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돈 5만엔으로 창업…매출 83조원 ‘거인 롯데’ 이끌다

김재범 기자

입력 2020-01-20 05:45:00 수정 2020-01-2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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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사업을 시작으로 식품부터 유통, 관광, 석유화학, 건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 영역을 개척해 롯데그룹을 재계 순위 5위로 일군 신격호 명예회장이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제공|롯데그룹

■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재계의 큰 별 지다

20세때 홀로 일본 건너가 고학생활
기름·비누·화장품 거쳐 껌사업 시작
식품·유통·호텔·중공업 등 사업확장
30여년 숙원사업 ‘월드타워’도 안착

유일한 ‘창업1세대 경영인’이었던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4시29분 서울 아산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9세.

롯데그룹측은 이날 “노환으로 입원중이던 신격호 명예회장이 18일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19일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장례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롯데그룹 그룹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22일 오전 7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명예장례위원장을 맡고,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와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가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롯데제과 공장을 둘러보는 신격호 명예회장(연도미상). 사진제공|롯데그룹

● 껌 사업으로 시작…맨손으로 매출 83조 대기업 일궈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에서 식품부터 유통, 관광, 석유화학, 건설 등 다양한 사업분야를 통해 오늘날 매출 83조 원, 한국 재계 순위 5위의 대기업 롯데그룹을 일구어낸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이다.

1921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20세인 1941년 혼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조선인’이란 차별을 이겨내며 힘든 고학생활을 하며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다. 빌린 돈 5만 엔을 자본으로 1944년 절삭공구용 기름을 제조하는 공장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비누, 화장품 공장을 거쳐 1948년 (주)롯데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껌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명이자 그룹의 대표 브랜드가 된 롯데는 신 명예회장이 좋아했던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왔다. 일본에서 롯데는 시장의 70%까지 장악한 껌 사업의 성공을 기반으로 제과와 청량음료 분야로 기업을 빠르게 키웠다. 1980년대 중반 그는 일본에서 종합상사, 부동산, 전자공업, 프로야구단(현 롯데마린스), 롯데리아 등을 거느린 재벌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1989년 롯데월드 개관을 축하하는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 사진제공|롯데그룹

● 1967년 롯데제과 세워 국내 진출

신 명예회장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투자하며 기업을 키운 것은 1965년 한일 수교 이후였다. 1967년 롯데제과를 세운 뒤 일본에서 쌓은 사업역량을 바탕으로 왔다껌, 쥬시후레시 등 많은 히트상품을 발표하며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잡았다. 1970년대는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현 롯데푸드)을 세워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자리잡았다.


평소 그는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관광입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라며 관광과 유통을 대한민국의 기반산업으로 주목했다. 이런 의지로 1973년 객실 1000여 실의 당시 국내 최고층 건물이자 동양 최대 특급호텔인 롯데호텔이 서울 소공동에 문을 열었다. 이어 1979년에는 롯데호텔 옆에 롯데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신 명예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호남석유화학(현 롯데 케미컬)과 롯데건설 등 중공업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11년 롯데월드타워 건설현장을 방문한 신격호 명예회장. 사진제공|롯데그룹

● 관광입국 30년 신념의 상징, 롯데월드타워

지금은 롯데그룹의 상징이자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 국내 최고층빌딩 잠실 롯데월드타워도 신 명예회장이 갖고 있던 신념의 결실이다. 신 명예회장은 1982년 롯데물산을 설립해 ‘제2롯데월드’ 추진을 본격화했고, 1987년부터 대지를 매입했다. 수차례 사업계획이 반려되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2011년 지상 123층, 555m 높이의 롯데월드타워를 포함한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가 승인됐다. 2014년 롯데월드몰과 아쿠아리움을 시작으로 시설들이 차례로 문을 열었고, 2017년 4월 30여년에 걸친 그의 숙원사업인 롯데월드타워가 마침내 그랜드 오픈했다.

고인은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197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1981년 동탑산업훈장, 그리고 1995년 관광산업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경영인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었지만, 말년에는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는 어려움을 겪었다.

한편,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대한민국 산업화 시대를 연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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