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변화 대응 늦은 韓사회, 이대로 가면 미래 없다”

뉴스1

입력 2019-12-29 11:27 수정 2019-12-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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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진행된 출입기자단과의 신년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대한상의 제공)© 뉴스1

“한 직원이 ‘회장님 이건 제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해가지고 오겠습니다’ 하길래 제가 ‘하지마, 하늘이 두 쪽 난 역사상 기록이 없어’라고 했어요.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시대거든요. 이제는 ‘현명한 근성’이 필요한 때에요.”

26일 오전 숭례문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집무실에서 만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이날도 사회의 ‘변화’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췄다. 평생을 산업 현장에서 바뀌어 가는 시대를 체감해서였는지 평소 그는 변화에 대응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경고해왔다.

인터뷰 내내 박 회장은 우리 사회가 변화에 좀 더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혁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전반적인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올 한해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에 대해서도 그는 미래 세대를 위해 낡은 법과 제도를 바꿔보려 노력했던 일을 꼽았다.

◇“낡은 법과 제도 만들어 놓은 어른으로서 ‘결자해지’ 각오”

“저 개인적으로 올해는 젊은 벤처인들과 국회와 정부를 찾아다니면서 규제 개선도 하고 젊은 사업가 분들이 사업 태동시킬 수 있도록 애썼던 게 기억에 제일 남습니다.”

박 회장은 낡은 법과 제도를 개선해달라며 2019년 한 해 동안 스무 번 가까이 국회를 찾았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꾸준히 ‘규제 혁신’을 요청했다. 올해 청년 벤처들이 겪는 문제에 발 벗고 나선 이유에 대해 박 회장은 ‘미안한 마음’에서였다고 털어놨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오래된 법과 제도 때문에 사업의 꿈을 펴보지도 못하는 후배들이 눈에 밟혔다는 것이다.

“벤처 하는 젊은 친구들이랑 간담회를 하는데 충격을 받았던 게 이 친구들이 비즈니스 모델, 수출 이런 걸 고민하는 게 아니었어요. 입법 미비, 소극적 행정, 기득권과의 충돌, 융복합 사업에 대한 주변의 몰이해가 이 친구들 고민이의 90%였어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때문에 청년들이 고생하니까. 정말 미안했고,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직접 나서서 도와주자고 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평생 사업을 해온 박 회장에게도 수십 년간 고착화된 틀을 깨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 회장은 입법 과정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회와 정책 감사를 신경 쓰느라 소극적인 행정, 기존 기득권의 반발 등을 규제 개혁의 변화를 가로 막는 장애물로 꼽았다. 특히 박 회장은 어렵게 만든 혁신 법안들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돼 있는 상황에 대해 쌓였던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규제 개혁 법안을 설명하기 위해 청년 사업가들과 함께 국회를 찾았던 박 회장은 당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정당간 이견이 없는 법안들마저 처리가 미뤄지는 상황을 청년들에게 설명해 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만 수천 번 했다”고 말했다.

“여야가 이견도 없는데 법안처리가 안돼요. ‘왜 안 해주십니까?’ 하면 ‘내년에 해줄게’ 하다가 계속 물어보면 ‘사실 저쪽 당하고 뭐가 걸려있어서 지금 의사일정 협조를 못하는 상황이야 그래서 못해줘’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 문제가 해결돼서 이제는 되려나 보니 이번에는 또 휴가를 가셨어. 휴가 갔다 오고, 이제 되겠지 했는데 왜 안 되는가 봤더니 서로 관심 법안을 교환하는 거야. 그렇게 교환하고 합의해야 이견 없는 법도 통과가 되고. 그런데 그 안에 (교환되는 법을) 보면 청년들한테 설명할 수도 없는 법안들도 있는 거야. 총선 의식한 법안들 이지. 그걸 어떻게 설명해. 젊은 애들한테. 창피하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했어.”

박 회장은 미안한 마음에 청년 사업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법안 통과를 시키기 위해 모 의원에게 오후 10시에 전화를 걸어 ‘소위를 열어서 법안 의논이라도 해 달라’고 사정하다 눈물을 쏟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냥 전화해서 막 사정사정하다 보니까 내가 생각해도 설명이 잘 안 돼. ‘박 회장 왜 이렇게 이거가지고 막 그러냐’고 묻는데. 제가 ‘너무 미안해서 그럽니다’라고 하고 말을 못 잇겠더라”라고 말한 박 회장은 그때의 기억에 감정이 복받쳤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내기도 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2월 초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타다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글 © 뉴스1

