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영광’ 뒤엔 뚝심투자 CJ 남매

이서현 기자

입력 2020-02-12 03:00 수정 2020-02-12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후원자 이재현 회장-이미경 부회장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때 ‘오늘 밤새워 술을 먹겠다’고 소감을 밝힌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이 끝나고 배우, 스태프와 함께 향한 곳은 로스앤젤레스(LA) 웨스트할리우드에 자리 잡은 프라이빗 클럽 ‘소호하우스’였다. 이곳엔 평소 메뉴에 없던 불고기 김밥 계란말이 등 한국 음식이 차려졌다. 이 1차 뒤풀이를 마련한 사람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었다.

이번 아카데미 상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화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 뒤에서 ‘오스카 레이스’를 진두지휘한 CJ그룹과 이미경 부회장의 지원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후보 선정 이후 시상식까지 수개월간의 영화 홍보가 선거운동을 방불케 해 ‘오스카 캠페인’으로 불리는 과정을 직접 경험한 사례는 한국 영화 역사상 ‘기생충’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들은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 당시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 부회장을 조명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 시간) ‘기생충의 재정적 후원자는 식품 회사에서 출발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할리우드와 오랜 인연을 갖고 있는 이 부회장이 한국 영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온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부회장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식품 회사에 불과했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가 독립했을 때 동생과 나는 진심으로 회사를 확장하고 싶었다”며 할리우드에 눈을 돌려 1995년 드림웍스에 투자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제프리 캐천버그 드림웍스 공동창업자는 이 부회장에 대해 “돈과 야망, 무한한 천재성으로 무장하고 할리우드로 왔다”고 회고했다.

이 부회장과 동생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5년간 영화 투자와 제작, 극장, 콘텐츠 투자, 방송 등 문화 콘텐츠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 진출할 밑그림을 그렸다. 봉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며 인연을 이어나갔다.

유일하게 미국 대형 제작사의 작품이 아니었던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은 봉 감독은 물론 CJ에도 모험이었다. 아카데미 상 후보 선정과 수상은 관객의 반응뿐 아니라 투표권을 가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표심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 넉넉한 예산과 경험 많은 인력, 글로벌 영화계 네트워크, 전략적 프로모션까지 모두 결합되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상설 오스카 전담팀을 운영하는 할리우드 제작사는 대규모 자본과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 어려운 싸움이었다. 2017년 AMPAS 회원이 된 이 부회장은 이 과정을 뒤에서 후원했다.

이 부회장의 지원 아래 CJ ENM은 영화사업본부 해외배급팀을 중심으로 전체 캠페인을 총괄하고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현지 프로모션과 파티, 홍보 등을 통해 ‘기생충 캠페인’을 펼쳐나갔다. 마침내 오스카 4관왕의 역사를 쓴 10일(현지 시간) 그는 시상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고 “봉준호의 모든 게 좋다”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