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제조업 머물면 안돼”… 정의선표 리더십 핵심은 ‘개방형 혁신’

마운틴뷰=지민구 기자

입력 2020-01-16 03:00 수정 2020-0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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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 다음 100년 키우는 재계 뉴 리더]
<4> 모빌리티 기업 변신 나선 현대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1월 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모빌리티 이노베이터스 포럼 2019’에서 우버 그랩 등 글로벌 모빌리티 스타트업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새로운 이동 수단·서비스 개발과 관련한 철학을 발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지난해 12월 5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거점인 크래들에 들어서자 로비에 전시된 네 다리로 걸어 다니는 자동차 ‘엘리베이트(Elevate)’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 회사의 사무실이지만 일반 자동차 모델은 전시돼 있지 않았다. 엘리베이트는 크래들이 미국의 여러 스타트업과 협력해 만들고 있는 미래 이동 수단이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생산에 그치지 않고 인간 중심의 모든 이동 수단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빌리티 기업이 되겠다.”

김창희 크래들 부소장은 완성차 기업이 실리콘밸리에 사무소를 내고 자동차 대신 엘리베이트를 전시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이 목표를 향해 순항 중이다. 엘리베이트가 지난해 1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19에서 공개되자 외신들은 “현대차그룹이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달 초 CES 2020에선 우버와 손잡고 4, 5명이 탈 수 있는 개인용 비행체(PAV)의 실물 모형을 공개하며 2028년 상용화하겠다고 밝혀 새로운 항공 모빌리티의 미래를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 ‘정의선표 혁신’ 최전선 기지 크래들

현대차그룹이 혁신에 나선 이유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대전환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자율주행, 친환경차, 차량 공유 서비스 등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IT 기업과의 협업은 물론이고 경쟁사와도 손을 잡는다. ‘100년 라이벌’로 불리는 독일 완성차 업체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차량 공유 서비스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도 오픈 이노베이션의 전장에 뛰어들고 있다. 2017년부터 미국 마운틴뷰, 이스라엘 텔아비브, 독일 베를린, 중국 베이징 등 4곳에 크래들을 세웠다. 서울에도 ‘제로원’이라는 이름으로 거점을 마련했다. 크래들과 제로원은 ‘자동차 회사가 제조업에 머물면 안 된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경영철학이 뿌리를 내리며 갖춰진 혁신의 최전선 조직이다.

크래들과 제로원은 기술력과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현지 스타트업을 발굴해 그룹과 협력 방안을 마련하는 조직이다. 인공지능(AI), 로보틱스, 에너지 등이 1차 투자 대상이다. 윤경림 현대차그룹 오픈이노베이션전략부장(부사장)은 “과거 자동차 회사는 회사 내부 역량을 핵심으로 수직화된 협력업체들과 제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이동 수단과 새로운 서비스는 내부 역량만으론 안 된다. 외부 투자를 통해 협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크래들은 글로벌 4개 오픈 이노베이션 거점 중 가장 규모가 크다. 2017년 11월 설립 이후 현재까지 1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를 했고 지난해 연간 투자액은 200억 원을 넘어섰다. 현재 근무하는 직원은 20명이지만 올해 말까지 4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의 AI 전문 조직 ‘에어랩’의 연구 인력이 연내 실리콘밸리 크래들 사무소에 합류하면 인원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


○ 의사 결정 빨라지고 투자 단위 커졌다



정 수석부회장이 2018년 9월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현대차그룹은 의사 결정 구조가 확연히 달라졌다. 신속한 의사 결정을 통한 외부 투자 확대에 속도가 붙은 것이다. 취임 직후 의사 결정 절차를 최소화하도록 조직 개편을 단행한 정 수석부회장은 1년 만인 지난해 9월 미국의 자율주행기술기업 앱티브와 자율주행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합작회사를 세운다고 발표했다. 투자 규모는 총 20억 달러(약 2조3400억 원)로 현대차그룹이 미래차 분야에서 외국 기업과 함께 조 단위 투자에 나선 건 처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빅뉴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 현대차그룹은 2018년부터 지역 1위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인 그랩(동남아시아)과 올라(인도)에 각각 3000억 원 안팎의 투자를 했다. 크로아티아 고급 전기차 업체 리마츠에도 1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지영조 현대차그룹 전략기술본부장(사장)은 지난해 10월 동아일보와 만나 “예전 같으면 2년 넘게 걸릴 투자 건이 정 수석부회장이 경영을 맡은 뒤에는 3개월이 채 안 걸린 사례도 있다”며 달라진 현대차의 의사 결정 속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달 2일 신년사를 통해 5년간 100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하며 “(전체 모빌리티) 시장의 판도를 주도하는 ‘게임 체인저’로 도약하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마운틴뷰=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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