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슈트 만들듯… 현대기아차 가상현실서 신차 설계-검증

화성=지민구 기자

입력 2019-12-19 03:00 수정 2019-12-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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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 VR디자인 평가장 공개

현대·기아자동차는 경기 화성시 남양기술연구소에 150억 원을 투자해 작업자가 가상공간에서 컴퓨터가 만들어낸 신차 모형을 보고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는 ‘신개념 디자인 평가장’을 올해 3월 열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신차 개발 기간을 기존 대비 20% 단축할 수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제공
올해 10월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자동차 남양기술연구소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큰 안경 형태의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착용하고 등장했다. 수소 전용 대형 트럭인 ‘넵튠’의 최종 디자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헤드셋을 통해 가상공간에 넵튠이 실물처럼 등장하자 정 수석부회장은 차량 안팎과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고 보완점을 지시했다. 현대·기아차가 150억 원을 투자해 올해 3월 문을 연 ‘신개념 디자인 평가장’에서 차량 모형이나 실물을 직접 보지 않고서도 신차 디자인의 최종 점검을 마친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20명이 동시에 신차의 디자인을 효율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신개념 디자인 평가장을 17일 처음 외부에 공개했다. 마블 영화 ‘아이언맨’에서 슈트를 만드는 것처럼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의 모형으로 작업자가 제품을 제작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현장을 보여준 것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우선 종이에 스케치를 하고, 컴퓨터를 활용해 3차원(3D) 화상으로 바꾼 뒤 점토(클레이) 모델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신차의 디자인 데이터를 모아 가상공간에서 모형을 구현하면 실험·평가 과정을 줄이면서 쉽게 재질부터 색상, 부품 등을 변경해 달라진 모습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정 수석부회장 등 현대·기아차 주요 경영진은 앞으로 매달 신개념 디자인 평가장에서 신차 개발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대·기아차는 앞으로 미국, 중국, 유럽, 인도 등의 자사 디자이너들도 남양연구소의 신개념 디자인 평가장에 동시에 접속해 함께 디자인을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신차 설계 과정 시 실내에서 평면적인 차량의 디지털 이미지를 화면에 띄워 차량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했다. 예를 들면 운전자가 좌석에 앉았을 때 좁지 않은지, 팔을 뻗었을 때 충분히 냉난방 조절 등 차량 기능 조작이 가능한지 등을 실제 차량 탑승 실험 전에 평면적인 디지털 이미지로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6월부터는 3D 데이터를 모아 가상공간에서 신차 모형을 보여주면 연구원이 실제 차량에 탑승한 것처럼 공간을 확인하고 설계대로 들어간 부품이 문제없이 작동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탑승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기아차는 3세대 K5 개발 과정에서도 실내 계기판 주변에 적용된 금속 등의 화려한 소재가 햇빛에 노출됐을 때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가상공간 기술을 활용했다. 차량을 야외에서 주행하지 않아도 문제점을 찾아 해결한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가상공간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설계 검증 시스템이 연구개발(R&D) 전 과정에 도입되면 신차 개발 기간이 20% 단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차 개발 기간이 4, 5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년 가까이 짧아지는 것이다.

연간 신차 개발 비용도 15%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가상공간 기술이 안정화되면 수백 대까지 필요했던 테스트용 차량 수요도 줄어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감되는 것이다. 독일 BMW그룹과 다임러그룹(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도 차량 설계·생산 과정에 가상공간 관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은 “가상공간을 통한 디자인·설계 검증 시스템으로 품질을 높이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R&D 투자를 강화하고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화성=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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