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 물결 지나 붉은 석양 만나는 곳

글·사진=김동욱 기자

입력 2020-02-08 03:00 수정 2020-02-08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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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순천 보성|

순천만습지 주변에 펼쳐진 갈대밭을 걸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다.
겨울의 전남은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기 좋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걷거나 앉아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다. 마음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곳. 순천 보성 광양은 그런 여행에 딱 알맞은 곳이다.


순천은 ‘대한민국 생태수도’로서 손색없는 곳이다. 순천만이라는 천혜의 자연습지 덕분이다. 순천만습지는 여의도 면적의 약 2배(5.4km²)인 갈대밭과 약 10배(22.6km²)인 광활한 갯벌로 이뤄져 있다.

순천만습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계절은 겨울이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를 비롯해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같은 희귀 철새들이 찾아온다. 순천만에서 발견된 철새는 총 230여 종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의 절반 정도다. 먼 길을 날아 찾아온 흑두루미들을 2월까지 볼 수 있다.

순천만습지를 또 유명하게 만든 것은 갈대밭이다. 갈대밭을 거닐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11, 12월이다. 하지만 한적하게 황금빛으로 물든 갈대밭을 감상할 수 있는 시기가 2월이다. 절정을 지나 이제는 말라 버리기 시작한 갈대는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이리 몸을 뉘었다 저리 몸을 뉘었다 한다. 강한 바람이 불면 갈대숲이 내는 ‘쉬이익 쉬이익’ 소리가 운치 있게 들린다. 사방이 뻥 뚫려 있어 칼 같은 겨울바람이 매섭다. 그러나 그 속에서 신기하게도 햇살을 반사하는 갈대밭의 따사로운 기운 덕분에 마음만은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갈대밭 사이로 난 나무 덱을 따라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끝에는 한곳으로 합쳐진다. 기분에 따라 어느 길을 선택해서 걸어도 된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한층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무 덱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될 만큼 넓으니 연인이나 가족의 손을 잡고 걸어보자.

나무 덱이 끝나는 지점에 용산 전망대가 이어진다. 1.3km 길이의 산책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전망대에 이른다. 조금 가파른 구간도 있지만 올라갈 가치는 충분하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순천만의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 S자 물길을 담은 순천만습지, 갈대밭의 신비로운 모습, 철새들이 춤추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색다르게 순천만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갈대밭 입구 선착장에서 생태체험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체험선(성인 7000원)을 이용하면 6km에 이르는 S자 물길을 따라 순천만습지를 조금 더 가깝게 감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순천만 생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연생태관, 천체투영실과 천문대 등 볼거리가 넘친다.


조금 더 걸을 여유와 체력이 있다면 자동차로 약 5km 떨어진 순천만국가정원을 방문해도 좋다. 순천만습지와 이름이 비슷해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 2013년 조성된 순천만국가정원은 2016년 대한민국 최초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꽤 넓은 편이어서 모든 곳을 둘러보려 한다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 정원 지도를 미리 보고 가보고 싶은 곳을 골라 가는 것이 좋다.

순천만국가정원에는 세계 각국의 전통을 살린 정원들이 있다.
주요 시설로는 세계 13개국이 참여해 나라마다 특색 있는 전통양식으로 가꾼 세계정원이 눈에 띈다. 나라마다 색다른 정원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사진 찍기도 좋다. 작가, 시민, 기업체 등이 공모를 통해 참여한 30여 개의 참여정원도 있다. 호수, 연못, 계곡, 소나무 숲, 편백나무 숲 등 테마정원 10여 곳도 자리한다. 봄과 가을에는 사람들이 몰려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지만 겨울에는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다. 날씨가 추워 돌아보기 힘들다면 실내정원에 가서 몸을 녹일 수 있다.

정원해설사와 함께 정원을 둘러보는 코스는 인기다. 겨울에는 오전 10시, 오후 1시 30분, 오후 3시 등 세 차례 무료로 진행된다. 약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전문해설사가 동행해 정원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20인 이상은 예약해야 한다.

