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대낮 영국 골프장의 그들, 해외연수 한국 공무원이었다

김준일 기자 , 임보미 기자

입력 2020-01-08 03:00:00 수정 2020-01-08 15: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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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2020 新목민심서-공직사회 뿌리부터 바꾸자]
<4> 효과없는 재교육 프로그램


“미국이나 영국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온 공무원들이 던져주는 콩고물로 먹고살아요.”

2012년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던 A 씨는 공무원 국외 훈련(해외 연수) 얘기가 나오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유학비용을 대기 위해 당시 현지 여행사의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했다. 운이 좋은 날이면 시급의 1.5배를 받고 스코틀랜드 지역의 골프장으로 30명가량의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안내했다. 그중 상당수가 공무원으로 이뤄진 골프여행객들이었다. 이들은 서로 초면인지 ‘저는 ○○부 행시 ○○회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평일 낮이어서 공무원들이 학교에 있거나 교육을 받아야 할 시간이었다.

A 씨는 또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공무원에게서 100만 원에 논문 초록을 써달라는 부탁도 받아 봤다고 털어놨다. 그는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가난한 박사과정 유학생 중에는 공무원 논문 대필을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 교육 제대로 받아왔나 사후 검증도 없어

정부는 선진국의 정책 및 행정 사례를 국내에 도입하고 국제 감각을 갖춘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취지로 1977년부터 나랏돈을 들여 공무원을 위한 국외훈련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파’ ‘유학파’가 희귀했던 시기에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인적 자원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음에도 선진 문물을 체험하라며 관례적으로 공무원을 해외로 내보내고 사후 검증도 안 하는 행태가 40여 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4∼2018년 공무원의 장기 국외 훈련을 위해 정부가 집행한 예산은 1649억3800만 원, 혜택을 받은 공무원은 1663명이다. 현행 인재개발법에 따르면 ‘당초 계획한 학업 과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거나 다른 연구보고서 또는 논문을 표절할 경우’ 지급한 훈련비를 20% 환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기간에 ‘부적절한 연수과제’나 ‘논문표절’ 등의 이유로 지원금 환수가 결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부실한 국외 훈련을 걸러내는 과정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검증 시스템이 무용지물이다 보니 일부 공무원은 국외 훈련을 ‘자녀 외국어 교육의 기회’나 ‘우수한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보상’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간부는 “야근이 일상인 생활 때문에 자녀 교육에 소홀한 게 마음에 걸렸다. 이 때문에 국외 연수는 자기계발 기회보다는 가족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공무원들은 국외 훈련의 장소로 선진국, 그중에서도 영어권 국가를 특히 선호한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6∼2018년 국외 연수를 떠난 중앙부처 공무원 1024명 중 미국과 영국을 택한 사람은 690명으로 67.3%에 달한다. 반면 일본(16명), 중국(59명)으로 향한 비율은 각각 1.5%, 5.7%에 불과했다. 지역전문가를 골고루 키운다는 당초 취지와 어긋나는 셈이다.

이향수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 국외 훈련이 필요하긴 하지만 일부 공무원이 공직에 필요한 역량을 보충하기보다 개인적 보상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라며 “부처별로 적합한 프로그램과 지역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국내 교육도 형식적인 시간 채우기식

국외 훈련 못지않게 국내 훈련도 내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앙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정책 수립을 위해 특정 분야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싶어도 필요한 프로그램을 찾는 게 어렵다”며 “지금은 형식적으로 연간 의무 강의시간을 채우는 식으로 진행돼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상 업무에 치여 제대로 교육받을 시간이 적고 형태나 기관별로 교육과정이 너무 분산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정부는 국·과장급 장기 교육, 직급별 교육, 직무 전문교육, 국내 대학 위탁교육, 외국어 위탁교육 등으로 훈련과정을 꾸리고 있다. 그러나 워낙 중구난방식으로 짜여 있어 교육의 질에 대한 공무원들의 만족도는 낮다.

전문가들은 핀란드의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핀란드는 공무원 교육 훈련을 ‘국가경쟁력 제고와 경제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비슷하다. 핀란드와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공무원 교육훈련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담당 기관(HAUS)을 아예 민영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무원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것은 핀란드가 정보통신기술(ICT) 중심 국가로 변화하는 데 핵심 요인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핀란드는 스위스 경영개발연구원(IMD)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도 정부 경쟁력 분야 세부 항목이 대부분 10위 안에 든다.

김준일 jikim@donga.com·임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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