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의 상상은 무한상상실에서 현실이 된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0-01-03 03:00 수정 2020-01-03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일반인 창작-창업지원 공간 눈길

#1. 로봇 개발 회사 ‘샤인’의 신현수 대표(26)는 중학교 때부터 로봇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로봇 대회에 나가 여러 번 상을 받고 로봇으로 창업을 꿈꿨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2018년 기술혁신형 창업기업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꿈을 이루는 듯했지만 난관이 남아 있었다. 설계한 로봇을 제작하려면 절삭 가공을 하는 레이저 커터가 필요했다. 개인이 이런 고가의 제조장비를 보유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 금천구청에 자리한 ‘무한상상실’에서 장비를 쓰고 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다. 신 대표는 3개월간의 연구 끝에 거미 형태의 로봇을 완성할 수 있었다. 지금은 로봇 공방을 직접 열어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꿈도 이뤘다.

#2. 인천 남동구에 사는 회사원 전춘구 씨(54)는 자타가 인정하는 ‘블라인드 박사’다. 창문에 설치하는 블라인드는 커튼지가 두루마리 형태로 말려 있다가 햇빛을 가릴 때 펼쳐지는 원리다. 표현할 수 있는 무늬가 단조롭고 창문 윗부분에만 설치가 가능해 제한이 많았다. 전 씨는 무늬와 패턴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햇빛을 가리는 각도를 조절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두 개의 회전축을 가진 이중 블라인드를 고안해 특허까지 냈다.

전 씨는 인천대 무한상상실의 3차원(3D) 프린팅 장비를 써서 시제품을 제작했다. 전 씨는 “장비에 익숙하지 않아 디자인과 제품의 출력 오차를 조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장비 운영 담당자가 사용법을 알려주고 재료까지 무상으로 제공한 덕분에 시제품 제작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전국 과학관과 대학 등 공공기관 21곳에 설치된 창작지원 공간인 무한상상실이 일반인의 예비창업 산실로 거듭나고 있다. 무한상상실은 일반인이 직접 기술을 습득해 제품을 만드는 ‘메이커 운동’에 자극을 받아 2014년 국내에 도입됐다. 3D 프린터와 컴퓨터수치제어(CNC) 레이저 조각기, 종이 커팅기 등 첨단 제조장비를 빌려 쓸 수 있고 전문가가 상주하며 장비 사용 방법까지 가르쳐 주고 있어 취미생활을 하려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창업을 목표로 시제품을 만들려는 예비창업가들에게 쏠쏠한 도움이 되고 있다.

디자인 전공을 살려 실내 장식용 화분을 만드는 사람부터 전문적인 기계를 제작해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사람까지 무한상상실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약 17만 명이 전국의 주요 거점에 설치된 21곳의 무한상상실을 이용했다. 무한상상실은 최근 아이디어 창업이나 직업 창출과 관련된 지원을 늘리고 있다.

기업도 무한상상실을 찾고 있다. 용기 제조 회사인 아이팩글로벌은 블루베리를 담기만 해도 무게를 알 수 있고 일정 무게만 담을 수 있는 전용 용기를 개발했다. 이런 용기를 만들려면 내부에 여러 무늬를 새겨야 하는데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만 적어도 9300만 원이 필요했다. 아이팩글로벌은 경기 수원 경기테크노파크 무한상상실의 3D 프린팅 장비를 사용해 시제품 제작 비용을 줄이고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우희섭 아이팩글로벌 부대표는 “생소한 장비를 이용해야 하는 데다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제작 비용 부담이 컸지만 3D 프린팅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줬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 기업인 키커트코리아는 경기테크노파크 무한상상실의 장비를 활용해 주력 제품의 원가를 절감했다. 키커트코리아는 현대자동차 코나와 벨로스터, 기아자동차 K3의 차 문을 여닫을 때 쓰이는 부품 뭉치인 도어래치를 주력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복잡한 입체 형상을 띤 이 부품을 개선하려면 수시로 제품을 수정하고 시제품을 통해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키커트코리아는 기존에 비용 때문에 꺼렸던 기어 구조 검사와 금형 수정에 무한상상실 장비를 활용했다. 이창은 키커트코리아 대리는 “제품 검증 과정에서 작은 오차를 간과하고 넘어갈 경우 양산 시 엄청난 차이가 난다”며 “무한상상실 덕분에 막대한 비용 지출과 생산 차질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