와온해변은 ‘석양 인생사진’ 명소다.
순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몰이다. 특히 와온해변은 일몰 인증샷 또는 일몰 인생샷으로 유명하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갯벌이 붉게 물든다. 고흥반도 쪽 하늘도 온통 발그레 타오른다. 갯벌과 산자락, 하늘이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풍경에 눈을 떼기 힘들다. 상상 속 붉은 갯벌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사진 동호회원과 연인, 친구들이 제각기 찰나의 순간을 담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진기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일몰 광경은 한참 동안 이어진다. 완전한 어둠이 깔려도 그 잔상은 오랫동안 남는다.


순천에 왔으니 그 옆의 벌교를 가보지 않을 수 없다. 보성군 벌교 읍내로 들어서면 따사롭고 푸근한 분위기에 마음마저 편해진다. 읍내는 작다. 느긋하게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근대식 건물들이 벽과 벽을 맞대고 줄지어 있다. 이곳은 어린 시절을 벌교에서 보낸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한다. 1948년부터 1953년까지의 벌교를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지금은 그 모습이 재현돼 관광객을 맞고 있다.

그중 ‘보성여관’이 가장 인기가 높다. 소설 속에서는 ‘남도여관’이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1935년 개관해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됐고 2012년 복원작업 끝에 재개관했다. 한옥 양식이 혼합된 일본식 여관으로 전시장이자 카페, 문화체험 공간이면서 동시에 숙박업소이기도 하다. 입장료 1000원을 내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숙박 가능한 7개의 객실이 운영 중이다.

윤동주 시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친필 원고가 있는 정병욱 선생 가옥.
이 외에도 벌교금융조합, 부용교(소화다리), 김범우의 집 등 소설 속 장소를 현실에서 만나는 느낌이 특별하다. 목골목에 보이는 일식 목조주택, 국내 1970, 80년대 감성이 서린 간판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곳곳에 개성 있는 카페들도 만나볼 수 있다. 책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그 자체로 벌교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도 방문해보자. 100년 남짓 된 작은 집에는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친필 원고가 있다.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며 마루에 앉아 시집을 읽어보는 시간은 과거로의 소중한 여행이다.

벌교 꼬막은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에까지 올랐던 겨울 제철 음식.
○ 여행정보


팁+ △순천만습지 갈대밭은 2월부터 베기 시작한다. 3월에 가면 더 이상 갈대를 볼 수 없으니 올겨울 마지막 갈대밭을 볼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순천만습지 입장은 오후 5시 30분 마감한다. 이용권 (성인 8000원) 하나로 순천만습지와 순천만국가정원 두 곳을 입장할 수 있다. △순천만습지와 와온해변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여수 순천 광양 보성을 잇는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6권역’ 코스다. 광양의 망덕포구와 구봉산 전망대, 여수 향일암과 진남관·엑스포공원, 보성의 태백산맥 문학거리와 대한다원 녹차밭 등을 품고 있다. △겨울철 별미 ‘벌교 꼬막’을 빼놓을 수 없다. 보성여관 맞은편 ‘정도가’를 찾아 꼬막정식을 맛볼 것을 추천한다. 통꼬막, 양념꼬막, 꼬막전 등이 한가득 나온다. 된장 스튜도 놓치지 말자.감성+ △책: 무진기행(김승옥·1964년). 넓게 펼쳐진 갈대밭 사이로 보이는 순천만 제방이 무진기행의 배경이다. 무진은 가상의 도시지만 작가는 순천을 떠올리며 썼다고 한다. △영화: 위험한 상견례(감독 김진영·2011년). 벌교가 배경으로 등장해 벌교 꼬막을 널리 알렸다.

여행지 지수(★ 5개 만점)
△연인과 손잡고 돌아다니기 ★★★★★
△일몰 배경으로 인생샷 찍기 ★★★★★
△한적하고 여유롭게 천천히 걷기 ★★★★★
△제철 음식인 꼬막 맛보기 ★★★★

글·사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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