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속을 뚫고 사막을 달린다…오지마라토너 김경수[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기자

입력 2020-01-18 14:00 수정 2021-01-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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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볼리비아 우유니사막을 달리고 있는 김경수 과장. 김경수 과장 제공.
2001년 가을 어느 날. 집에서 뒹굴 거리며 TV를 지켜보다 한 장면에 눈이 멈췄다. 황량한 사막에서 멀리 짐승처럼 보이던 물체는 점차 사람의 형체를 갖췄다. 이들은 장딴지에 힘줄이 불끈 선 한 무리의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다.

사막과 오지를 6400km 넘게 달린 김경수 서울 강북구청 마을협치과 과장(57)의 도전은 이 한 장면에서 시작됐다.

2005년 중국 고비사막마라톤에서 시각장애인과 동반주하고 있는 김경수 과장(오른쪽). 김경수 과장 제공.
“저게 뭐지? 가슴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 들었다. 굳게 잠긴 빗장이 ‘삐걱’하고 풀린 느낌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그 두근거림은 격한 압박으로 변했다. 사막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그 기분은 가을이 다 지나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겨울이 오자 가슴앓이는 막연한 꿈으로 그려졌다. 그래, 저길 가는 거야, 사하라 사막에.”

마흔을 목전에 둔 중년이 된 그는 현실의 무게에 눌려 사그라졌던 꿈과 열정이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2003년 4월 사하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11년 호주 트랙 아웃백 레이스 530km을 완주한 김경수 과장. 김경수 과장 제공.
“미국과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사스가 창궐해 전 세계가 흉흉한 시절이었다. 전혀 생소한 곳에서 열사의 뜨거운 날씨에 흙먼지와 콧물로 뒤범벅이 돼 길을 잃고 헤매면서 5박 7일 동안 243km를 달렸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으깨어져 땅바닥에 닿을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왔지만 완주했다는 그 자체로 모든 게 잊혀졌다.”

엄청난 고통이 따랐지만 뭔가 새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사하라는 내 삶의 축을 뒤흔들어 버렸다. 작은 호기심과 열정이 나를 사하라로 가게 했지만 사하라는 내 존재의 의미를 알게 해줬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사하라는 내가 선택해서 갔다. 하루하루, 한발 한발이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넘어 섰다는 데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찾았다.”

2012년 미국 그랜드캐니언울트라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김경수 과장. 김경수 과장 제공.
그동안 운동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던 그는 그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구청 총무과 말단 직원으로 민원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셈 치고 동네 한바퀴, 학교 운동장을 달렸다. 운동을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 어떤 장비를 준비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이미 완주한 외국 선수들이 달리는 선수들 사진을 보고 뛸 준비를 했다. 마라톤 하프코스나 달렸을까. 풀코스 완주 한번 없이 사하라 지옥의 사막레이스를 완주했다.

모로코 사하라사막을 시작으로 고비(중국=253km, 몽골=250km), 칠레 아카타마(252km), 나미비아사막(260km), 중국 타클라마칸(100km), 호주 트랙 아웃백 레이스(530km), 미국 그랜드캐니언(171km), 부탄 더 라스트 시크릿(200km·the Last Secret)…. 2019년까지 20개가 넘는 사막과 오지를 달렸다.

2009년 아프리카 나미비아사막마라톤을 시각장애인과 함께 달리고 있는 김경수 과장(가운데). 김경수 과장 제공.
물론 사막과 오지를 달리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사하라에 처음 다녀온 뒤 엄청나게 훈련 했다. 출근할 때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다녔다. 모든 일과를 끝낸 뒤 오후 9시부터 새벽 1,2시까지 달리고 체력훈련을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몸을 잘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2013년 부탄에서는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2013년 6월 5박 6일 동안 해발 3430m를 포함해 부탄 산악지역을 200km 달리는 오지레이스였다.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 불안했다”고 했다. 뭔가 준비가 덜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 씨는 레이스 첫날 종아리에서 시작된 경련이 허벅지와 복부를 넘어 목까지 올라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개울에 처박혔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친구가 ‘내가 CP(Check Point)에 가서 의사를 불러 오겠다’며 갔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때 원주민 하나가 소리 없이 다가와 엉켜버린 전신의 근육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따랐다. 참았다. 한 40분 넘었을까. 그때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기다시피 해서 첫째 날을 넘겼고 결국 완주했다. 그 원주민이 없었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의사를 불어온다는 친구는 결국 오지 않았다.”

