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자는 말에… “감사 뜨면 책임질겁니까”

고도예 기자 , 김준일 기자

입력 2020-01-17 03:00 수정 2020-01-1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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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2020 新목민심서-공직사회 뿌리부터 바꾸자]
<7> 적극행정 막는 감사 공포증


“감사 나와서 제가 다치면 실장님이 책임지시겠습니까.”

지난 정부에서 100차례 이상 규제조정회의를 주재했던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가 회의에 참석한 공무원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강 교수는 민간기업에 있다가 2014년부터 2년간 규제개혁 업무를 총괄하는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으로 있었다.

그가 규제 개선을 추진할 때 최대 걸림돌은 규제 자체가 아니라 공무원들의 ‘감사 공포증’이었다. 규제조정실에서 규제를 전향적으로 풀자는 의견을 내면 규제 권한을 가진 해당 공무원들은 대번에 “감사 때문에 내가 곤란해질 것”이라고 반응했다. 그러면 다시 강 교수는 “규제조정실장이 지시했다고 문서로 남겨라”란 말로 회의를 이어 나가야 했다.

공직사회가 감사 공포증을 앓고 있다. 적극적으로 일했다가 감사원에서 지적을 당해 징계를 당할까 봐 적극행정은커녕 ‘면책권’ 자체를 믿지 않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시민단체나 이해관계자의 감사청구권에 노출돼 있을 뿐 아니라 정권 교체기마다 벌어지는 정책감사를 특히 두려워한다. 과거 정권에서 했던 정책적 선택이 자체 감사, 감사원 감사에 이어 최악의 경우 검찰 통보에 이르는 선례가 굳어지고 있어서다.



▼ “정권 바뀌면 감사표적 될 수도…” 몸사리기 선택 ▼

실제로 특정 업무나 사업을 지정해 감사를 벌이는 특정감사는 2016년 136건에서 2018년 179건으로 31% 늘었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은 법령에서 ‘가능’과 ‘불가능’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싶으면 가급적 불가능을 택하려고 한다.

이는 공직생활에서 오래도록 체득한 ‘보신(保身)’의 방편이다. ‘가능’을 택했다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감사에서 빠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 적극행정이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다.

감사원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적극행정 활성화 장애요인 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들이 지적한 적극행정을 가로막는 요인 1위(27%)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 A 씨는 “조직 내에서도 적극행정을 권하고, 나 역시 ‘되는 방향’으로 일을 하려 한다”며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면 혹시라도 감사를 받게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여서 수평적, 창의적으로 일해야 하는데 감사원은 도전을 용인하는 감사가 아니라 도전을 원천적으로 막는 감사를 하고 있어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공직사회에 ‘감사원 감사는 곧 징계’라는 도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고도예 yea@donga.com·김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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