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꽃향기 맡으면, 왜 ‘빅 피쉬’ 떠오를까…존 어거스트, 답하다

뉴시스

입력 2019-12-23 18:13:00 수정 2019-12-23 18: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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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소설이 바탕인 영화·뮤지컬 '빅 피쉬' 각본가
영화감독 팀 버튼과 콤비로 유명



수선화 꽃향기 맡으면, 왜 잊을 수 없는 기억에 사랑 가득 눈부신 설렘을 안게 되는 걸까. 8할은 미국 영화 각본가 겸 영화감독 존 어거스트(49) 덕이다.

어거스트가 각본에 참여한 영화 ‘빅 피쉬’(2003·감독 팀 버튼)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노란 수선화의 향연. 주인공 ‘에드워드 블룸’이 아내 ‘산드라’에게 프러포즈를 할 때 화면 가득한 수선화는 눈을 부시게 만든다.

극 중 배경인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촬영했다. 색감이 알록달록한 미국적 정서가 가득한 곳이다. 그런데 수선화가 특산품이 아니다. 대니얼 월러스의 원작 소설(1998)에도 수선화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거스트의 아이디어다.


실제 수선화 내음이 물씬 풍기는 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CJ라운지에서 만난 어거스트는 “노란색을 좋아하는 산드라에게 에드워드가 어떻게 프러포즈를 하면 좋을까를 떠올리다가 수천송이의 수선화를 떠올렸다”고 했다.

역시 어거스트가 각본에 참여한 뮤지컬 ‘빅 피쉬’에도 수선화 내음이 배경음처럼 깔린다. 1막 마지막에서 에드워드가 산드라에게 프러포즈를 할 때 그림처럼 펼쳐지는 ‘수선화 카펫’은 시각, 청각, 후각을 자극하는 공감각적 심상의 극치다. 관객을 쓰러뜨리는 비수.

하지만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 뮤지컬 속 장면이 프로덕션마다 같은 것은 아니다. 어거스트는 “어떤 곳에서는 관객들이 수선화를 하나씩 들고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배우들이 수선화를 하나씩 들고 나와요. 프로덕션마다 고유의 연출법이 있죠”라고 귀띔했다.

예전에 사적으로 중국 베이징, 상하이와 함께 서울을 찾은 적이 있는 어거스트는 이번이 공식적인 첫 내한이다. “1막 엔딩신이 프로덕션마다 어떻게 구현이 되는지 작가로서 확인하는 것이 재미가 있다”며 여행의 즐거움을 전했다. 그는 크리스마스인 25일 함께 내한한 딸을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한국 프로덕션의 ‘빅 피쉬’를 본다.

공연제작사 CJ ENM이 내년 2월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빅 피쉬’는 브로드웨이 첫 공연 이후 6년 만에 한국 버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연출가 스캇 슈왈츠의 첫 한국 진출작이다.

‘빅 피쉬’는 서커스, 늑대인간, 마녀 등 굉장히 미국적인 설화 등을 큰 담론으로 삼았다. 거기에 녹아든 작은 담론인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그런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어거스트 역시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소설은 에드워드가 전하고자 한 진실을 찾아가는 아들 ‘윌’의 여정을 그린다. 에드워드는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지만 한 곳에 얽매어 있지 못하는 모험가적 기질 때문에 가족들의 오해를 사는 인물이다.

20년 전 소설을 영화로 옮길 당시 어거스트는 아들의 관점에서 내용을 옮겼다. 그런데 그 사이 결혼을 하고, 딸을 얻은 지금은 아버지의 관점으로 극을 바라보게 된다.

“예전에는 아버지 이야기의 결과만 보여줬어요. 과정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않았죠. 지금은 아바지가 자식에게 모든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원해요. 제 경우를 이야기하자면 제 열네 살짜리 딸은 ‘빅 피쉬’ 프로덕션마다 저와 함께 합니다. 성공한 프로덕션도 있고 실패한 프로덕션도 있죠. 그런데 그것들 하나하나를 경험하면서 아버지가 실패했을 때의 약점을 낱낱이 보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아버지로서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아버지의 강한 모습만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약하고 솔직한 부분을 다 보여주려고 했죠.”

어거스트의 부친은 극 속 에드워드처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4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상황을 조심스럽게 정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아울러 점차 자신이 아버지처럼, 즉 극 중 에드워드처럼 변한 것을 느낀다고 했다. 사실 극중 기자인 윌은 수줍음 많은 어거스트 본인을 투영한 캐릭터다.