2019년 몽골 고비사막마라톤을 완주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는 김경수 과장. 김경수 과장 제공.
생사를 넘나드는 사막과 오지에선 서로 도우면서 간다. 어려울 때 도우면 그 기쁨도 더 크다.
“2007년 아카타마사막에서였다. 한 일본 여자 선수가 협곡에서 저체온증으로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내가 핫팩과 침랑으로 몸을 덥혀 주고 함께 CP에서 의료진에게 넘기고 떠났다. 나중에 ‘살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기쁨보다는 또 하나 배웠다는 것에 내가 더 고마웠다. 극한의 순간에도 나눔이 필요하고 그 조그만 나눔은 생명도 건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김 과장은 2012년엔 69세의 ‘노익장’ 이무웅 선생(현 77세)의 도움으로 미국 그랜드캐니언 271km를 완주할 수 있었다.

“첫날(50.7km) 천둥번개에 비가 쏟아졌다. 둘째 날(46.1km)에도 비에 젖어 체력이 고갈 됐다. 셋째 날(무박 2일 75.8km) 체력 고갈 후유증에 길을 일고 헤매는 등 추위와 공포 속에 가까스로 CP7(63.5km)에 도착해 쓰러졌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 선생님이 깨웠다. 내가 겪은 고통을 눈물 흘리며 얘기하자 ‘경수 씨 많이 힘들었겠네, 괜찮아. 잘 견뎌냈잖아. 내가 같이 가줄게 쉬엄쉬엄 가보자고’라고 했다. 어르신이 기록을 포기하고 나랑 보조를 맞춘 것이다. CP8(69.8km)에서 다시 주저앉았다. ‘어르신 전 포기해야겠습니다. 먼저 가세요’라고 했는데 ‘그래 내가 봐도 경수 씨가 많이 힘들어 보이네. 그래서 나는 자네와 함께 가야겠어.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지’라고 했다. 그렇게 롱데이 27시간의 사투를 마쳤다. 그리고 완주했다. 그때 ‘어르신 없었으면 결승선을 못 밟을 뻔했습니니다’고 했더니 ‘난 그냥 기다려 준 것밖에 없어’라고 했다.”

김 과장은 그 때 기다림의 미덕을 깨달았단다. “그냥 기다려준다는 것! 이것에 그런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난 이제껏 모르고 살았다. 격려는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냥 기다려 주는 것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는 사막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고 있다.

“때로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할까? 이 자리에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전진할 것인가. 이런 고민은 한계에 다다른 자만이 겪을 수 있는 ‘행복한’ 비명이다. 최선을 다했기에 한계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또 다를 세계가 펼쳐진다. 바람은 움직임으로 존재하듯 한계를 넘어선 증거는 기록으로 존재한다. 그 기록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 나의 자부심이 될 것이다. 죽을 만큼 힘이 들 때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견뎌낼 것인가. 선택은 온전히 각자의 몫이다.”

김 과장은 혼자서도 힘든 사막 오지레이스에 시각장애인(이용술 송경태) 레이스도우미로 4차례 완주했다.

“2005년 고비사막에 이용술 씨와 함께 갔다. 5박 6일 동안 253km를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였다. 내게 의존한 친구까지 책임져야 하는 지독히 외로운 레이스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89명의 선수 중 완주율이 60%에도 못 미칠 정도로 힘들었다. 포기하려는 순간 난 한 사람의 생명도 책임져야 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견뎌내고 42km의 블랙 고비를 통과했다. 1234개의 철제 계단을 올라 플레이밍 산맥까지 32km를 넘었다. 선수들 사이에서 우리의 통과 여부를 놓고 내기를 할 정도로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천 길 낭떠러지의 수 백 미터 산허리도 용케 넘었다. 다 도착한 줄 알았는데 큰 사막 산(빅 듄)이 가로 막았다. 용술 씨가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난 포기할 수 없었다. 내게 의지 한 채 달려온 용술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달렸고 결국 완주했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을까?

