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익명성 뒤에 숨은 ‘사이버 폭력’ 악플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입력 2019-12-04 03:00 수정 2019-12-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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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하고 친절하기 그지없는 지킬 박사는 인간에게 선과 악의 두 가지 본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두 가지 본능을 분리시킴으로써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고 화학 약품을 이용해 실험에 착수합니다. 실험에 성공한 지킬 박사는 약을 먹으면 악한 하이드로 변신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이드를 통제할 수 없게 되면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지킬 박사와 하이드’(1886년)의 줄거리입니다.

서양의 로마 신화에는 문을 지키는 신 ‘야누스(Janus·사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누스는 머리 앞뒤로 온화한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두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동양철학에서도 인간 본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합니다. 맹자는 성선설을 말했고,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습니다.

최근 연예인 설리(본명 최진리·25)에 이어 가수 구하라(28)마저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걸그룹 출신 연예인들이라 대중의 충격이 큽니다. 전문가들은 2008년 탤런트 최진실과 2017년 샤이니 멤버 종현의 사망 후 청소년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사실을 들며 이번에도 혹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의 연이은 죽음에 해외 언론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 CNN방송과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매체들은 케이팝 스타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집중 보도했습니다. 이들은 “케이팝 스타들의 사생활은 대중에 고스란히 노출돼 검증받았으며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세계에서 두 사람이 받은 중압감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으리라 짐작됩니다. 대중은 아이돌을 하나의 상품으로 대상화해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특히 여성 케이팝 가수들의 사생활은 누리꾼들이 올리는 악성 댓글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입니다. 악성 댓글을 보면 익명성 뒤에 숨어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보는 듯해 씁쓸합니다.

연예인 자살사건을 계기로 악성 댓글의 폐해를 막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 도입 여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악성 댓글로 개인의 명예와 인권이 침해되는 문제가 가볍지 않습니다. 악성 댓글은 익명 뒤에 숨은 사회적 폭력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순기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익명성 뒤에 숨은 ‘사이버 폭력’ 악플는 ‘공직선거법’과 ‘정보통신망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공직선거법에는 선거운동 기간에 정당·후보자 관련 글과 관련해 인터넷 언론에 적용하는 ‘한시적 실명제’ 조항이 있고, 정보통신망법에는 인터넷 게시판 설치·운영자가 이용자 본인 확인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는 ‘상시적 실명제’ 조항이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전자에 대해 합헌 결정을, 후자에 대해서는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본인 확인을 넘어 게시물에 실명을 그대로 노출하는 ‘포괄적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는 문제는 결코 간단히 결정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과 여론 형성 기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통제 가능한 댓글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국민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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