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갈등’의 진원 고래고기 뭐길래…모듬 한접시에 ‘12가지 맛’

뉴시스

입력 2019-12-31 08:24:00 수정 2019-12-31 08: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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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칼한 소고기국밥과 비슷하지만 맛의 깊이는 '상상 이상'
모듬 한접시 덩치 큰 고래만큼 '12가지 맛'…가격 비싼게 흠
수육, 뱃살, 꼬리, 내장 등은 마니아들이 찾는 '별미'
초보는 육회가 제격…부드러운 육류+생선회 어우러진 맛



부위별로 총 12가지 맛이 난다는 고래고기. 워낙 구하기 힘들다 보니 고래의 본 고장인 울산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음식이다.

모듬 한 접시에 10만원을 넘어서는 비싼 가격에도 중장년층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고래의 친근한 이미지와 고래고기 특유의 냄새 때문에 젊은 층은 낯설어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비싼 가격에도 불포화지방산 많고 저열량…마니아들에 인기 꾸준

2km 남짓한 울산 남구 장생포항 주변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고래고기 전문점’ 간판이 눈에 띈다.

수십년간 대(代)를 이어온 음식점이 대부분이라 건물 외관만 봐도 세월이 느껴진다.

과거 고래잡이(포경)선 포수가 운영하던 고래고기 집을 자녀가 그대로 물려받아 고래고기 원조의 맛을 볼 수 있는 곳도 많다.

고래는 바다에 사는 포유류로 생선회처럼 부드러운 식감과 소고기의 담백한 맛을 동시에 낸다.
살코기뿐만 아니라 껍질, 혓바닥, 내장, 목살, 꼬리, 지느러미까지 여러 부위를 먹을 수 있어 요리 방법도 다양하다.

고래수육은 특유의 쿰쿰한 향 덕에 마니아층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다.

살코기를 투박하게 썰어낸 ‘막찍기’와 쫄깃한 식감을 가진 ‘우네(뱃살)‘, 오돌오돌 씹는 맛이 일품인 꼬리와 지느러미인 ’오베기‘, 짙은 고래 체취가 나는 ’내장‘ 등은 별미로 꼽히는 부위다.

울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고래탕‘은 날씨가 쌀쌀해지면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다.

푹 삶은 고래 살코기와 갖은 양념이 들어가 칼칼한 소고기 국밥과 비슷하지만 맛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다.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는 육회는 고래고기를 처음 먹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부드러운 식감은 소고기 육회와 닮았지만 고래 특유의 향이 입 안에 맴돌아 육류와 생선회를 한꺼번에 즐기는 느낌이다.

고래고기는 영양학적으로도 최고의 음식으로 손꼽힌다.

고담백·저열량·저지방 식품으로 성장기 어린이나 저혈압 환자 등에게 특히 좋다고 한다.

콜레스테롤이 없는 불포화 지방산을 함유해 노화를 방지하기 위한 건강장수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은 고래 포획이 전면 금지돼 있어 고래고기 맛보기가 더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어민들이 쳐놓은 그물에 우연히 걸려 죽는 이른바 ’혼획(混獲)‘된 고래에 대해서만 유통증명서가 발급된다.

◇강아지도 돈 물고 다닌 ’국내 최대 포경기지‘ 장생포

과거 1960~70년대 울산 남구 장생포는 지금과는 비교조차 불가할 만큼 번성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포경 전진기지로 자리잡으면서 2만여명의 인구가 상주할 만큼 큰 마을이었다.

장생포 주민들은 동해에서 잡은 고래로 넉넉한 삶을 살아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풍요로움을 자랑했다.

포경선이 긴 뱃고동 소리를 울리면 낮잠을 자던 할머니도 골목길에서 놀던 아이들도 부두로 뛰어나와 배를 맞이했다.

10m를 훌쩍 넘는 대형 고래가 잡힐 때면 뱃고동 소리가 더 길게 울려 퍼졌다.

귀한 음식으로 여겨지는 고래고기도 처음부터 비싼 몸값을 자랑한 것은 아니다.

옛 장생포에서 고래고기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대신해 먹을 수 있는 값싼 단백질 보충용 식재료였다.

고래고기가 흔할 적에는 길거리 노점에서 흔하게 맛볼 수 있는 좋은 안주거리였다.
선원들은 큰 고래가 잡히면 해체 구경을 하던 아이들에게도 큼직한 고기 덩어리를 나눠줬다.