“모든 레이스가 다 힘들었다. 그래도 꼽자면 2011년 호주 트랙 아웃백 레이스였다. 8박 10일 동안 530km를 달리는 레이스인데 중간에 자연발화로 불까지 났다. 불 속을 뚫고 달렸다. 발바닥에서 전해오는 통증 때문에 발 딛는 게 두려웠다. 면도칼로 긁는 듯 아프지만 ‘몸 따로 정신 따로’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2019년 몽골 고비사막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김경수 과장(오른쪽).
김 과장에게 사막 오지 레이스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자리다. “사막 완주가 자존심을 지키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죽을 만큼 힘들 때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뉘어 행동한다. 포기하는 자와 견뎌 내는 자. 전자는 포기의 명분을 미리 정해 놓고 그 길로 가는 반면 후자는 견디면 앞이 보일 거라는 믿음으로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두 상황에 대한 주변 반응도 다르다.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도 용기라며 위로하다가 견뎌 내는 자에게는 ‘그깟 게 뭐라고…’하며 비아냥거린다. 견디기를 선택했다면 주변의 비아냥거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저 나를 믿으면 된다. 내가 선택한 길이 새로운 길이 된다는 믿음으로 혼신을 다해 집중하면 된다.”

김 과장은 올해 일정은 아직 잡지 않았단다. 하지만 사막과 오지를 완주하기 위해 매일 몸을 단련하고 있다. 북한산 ‘김신조 루트’ 오르막길을 오르내리고 헬스클럽에서 근육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한다.


“직장을 다니다보니 더 조심해야 한다. 직장에선 일이 중심이다. 그래서 ‘도둑 운동’하듯 조용히 한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또 사막으로 갈 생각이다. 아직 올해 일정을 잡진 않았지만 5월 하와이 마우나로아화산섬 레이스를 생각하고 있다. 직장 일정에 따라 휴가를 낼 수 있으면 갈 생각이다.”

김 과장은 힘닿는 데까지 달린다고 했다.

“최후의 승리! 그것은 부단히 노력한 자에게 주어지는 신의 은총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쓴 구절은 올라설 수 없을 것 같던 바닥끝에 있던 나를 끌어 올렸다. 그 한 구절이 나의 인생을 변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

2019년 몽골 고비사막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김경수 과장(오른쪽).
김 과장은 지난해 사막 오지 마라톤 완주 경험을 ‘나는 아직 멈추고 싶지 않다’란 책으로 엮었다. 그는 지금까지 오지 레이스에 대해 4권을 냈다. 공무원으로서 노무 등 직무관련 책도 3권 썼다. 2007년에는 청백봉사상 본상도 수상했다. 사막을 달리면서 더 일에 철저해 일과 개인 삶에서 모두 성공적인 스토리를 쓰고 있다.

“도전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벽, 주변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성공도 실패도 없다. 험난한 여정을 두 발로 밟으며 부대낌 속에 울고 웃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한계로 향한다. 한계의 목전에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대범하게 거듭나기도 한다. 주저앉아 포기할 것인가. 참고 견뎌낼 것인가의 선택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나에게 있어 한계는 넘어서기 위한 경계일 뿐이다. 잘 견뎌 낸 자는 희망찬 이듬해 봄볕을 맛볼 수 있다. 새 달력을 건다고 새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제 마음 그대로 새로운 시간을 맞는 건 퇴보다. 남과 비교할 때 행복은 멀어진다. 행복은 열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덤으로 그 삶에 덧입혀지는 향기다. 그러니 행복이 쌓이면 삶의 동력이 된다. 지금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경계를 허물고 한계의 벽을 뛰어 넘어보자. 그래야 성공도 행복도 거머쥘 수 있다.”(나는 아직 멈추고 싶지 않다에서)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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