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올려지기 위해 태어나고 죽은 동물들… 나는 비건이 될 수 있을까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입력 2020-01-13 17:01 수정 2020-01-1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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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작년 여름 작업실에 한 가수를 초대한 적이 있다. 이 곳에서 뭐든 해보자는 제안에 그는 아주 신박한 아이디어를 냈다. “노래방을 여는 게 어떨까요? 제가 반주를 하고 팬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는 거에요. 제 노래는 노래방기계에 없으니까!” 천재 같았다. 바로 실행에 옮겼고 25명이 신청해 15분씩 노래를 부르고 갔다. 떨리는 가슴으로 자신의 ‘최애’ 뮤지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팬과 입 꼬리가 귀에 걸린 체 연주하는 뮤지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다음 날 인스타그램에서 참가자들의 후기를 검색했다. 해시태그 하나면 손쉽게 연결되는 세상이라 자연스레 그들의 라이프스타일도 구경하게 되었는데 신기한 점이 있었다. 다들 관심사가 비슷했다. #페미니즘, #퀴어, #비건. 그들은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퀴어 퍼레이드에 갔고 플라스틱컵 사용에 민감했으며 비건 레시피를 공유했다. 소수자, 약자에 대해 노래하는 뮤지션이기에 팬도 그러한 걸까? 페미니즘은 시대적 화두고, 퀴어 프렌들리는 인권감수성을 지녔다면 당연한 거니까. 그런데 비건? 비건이 뭐지.

비건은 동물로 만든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사람 또는 행위를 일컬었다. 단순히 고기를 안 먹는 채식주의자 정도로 알았으나 달걀, 유제품도 거부하는 엄격한 채식을 의미했다. 왜 우유를 안 먹지? 검색해봤다. 우유는 소의 젖이다. 젖을 생산하려면 임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젖소는 살아있는 기간 내내 강제로 수차례 임신을 당한다. 유축기를 젖통에 끼워 매일 우유를 짜 내고 그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된 뒤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닭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연 상태에서는 10~20개의 달걀을 낳는 닭이 축사에서는 200~300개를 낳아야 했다. 오로지 내 식탁 위에 올려지기 위해 태어나고 죽었다.

이 날 이후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고 비건이 됐다! 면 참 좋겠지만 그러진 못했다. 돼지국밥을 사랑하고 달걀 없이는 요리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이슈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뜨거운 국물 속 움직이는 낙지 영상을 보는 게 힘들었다. 냉동실의 얼린 고등어가 시체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고기 아닌 메뉴를 찾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비건이 내 삶에 스며든 계기는 사람이었다. 스탠드업 코미디 모임에 비건인 친구가 합류했고, 그를 앞에 두고 우리끼리 먹을 수 없어 몇 번 타협했고, 그러다 그가 싸온 도시락을 나눠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비건은 풀만 먹고 사는 줄 알았더니 너무 맛있게 먹고 다니네? “너 맨날 이렇게 요리해서 먹고 다녀?”, “ㅇㅇ” 그가 데리고 간 인사동 채식요리전문점에서 콩으로 만든 양념치킨을 맛본 뒤 나는 결심했다. 대체육의 맛이 이 정도라면 한번 도전해도 되지 않을까? 비건 지향의 삶.

친구들과 5일 단식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몸을 비우고 혀의 감각이 새로워지면 무도 맛있어진다는 경험자의 증언 때문이다. 내가 5일 동안 죽염과 효소만 먹으며 느낀 건 공복감이 아니었다. 다르게도 살아볼 수 있구나 하는 용기였다. 당분간 완벽한 비건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지구에 더 나은 선택을 하려 한다. 한 공동체의 가장 연약한 존재가 보호받는 사회라면, 나머지 구성원들의 삶 역시 그러할 테니까.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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