하지만 지난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상업포경 전면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장생포에도 침체기가 찾아왔다.

일자리를 잃은 선원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나면서 곳곳에 빈 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산업화로 주변에 대규모 공업단지까지 들어서면서 장생포는 주민 1000명을 밑도는 낙후된 어촌마을로 전락했다.
쇠퇴일로를 겪던 장생포의 부활을 위해 관할 지자체인 울산 남구는 관광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 2005년 고래박물관 건립을 시작으로 2008년 고래문화특구 지정,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문화마을 등 고래테마 관광인프라가 장생포 일대에 속속 들어섰다.

남구는 고래고기를 지역 대표 먹거리로 육성하기 위해 2012년 ’고래밥상‘이라는 자체 브랜드도 만들었다.
고래고기 음식점 10여곳에 고래정식, 고래비빔밥, 어린이메뉴인 아기고래밥상 등 18가지 메뉴를 보급했고 울산고래축제장에서는 고래고기 무료시식회가 진행돼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불법 포획과 고래고기 섭취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면서 동물보호단체의 반발이 거세졌고 지자체가 앞장서 불법 포획을 부추긴다는 비난까지 일었다.

결국 2011년 고래축제부터 고래고기 시식회가 사라졌으며 고래밥상 보급사업도 2017년부터 잠정 중단됐다.

그 여파는 장생포 일대 고래고기 식당가에도 미쳤다.

20년째 고래고기 전문점을 운영 중인 업주는 “고래고기에 대한 안좋은 여론이 생기면서 수년전부터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래고기 공급마저 점점 어려워져 팔아도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마지막 포수 “마음의 상처도 있었지만 고래는 내 청춘의 동반자”

지금은 고래를 잡다 걸리면 곧바로 쇠고랑을 차는 시대지만 장생포에서는 과거 포경 역사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는 포경이 절정에 달했던 장생포마을의 옛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래 해체장과 고래에서 기름을 짜내던 착유장 등을 둘러보면 당시 고래가 장생포 주민들을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래문화마을에서는 과거 포경업에 종사했던 장생포의 마지막 포수, 추소식(79)씨를 만나 옛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추씨는 1970년부터 상업포경이 전면 금지된 1986년까지 포경선 선장이자 포수로 맹활약했다.

지금은 고래문화마을에서 늦깎이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추씨가 15년 동안 잡은 고래는 약 450마리. 그의 기억은 고래문화마을 내 장생포 옛마을 ’포수의 집‘에 그대로 남아있다.
목숨을 걸고 고래와 사투를 벌이던 일화부터 길이 18m의 참고래를 포획한 일까지 그의 기억 속 장면은 사진으로 남아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추씨는 “고래고기가 흔할 당시에는 고기를 얇게 포를 떠 육포로 만들어 먹고는 했다”며 “소고기 육포와 비슷한 맛이 나는데, 지금은 워낙 고기가 귀하다 보니 완전히 사라진 음식 중 하나”라고 말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포경 재개 추진 움직임이 일어 찬반 의견이 팽팽했지만 이제는 재개 불가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진 상태다.

특히 검찰과 경찰 사이의 대표적인 갈등 사례도 고래고기에서 불거졌다.

이른바 ’울산 고래고기 환부사건‘으로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검경 내 고래고기 마니아들도 더이상 고래고기를 안먹는다는 우스갯소리도 흘러나왔다.

경찰이 지난 2016년 4월 불법포획으로 의심되는 고래고기 27t(시가 40억원 상당)을 압수했으나 검찰이 불법포획됐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한달 만에 21t 가량을 업자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검찰은 형사소송법 등 관련규정에 따라 합법적으로 돌려준거라 주장했지만 경찰은 유통증명서와 DNA 분석 등으로 불법포획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맞서며 갈등을 빚었다.

경찰은 고래고기 환부를 담당한 검사를 상대로 조사하려 했으나 해외연수를 떠나면서 사실상 사건은 종결된 상태다.

추씨는 “포획금지 전 고래잡이는 당연히 합법적인 어로행위였고 특히 포경선원하면 누구나 부러워하던 직업 중 하나”였다며 “영광스럽던 내 청춘이 불법으로 인식되면서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받은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생포 주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고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며 “과거에는 생계의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고래에 대한 주민들의 사랑을 기억해 달라“고 덧붙였다.

[울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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