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뛰는 ‘AI 스타트업 리그’… 전세계 스카우트 몰려

텔아비브·예루살렘=이세형 특파원

입력 2020-01-24 03:00:00 수정 2020-01-2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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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글로벌 AI전쟁, 미래를 잡아라]
<5> ‘인공지능 창업 천국’ 이스라엘


이스라엘 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카티카AI’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도로 상황을 예측해 자동차의 속도를 조절한다. 카티카AI의 프로그램이 장착된 자동차가 도로 상황을 인식하는 모습을 담은 모니터 화면. 카티카AI 제공
지난해 12월 16일 이스라엘 경제 중심지 텔아비브에 위치한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카티카AI’를 찾았다. 기술자들이 실험용 자동차 안에 설치된 모니터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화면에는 해당 자동차가 주행 중 인식했던 다른 자동차와 사람이 각각 다른 색깔로 나타났다. 주행 거리와 속도 변화 등을 담은 각종 데이터도 빼곡하게 표시됐다.

카티카AI는 이스라엘의 유명 AI 기업 ‘코티카’에서 지난해 9월 분사했다. 이 회사의 자율주행 기술은 단순히 도로에 있는 물체를 인식하는 수준이 아니라 후속 상황을 예측해 속도 조절을 하고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령 주택가 도로에서 스쿨버스와 마주치면 곧 어린이들이 버스에서 내린다는 점을 감안해 자동차가 저절로 속도를 줄이는 식이다.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카티카는 분사 직후부터 일본 도요타, 독일 BMW 등 세계적 자동차회사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카리나 오디나에브 코티카 공동창업자 겸 카티카AI 이사는 “2020년 2, 3분기에 우리 기술을 적용한 자동차를 유럽 및 일본의 유명 자동차 기업과 함께 생산하고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AI 스타트업의 보고(寶庫)

‘창업국가’란 별명이 붙을 만큼 수많은 스타트업이 있는 이스라엘에서는 AI 산업 또한 대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선도한다. 독일 벤처투자사인 아스가르트의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에는 미국(1393개), 중국(383개) 다음으로 많은 362개의 AI 스타트업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인텔 같은 세계적 정보기술(IT) 대기업도 이스라엘 AI 산업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연구개발(R&D)센터를 운용하고 있다. 직접 투자와 인재 유치도 활발하다. 한국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도 현지 AI 스타트업이 보유한 우수한 기술을 발굴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인텔은 2017년 3월 153억 달러(약 17조8500억 원)에 AI 기반자율주행자동차 스타트업 ‘모빌아이’를 사들였다. 지난해 12월에는 AI 반도체 스타트업 ‘하바나 랩스’도 20억 달러(약 2조3330억 원)에 인수했다. 미국 의료기기 기업 메드트로닉은 2018년 12월 AI 기반 수술용 로봇 스타트업 ‘마조 로보틱스’를 16억 달러(약 1조8670억 원)에 사들였다. 영국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는 AI 기반 슈퍼마켓 매장 관리 기술을 개발하는 ‘트리고’와 미래형 무인 슈퍼마켓을 개발하고 있다.

란 나탄존 이스라엘 외교부 국가브랜드팀장은 “스포츠로 치면 ‘1부 리그’ 프로팀의 스카우트들이 ‘2부 리그’와 ‘대학 리그’의 우수한 팀과 협력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하위 리그의 유망주를 일찌감치 비교적 싼 가격에 발굴해 인재와 기술을 입도선매(立稻先賣) 하겠다는 의도다. 나탄존 팀장은 “예전에는 서구 대기업이 사이버보안 스타트업에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AI 스타트업이 단연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 대학이 창업·기술 선도

윌리엄 영국 왕세손(가운데)이 2018년 6월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오캠의 ‘마이아이2’를 사용해 문서를 읽고 있다. 왼쪽은 지브 아비람 오캠 공동창업자, 오른쪽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진=오캠 홈페이지
이스라엘의 AI 스타트업 열기를 주도하는 곳은 대학이다. ‘모빌아이’ 창업자이자 ‘자율주행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암논 샤슈아 히브리대 컴퓨터과학과 석좌교수(60)처럼 AI의 성장 가능성에 매료돼 창업을 시도하는 교수들이 많다. 코티카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조시 지비 역시 테크니온대 컴퓨터학과 교수다.

샤슈아 교수는 인공신경망(딥러닝)과 컴퓨터 비전 분야의 전문가다. 그는 모빌아이 창업 전 3차원 비(非)파괴 검사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해 대기업에 매각했고 이후 모빌아이를 창업해 인텔에 팔았다. 그는 지금도 AI 기반 웨어러블 헬스기기 스타트업 ‘오캠’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오캠은 시각장애인에게 문자, 사람 얼굴, 색깔 등을 인식해 알려주는 22.5g 무게의 안경 부착용 웨어러블 헬스기기 ‘마이아이2’를 개발했다. 샤슈아 교수는 “이스라엘 교수 중에는 관련 연구를 통해 창업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 앞으로 교수나 대학원생들이 AI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들도 정책적으로 이를 지원하고 있다. 이샤크 벤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융합사이버연구센터장은 “AI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커 대학도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려고 한다”고 말했다. 소속 교수나 학생이 창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 학교 인지도가 올라가고, 기부금 등 투자 유치도 쉬워진다는 이유에서다. 버텍스벤처스의 야나이 오론 파트너는 “이스라엘이 그간 강세를 보여 온 IT, 정보보안, 소프트웨어 산업이 AI와 연관성이 높다. 기존 산업과 AI가 자연스럽게 융합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정부도 정책 지원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지에서는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추진하는 국가 차원의 AI 성장 전략 즉 ‘AI 이니셔티브’가 빠르면 상반기 중 발표될 것으로 보고 있다.

텔아비브·예루살렘=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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