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은회장 “노조 ‘무한반대’가 구조조정 기업 망가뜨려”

장윤정 기자 , 조은아 기자

입력 2019-12-26 03:00 수정 2019-12-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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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대우조선해양-아시아나항공 구조조정 이끈 이동걸 산은회장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1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반대만 하는 노조, 부동산 투기, 토론 없는 정치권을 꼽았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노동조합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완전히 살리지 못할 걸 알면서도 다 살려내라고 합니다. 그러니 기업이 아예 깨지고 망가지는 거죠. 노조의 ‘무한 반대’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66)은 19일 동아일보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한 인터뷰를 통해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 등 기업 매각 과정에서 느낀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구조조정에 성공하려면 노조의 양보가 필수적인데 노조가 이권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다. 그는 “노조가 무조건 밀어붙이려 하니 대화와 설득으로 이견을 좁힐 수 있는 문제조차 해결되질 않는다”고 했다.

이 회장은 이처럼 밥그릇 지키기에 빠진 노조와 함께 시중 자금이 모험자본으로 흐르지 못하게 묶어두는 부동산 투기, 생산적 토론이 없는 정치권을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올 초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했고, 현재 아시아나항공을 HDC현대산업개발에 매각하는 ‘빅딜’을 진행 중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2015년부터 시작된 대우조선해양이나 현대상선 구조조정은 사실 1년이면 다 마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 노조가 ‘무한 반대’를 하니 기업이 깨지고 망가지는 것이다. ‘이러다 경제가 다 망가지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물론 제도적인 문제도 있다. 사회복지가 제대로 돼 있으면 (인력을) 빨리빨리 털고 갈 수 있는데 안돼 있다 보니 노조가 반대한 측면도 있다.”

―사회복지를 어떻게 강화해야 하나.

“실업부조를 대폭 늘려야 한다. 구조조정을 할 때 가장 시급한 건 비용을 줄이는 문제다. 실물비용을 낮추려면 급여를 깎든지 사람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노조원들은 직장을 나가면 전쟁터니까 ‘(급여를) 줄이지 말라, (직원을) 자르지도 말라’고 반대한다. 이러면 해결 방법이 없다. 구조조정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사회안전망이 있다면 노조가 이렇게까지 극렬하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안전망이 있다면 구조조정을 더 세게 추진할 수 있고 기업은 경쟁력을 강화해 빨리 회생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맞아요’라고 말만 하고 실제 관심은 아무도 없다.”

―노조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노조도 내부 갈등이 있다. 노조에서 나이 든 사람들이 대략 50%인데, 이들은 10년만 있으면 정년이 되니 ‘버티고 앉아 있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 반면 젊은 친구들은 임금을 깎더라도 경쟁력을 갖출 조치를 해 미래의 직장을 보장받으려는 생각도 한다. 이들 간에 갈등이 있다. 변화에 저항하는 기득권층이 너무 강하니 구조조정 하나하나가 모두 어렵다. 사실 내가 앞에 나설 때 ‘강남의 아파트 매물은 앞으로도 또 나오지만 아시아나항공이라는 매물은 다시 나오지 않는다’면서 호기를 부렸지만 내심 불안했다.”


―최근 생산직의 고임금 구조를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임금 외에도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있다면….


“우리나라 노조의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투쟁은 비효율적이다. 노조가 한 번 세게 투쟁하면 (임단협이) 3∼5년간은 그대로 가야 하는데, 우리는 (임단협 유효기간이 최대 1년이라) 매년 싸운다. 생산적인 토론이 안되는 정치권도 문제다. 건전한 보수와 건전한 진보는 대화가 되니깐 서로 논쟁하면서 합리적인 결론으로 간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주장만 있고 토론이 안된다. 문을 닫고 싸움만 하니 해결 방안이 없다.”


―산은이 자체 벤처투자플랫폼인 ‘넥스트라운드’를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성과가 있나.

“1171개 기업이 투자자 앞에서 기업설명회(IR)를 벌여 249개 기업이 1조4500억 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한국 벤처투자의 문제는 초기 투자는 많은데 후속 거액투자가 없다는 점이다. 거액투자는 다 해외에서 들어온다. 우리도 그런 데 투자해 돈을 좀 벌면 좋지 않나. 그래서 ‘스케일 업(Scale-up)’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에선 왜 후속투자가 잘 안될까.

“벤처 캐피털로 돈을 번 선(先)세대가 없으니 투자자들이 기술을 잘 모르고 있다. 결정적으로 부동산과 같은 ‘저위험 고수익’ 투자가 너무 많다. 그러니 누가 (벤처투자 같은)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하려고 하겠나. 부동산은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름없다. 돈을 묻어두면 엄청난 수익을 내지 않나. 한국 경제를 위해 부동산 투기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여기서 지면 아무도 모험투자를 안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돈이 없어서 모험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다. 부동산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투기’를 하고 돈을 좀 크게 벌어갔으면 좋겠다.”


―내년 기업들에 대한 지원 계획은….


“대출과 보증 등 자금지원 목표만 66조 원이다. 그중 혁신성장에 17조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2020년 ‘경제정책 방향’ 중 중소·중견기업의 ‘설비투자 촉진 프로그램’에만 4조5000억 원을 공급한다는 방안이 있는데 2조 원을 산은이 지원한다. 연 1.5%의 초저리로 설비투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또 내부에 ‘산업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따로 꾸렸다. 일본 수출규제로 대기업도 문제지만 중소기업들도 타격이 크지 않았나. 본질적으로 우리가 소재부품 쪽에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뭔지를 찾아서 키워주자는 취지다. 대기업보다는 중소·중견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려 하지만 변신하려고 하는 대기업도 적극 지원할 것이다.”

장윤정 yunjung@donga.com·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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