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못 올리지만 기도하며 아픔 나눠야죠”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3-03 03:00 수정 2020-03-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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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연구소장 조한건 신부

지난달 ‘역대 교구장 유물자료집―김수환 추기경’을 출간한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조한건 신부. 그는 “연구소는 2031년 200주년을 맞는 서울대교구사를 정리하고 있다”며 “최근 미사 중단도 역사의 한 기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순절 시기임에도 미사를 올리지 못하는 초유의 상황입니다. 대구의 한 사제가 전하는 상황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기도와 단식, 자선을 통해 어려운 이웃의 아픔을 나눠야죠.”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만난 소장 조한건 신부(47)의 말이다. 당초 이날 인터뷰에서는 지난달 이 연구소에서 출간한 ‘역대 교구장 유물자료집―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전날 서울대교구의 미사 중단 발표가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지난달 26일 오후 제주와 원주 교구마저 미사 중단을 결정하면서 한국 가톨릭 역사 236년 만에 처음으로 16개 전체 교구의 미사가 중단됐다.


―서울대교구의 미사 중단 발표는 어떤 의미인가.

“한국 가톨릭사에는 ‘어떻게 하면 전례와 성사(聖事)의 연속성을 지켰느냐’에 대한 기록이 많다. 박해를 피해 몰래 고해성사하거나 간단한 형태로 보속(補贖·죄를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일)하는 등 다양한 기록이 있다.”


―미사는 중단될 수 없는 가치라는 뜻인가.

“일례로 첨례경(瞻禮經)은 기도문과 절차 등을 담은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첨례경은 1864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해와 전쟁 등으로 사제 없이 신자들끼리 모여 공소(公所) 예절을 진행했다는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코로나19 등 역병으로 인한 미사 중단 지침은 있었나.

“당연히 없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중세에는 오히려 역병이 돌 때 성당에 와서 기도하라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 때에는 성당을 언제까지 지키라는 지침이 있었다. 하지만 6·25전쟁 중 피하라는 지침에도 성당을 지키다 순교한 사제들이 적지 않다.”


―미사 중단은 한국 가톨릭사에 어떤 의미로 남을까.

“과거나 지금이나 성직자가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은 달라진 게 없다. 반면 박해 시대에는 신자들이 신부님들을 피신시켰다는 기록도 많다. 염수정 추기경님의 이번 발표도 교구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2000년 사제품을 받은 조 신부는 2012년 서강대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최초의 성서로 알려진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8년부터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유서가 화제가 됐다.

“유서 얘기는 전해 들었는데 이번에 정리하면서 처음 봤다. 유서를 세 번 접어 봉투에 넣고 풀칠했더라. 당시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된 김 추기경님의 무거운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었다. 추기경으로 임명되기 사흘 전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그 사실을 알린 서류, 은사였던 회프너 신부와 함께 추기경으로 이름이 등재된 교황청 회보도 희귀 자료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 추기경께서는 지인이나 어려운 분들에게 편지와 카드를 자주 썼다. 그런데 복사본은 많은데 원본이 대부분 없었다. 나중에 소장자들의 도움을 받아 원본을 모아 엮는 작업을 한다면 추기경의 마음과 영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서울대교구 200년사는 어떻게 정리되나.

“조선대목구로 출발한 서울대교구는 2031년 교구 설정 200주년을 맞는다. 역대 교구장의 유품을 포함해 박해 시대부터 가까운 시점까지 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내년 또는 내후년 파리외방전교회를 비롯한 해외 선교단체 자료를 중심으로 심포지엄도 진행할 계획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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