작품 개발 초창기 제작자가 없어 작곡가 앤드루 리파와 본인이 캐릭터를 나눠 연기하며 극을 만들어나갔다. 활발하고 낙천적인 리파가 에드워드를, 내성적이고 냉정한 자신이 윌을 맡았다고 돌아봤다. 그런데 딸이 생긴 이후 점차 에드워드를 닮아가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세일즈맨인 에드워드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는데, 본인도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작업하게 된 것도 닮았다고 했다.

“어느 순간 에드워드와 비슷해진 거예요. 활달해지고 허풍도 많아지고요. 참 흥미로운 지점이죠. 하하.”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점은 분명히 뒀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세련됐지만 인물의 내면을 세세하게 보여줄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뮤지컬은 그런 인물의 심리가 노래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고 봤다. “작품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의사소통은 활발하지 않아요. 그런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걸 노래가 대신해주죠.”

이와 함께 “무대 위에서 사무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책상 하나만 있으면 되잖아요.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력으로 구현되죠. 관객의 참여, 관여가 많은 점도 흥미롭죠. 뮤지컬은 죽을 때까지 다듬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뮤지컬 장르에 대해 흡족해했다.

어거스트는 할리우드의 유명 각본가다. ‘빅 피쉬’를 비롯해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프랑켄위니’(2012) 등 할리우드 스타일리스트 팀 버튼 감독과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 밖에 동명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1992)을 실사로 옮긴 디즈니 뮤지컬 영화로 최근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알라딘’(2019)의 각본을 맡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타 라이언 레이놀즈가 주연한 영화 ‘더 나인스’(2007)의 감독이기도 하다.

버튼 감독과는 영화 ‘빅 피쉬’ 작업 당시 처음 만났다. 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자신이 산 뒤 영상적 감각이 뛰어난 버튼에게 본인이 직접 제안했다. 이후 ‘찰리와 초콜릿 공장’, ‘프랑켄위니’ 등을 연달아 작업하며 콤비가 됐다.

어거스트는 단지 수동적 각색자가 아니다. 수선화를 만들었든 윌이 기자라는 설정도 그의 아이디어다. “윌은 에드워드 와 대조되는 인물이죠. 진실을 말할 때 문자적 사실, 감정적 사실이 있어요. 에드워드는 감정적 사실, 윌은 문자적 사실을 추구하죠.”

대조는 어거스트의 상상력 원천이기도 하다. ‘빅 피쉬’에서는 현실과 상상,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는 현실과 초콜릿 공장 세계가 대조됐다. 그러면서 자신의 우상이던 ‘찰리와 초콜릿의 공장’ 원작자인 로알드 달에게 열 살 때 편지를 썼던 기억을 떠올렸다. 달은 꼬마 어거스트에게 친히 답장을 줬고, 뒷날 그 꼬마는 ‘찰리와 초콜릿의 공장’ 각본을 쓰는 시나리오 작가 어거스트가 됐다.

이런 예상치 못한 스토리는 어거스트가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 범주에 포함된다. 그는 “어떤 결과를 그려낼 지 예상하는 관객에게 감정적 보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이야기만, 더불어 허를 찌르는 이야기를 통해 예상하지 못한 감정까지 가져가게 만드는 것이 더 좋은 이야기”라며 웃었다.

한편 CJ ENM은 ‘킹키부츠’ ‘보디가드’에 이어 ‘빅 피쉬’도 글로벌 공동 프로듀싱을 한 뒤 한국에 선보이고 있다. CJ ENM의 미국 뉴욕 상주 직원인 최윤하 PD는 ‘킹키부츠’ ‘보디가드’와 ‘빅피쉬’의 한국 공연 차이점에 대해 “‘킹키부츠’와 ‘보디가드’는 약간의 수정만 거쳤는데 ‘빅 피쉬’는 브로드웨이 버전과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음악, 대본 빼고 모두 한국에서 만든 거예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1400석,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는 300석, 한국에서는 900석에서 공연하는 거죠.”

2013년 브로드웨이 초연 버전은 뮤지컬 ‘컨택트’로 유명한 미국 연출가 겸 안무가 수잔 스트로만이 연출을 맡아 안무와 비주얼이 강조됐다. CJ ENM과 슈왈츠가 협업한 한국 버전은 아들과 아버지의 감정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감정적인 부분이 도드라진다.

최 PD는 “뉴욕 관객은 판타지에 대한 만족감이 컸고 한국 관객은 감정적 카타르시스에 크게 반응한다”면서 “목표대로 이뤄져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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