◇장기적 구조 고착화 막아야…전 사회적 인식 전환 필요해

박 회장은 이렇게 변화가 늦은 한국 사회의 모습이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그동안 대외 여건이 나쁜 상황에서 정부의 확장적인 재정 정책으로 거시경제 숫자를 관리하며 ‘선방했다’고 했지만 장기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한국 사회의 역동성이 저하되고 있는 것이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사회가 진입장벽을 갖춘 기득권 집단과 하루하루 근근이 연명하는 집단으로 나뉘어 가고 있으며 사회 양분화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회장은 혁신의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회장은 “국회는 안 움직이고 정부가 뭘 하려고 하면 국회가 불러 혼내고, 정부는 정부대로 5년마다 바뀌면서 감사원 감사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공직자가 감히 수혜자가 피해자가 바꾸는 제도의 개혁을 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쉬운 길은 없다”라며 정치부터 시작해 모든 사회 각계각층이 나서 사회를 개방적으로 변화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 회장은 최근 ‘타다’ 사태를 거론하며 정부가 새로운 변화와 기존의 법과 제도, 기득권이 충돌할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 무책임 하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정부가 타다 사태를 ‘이해집단 사이의 출동’로만 보고 ‘당사자끼리 합의해 와라’라는 식의 대응을 하고 있다며 “국민 편익을 1순위로 두고 장기적으로 이를 어떻게 보장할지 방향성을 정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피해는 가급적 줄이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박 회장은 타다가 법의 ‘루프홀’(loophole, 허점)을 이용해 사업을 시작했기에 원래 정부가 기존 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다시 법을 바꾼다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타다라는 미래형 사업은 계속할 수 있도록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래지향적인 사업이 나왔을 때 기득권의 이해나 충돌에서 헤쳐나와 (사업을) 할 수 있게끔 해주고, 피해를 보는 쪽엔 정부가 피해보전이나 보호를 하는 노력을 하고 결국은 정부의 역할에 의해서 산업이 미래 산업으로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상상하지도 못한 미래가 다가오는데 변화에 대한 피해를 막기 위해 미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9100달러 후진국 국민은 뒤로 물러나자…“세대교체 빨리 이뤄져야”

박 회장은 사회가 좀 더 개방적으로 변모하기 위해서 세대교체도 빠르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최근 한국과 소득 수준이 비슷한 국가를 여행해보니 그 나라의 시스템과 인프라가 한국보다 너무나 뛰어나 ‘이 차이가 뭘까?’ 하고 고민하던 중 ‘생애 국민소득’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제가 태어날 때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 미만 나라였고, 사회에 나올 때는 한 400달러? 그렇게 해서 쭉 올라가는 것을 평균 내니 저는 평생을 9100달러 나라에 살았더라. 그런데 제 아들을 계산해보니 평생을 1만7000달러 나라에 살았어요. 나보다 비교가 안 되는 선진국민인 거예요. 아들은.”

박 회장이 여행한 국가는 선진국으로서 한국보다 오랜 기간 머물며 생애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평균 생애 소득이 높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수준이 높은 국가가 된 것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연령별 1인당 국민총생산량(1979~2018년 기준)은 60세가 9100달러, 50세 1만800달러, 40세 1만3400달러, 30세 1만7000달러, 20세 2만900달러, 10세 2만5800달러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과거 세대들은 너무 가난했기에 척박한 환경에서 모든 걸 다 참고 빨리 가서 자원을 확보하는 게 가장 큰 미덕이었다면 현재 세대들에게는 거꾸로 그런 방식이 사회적 ‘규칙’을 깨는 행위로 발전되기 쉽기에 그것보다 규칙을 지키면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생존의 방법이 됐다고 설명했다. “생존의 방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전통시장에 가면 어깨를 밀고 들어가서 먼저 물건을 가져 오는 게 가능하지만 인터넷 쇼핑에서는 그게 절대 불가능 하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9100달러짜리 후진국 국민은 이제 좀 뒤로 물러나야 해”라며 “앞으로 미래 시대에는 젊은이들이 더 빨리 중요한 역할들을 해야 하고 그러면 이제 우리나라도 규칙대로 움직이면서 발전해 나가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협력 이어갈 것…“경제, 대통령 탓만 하면 안 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촉장 수여식에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후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8.11.22/뉴스1

박 회장은 오는 2020년에도 한국의 성장 동력을 찾고 낡은 규제들을 혁신하기 위해 정부와의 협력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외환경이 악화 되는 상황을 재정을 투입해 방어하려 노력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박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규제 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경제계의 건의를 상당부분 들어줬다고 밝혔다.

더불어 박 회장은 경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돌리는 여론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경제가 하루아침에 바뀔만한 그런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그 비판을 다 대통령한테 하는 건 조금 그런 것 같다”라며 “대통령이 바쁜 와중에도 공장에 가서 격려해주고 오면 그거 좀 좋다고 이야기 해주면 안 되나? 우리도 조금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 회장은 문 대통령에게 기업들을 순위로 나열하고 해당 기업의 총수들을 주르륵 불러 만날게 아니라 경제 현안에 대해 더 잘 듣기 위해 내년에는 기업 규모별, 업종별로 공통된 관심과 현안들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과 ‘콘텐츠’를 위주로 만남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박 회장은 대통령이 법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업들의 의견을 다 받아 줄 수는 없겠지만, 대통령이 나서서 듣는 것만으로도 각 각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의 이슈가 높은 차원의 논의 테이블에 올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또 박 회장은 문 대통령이 ‘성공하는 기업들’을 불러서 그 경험을 공유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어려운 분들 이야기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하는 기업들을 좀 불러서 그들이 성공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더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많이 들으셔야 한다”라며 “성공한 기업들이 많이 나와 역동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최근 공동행사를 함께 치르며 자주 만났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호흡도 잘 맞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 회장은 “일도 서로 대립하는 일이 아니라, 공동으로 추구해야하는 발전적 일을 자꾸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는데 박 장관과 그게 참 잘 맞아요”라고 밝혔다.

한편, 올해 정치권에 대해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박 회장은 ‘직접 정치에 참여해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 관심도 없고 정치는 내가 할일이 아닌 것 같다”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그는 인터뷰 마지막 까지도 정치가 멈춰 있어 법안 처리가 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며 “이번 국회 같은 국회는 다시 반복 안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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