사실이다. 다시 가면 사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지난번엔 완주에 급급해 사막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빅 듄 뒤로 지는 석양은 죽기 전에 다시 보고 싶은 명장면이다. 너무 아름답다. 사막의 밤하늘도 장관이다. 별들이 바로 내 손끝에 잡히는 듯 크고 밝다.”

임희선 씨는 때론 참가자들과 어울리며, 때론 혼자서 고독하게 사막을 질주해 완주했다. 임희선 씨 제공.
임 씨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안나푸르나 등 가보기 힘든 곳을 찾을 계획이다. 그런 곳을 찾아가는 재미가 너무 좋단다. 그러려면 몸을 단련해야 한다. 사하라사막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준비하고 다녀온 뒤 강철체력이 됐단다. 요즘도 매일 등산을 하거나 공원을 걷는다. 잘 준비하고 완주하고…. 그렇게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임 씨는 “이렇게 살려는 나를 ‘겁도 없다’며 가족이 걱정하는데 한 번 사는 인생 해볼 것 다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사막을 한번 뛰어봤다고 해서 내 삶이 확 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내 마음속에 들어온 사막이 계속해서 내 가슴을 뛰게 할 것이고,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며 내가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앞으로의 삶에서 지금껏 넘어온 빅 듄보다 더 큰 빅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때의 ‘나’라면 오르고 기고 미끄러지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빅 듄을 넘어설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사막에서 배운 빅 듄을 넘는 법이니까.’(차라리 사막을 달리는 건 어때? 에서)

사람이 100세를 살기 위해선 돈 벌고 밥 먹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즐겁게 효율적으로 사느냐도 중요하다. 사막을 가고 히말라야를 가고, 그곳을 가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사람들. 임희선 씨 같은 사람이 행복하고 현명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줄기차게 무언가를 향해 노력하는 게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사는 방법일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나라가 혼란스럽다. 이럴 때 일수록 일상의 삶을 유지하며 운동을 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운동은 면역력을 높여주고 자신만의 심장 박동에 집중해 번잡스러운 현 상황(코로나19 공포증)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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