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물서 찾아낸 색채-패턴이 명품 브랜드 제품과 만나면?

동아일보

입력 2019-12-10 17:06 수정 2019-12-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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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베단 로라우드

오렌지색으로 칠한 눈썹, 현란한 무늬가 새겨진 원피스, 볼에는 연지곤지를 찍고 모자를 쓴 여인이 나타났다. 총천연색 메이컵과 동서양을 아우르는 의상은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러시아 인형처럼 보이려고 한 패션 콘셉트예요. 그런데 오다가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한국의 전통 결혼식에서 쓰는 모자(족두리) 사진을 보내줬지 뭐예요. 너무 예뻐서 눈이 휘둥그레져 걷다가 그만 꽈당 넘어졌죠!”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8회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강연회를 가진 베단 로라우드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에르메스, 발렉스트라, 토리버치, 로젠탈, 페리에 주리 등 명품 브랜드와 연이어 협업을 하면서 주목받았다. 그는 화려한 컬러와 패턴을 조합한 쇼윈도와 가구, 가방과 주얼리까지 다양한 디자인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다.

에르메스 윈도 디스플레이

“2014년 에르메스 윈도 프로젝트는 화가 앙리 루소의 정물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작품을 2D에서 3D로 바꿔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어요. 에르메스는 ‘노동의 과실’이라는 문구를 내걸 정도로 핸드메이드와 장인정신을 존중하는 브랜드예요. 그런 정신이 담긴 오브제와 디스플레이 세트가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발렉스트라와 협업한 ‘치약컬렉션’

토리 버치와 협업한 카나페 시리즈는 ‘가짜 음식’을 테마로 만든 설치물이다. 치약을 짜놓은 듯한 독특한 무늬로 디자인 된 발렉스트라 가방에는 “여러 색이 레이어링된 나폴리 아이스크림과 1970년대 아버지의 넥타이, 여기에 약간의 민트 치약을 섞은 어딘가”라는 흥미로운 설명이 붙어 있다.

“어릴 적부터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된 ‘가짜 음식’을 갖고 잘 놀았어요. 진짜와 가짜가 모호한 가치를 지닌 물건에 항상 흥미를 갖고 있죠. 사람들은 자연을 좋아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산업화 개발을 추구해왔기 때문이죠. 저는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걸 좋아해요.”

그는 럭셔리 브랜드가 흔히 주목하지 않은 소재를 즐겨 사용한다. “영국 왕립예술학교 재학시절부터 맨홀 뚜껑이나 라미네이트, 대리석, 벽돌처럼 일상의 사물을 관찰해서 패턴을 찾아내는 작업을 해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한 “데이비드 호크니가 1980년대 중반 팩스 머신으로 출력한 패턴으로 작품을 만들었듯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나도 다양한 도구에 도전해왔다”고 말했다.

문락 테이블

“베니스에서 복사기 위에 살라미(말린 햄)를 놓고 고기의 마블링을 수차례 반복해서 카피해봤어요. 복사기의 채도를 조정해 빨강, 파랑, 초록 등 특정색만 강조해서 복사를 하게 되면 끊임없이 새로운 패턴이 나왔죠. 또 재활용 폐목재를 살펴보던 중 ‘갈색도 모두 같은 갈색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어요. 모든 사물에서 연관된 ‘세컨더리 컬러’(Secondary Colour)를 탐구하면서 나만의 색채 조합을 찾게 됐습니다.”

그는 영국 뿐 아니라 각국을 여행하던 도중 찾아낸 컬러와 패턴을 디자인에 활용하기도 한다.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 성당 창문의 스테인드글래스에서 영감을 받은 ‘과달루페 소파’가 대표적이다. 그는 “런던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린 작품과 멕시코 과달루페, 치아파스 등을 여행하면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보면 색깔과 스타일이 대조적이다. 다양한 작품들은 고유의 색깔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에르메스 ‘자연으로의 질주’

그는 한국 방문기간에도 강남구 코엑스 앞에 있는 사찰인 봉은사, 을지로 조명상가, 광장시장 등을 찾아 이방인에게는 신기하게만 보이는 풍경들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봉은사에 갔었을 때 스님들의 독경소리, 초록색 문과 빛바랜 살구빛 건물, 특이한 나무 조각들이 너무 좋았어요. 다음날에는 을지로와 광장시장 등을 걸으면서 사람들이 옷을 수선하고, 기계를 고치는 장면을 몇 시간 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쳐다봤어요. 재래시장에서 본 옷과 천의 색상과 무늬, 건물 지붕, 파이프와 조명 등이 굉장히 특이해서 무궁무진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향후 몇 년 안에 한국 등 아시아에서 발견한 컬러와 패턴을 활용한 디자인 작품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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