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법정은 소통의 門 열어준 큰 스승”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2-17 03:00 수정 2020-02-18 22:13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선종 11주기-입적 10주기 감회 밝힌 원로 조각가 최종태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가 김수환 추기경을 문병한 뒤 영감을 받아 그의 선종 이틀 뒤 완성한 작품 ‘영원’을 안고 서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원로 조각가이자 예술원 회원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88)는 가톨릭 미술의 대부로 2000년 길상사 관음상을 제작하며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16일 선종 11주년인 김 추기경과는 열 살 차이, 다음 달 11일 입적 10주년을 맞는 법정 스님과는 동갑이다. 최근 에세이집 ‘최종태, 그리며 살았다―한 예술가의 자유를 만나기까지의 여정’(김영사)을 낸 그를 12일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만났다.


―원로 조각가의 자유라는 말, 좀 뜻밖이다.


“나이 쉰에 아침 무렵 눈을 뜨는 찰나 희한한 체험을 했다. ‘조각이란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번쩍 스치더라. 그래서 일어나 큰절을 했는데 지나간 삶이 동영상처럼 지나갔다. 잘못한 것만 보이더라.”


―신비한 체험일까.


“세상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최근 법정 스님 관련 행사 때문에 찾아온, 불교에 밝은 변택주 작가가 ‘불교로 치면 돈오(頓悟·단박의 깨달음), 나중 38년은 점수(漸修·깨달음 이후 점진적 수행)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 추기경과의 기억을 꼽는다면….

“‘피정의 집’에 십자가의 길을 조성하면서 예수상에 가시관 아닌 월계수를 붙였다. 주변에서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추기경이 ‘괜찮다. 그리스도는 승리(부활)가 예고된 사형수였다. 승리의 상징을 붙인들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고 해서 잠잠해졌다.”


―신앙적 고민도 얘기했나.


“한 번은 ‘마음 비우는 거 해봤는데 안 된다’고 했더니 추기경이 웃으면서 ‘나도 그래’라고 하더라.”


―조각가 김종영, 화가 장욱진 같은 당대의 예술가를 스승으로 만났다.


“스승복이 있다. 두 분이 타계한 뒤에는 김 추기경, 법정 스님이라는 스승을 만났다. 김종영 선생이 생전 신과의 대화를 자주 얘기했는데, 그게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추기경께 물었더니 ‘하느님과 놀라’고 하더라(웃음).”

지하 작업실에서 그는 “60년 흙을 만졌더니 요즘은 손이 알아서 흙을 붙인다”면서 과거 김 추기경을 문병한 뒤 작업한 작품을 어루만졌다. 선종 이틀 뒤 완성한 이 작품 제목은 ‘영원’이다.

―곧 법정 스님 10주기다.

“관음상을 작업하고 싶었는데 길상사에서 연락이 왔다. 법정 스님이 집으로 왔다. 일 시킨다고 오라 가라 하지 않고 필요하면 항상 찾아왔다. 그게 법정이다. 관음상 작업할 때 김 추기경께 ‘불교 작업으로 파문당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400년 전 일본 나가사키에서 관음상 놓고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했다. 그럴 리 없다’며 웃으셨다.”

―왜 관음상에 관심을….

“1965년 반가사유상을 만난 뒤 내 갈 길을 정했다. 완전함과 깨끗함, 종교성…. 그게 소녀상에 이어 성모상 관음상으로 나아갔다.”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 어떤 스승이었나.

“두 분 모두 내게 자유를 줬다. 무엇을 해도 잔소리 한 마디 한 적이 없다. 눈빛에서도 그런 게 없었다.”

―존경받는 스승의 부재(不在)를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스승 지도자 리더가 소통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 그냥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주변에 생명을 나눠줘야 한다. 함석헌 선생, 성철 스님, 김 추기경, 법정 스님은 시국이 심란할 때면 쓴소리를 했다. 존경 받는 어른들의 나라 걱정이 있어 국민이 그나마 안심했다. 지금은 그런 분들이 없으니 안타깝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