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온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

김기윤 기자

입력 2019-11-15 03:00:00 수정 2019-11-15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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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소년 죽음 둘러싼 ‘5·18 아픔’… 배우의 몸짓과 오브제로 연극화
객석을 향한 불편한 질문 ‘긴 여운’


김도완 배우가 밀가루를 스스로 뒤집어쓴 채 소설 속 대사를 외치는 장면. 그는 자기 몸을 때리고 격렬히 흔들다 무대 위로 쓰러진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거대한 나무 벽을 설치한 텅 빈 무대.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한 차례 들리면 모든 시공간이 뒤엉킨다. 배우들은 절규하듯 소설 속 문장을 외치거나, 최루가스 같은 밀가루를 던지고 스스로 뒤집어쓴다. 형언하기 어려운 동작을 반복하다 이윽고 벽에 부딪힐 때까지 내달리는 자기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온몸으로 바닥을 쓸어내듯 무대를 나뒹구는 배우들 뒤로 뚝, 뚝 끊어지는 피아노 건반 소리만 울려 퍼진다.

연극 ‘휴먼 푸가’는 배우의 신체 언어와 오브제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속 문장을 되살려낸 작품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무대화한 건 이번이 국내 최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숨을 거둔 15세 소년 ‘동호’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다. 제목의 ‘푸가(fuga)’는 멜로디가 반복, 교차하며 규율적으로 모방 변주되는 작곡법. 수많은 삶 안에서 지금도 5·18의 고통이 반복, 변주되고 있다는 뜻을 지녔다.


작품은 관객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다. 난해함에 당혹감마저 들 수 있다. 하나의 일정한 서사 대신 예기치 못한 사건이 하나 던져지면 그 위엔 몸부림과 오브제만 남는다. 원작 텍스트가 있다 해도 배우들이 선보이는 35개의 움직임, 라이브 푸가 연주, 증언 같은 대사들을 열심히 쫓는 게 쉽지 않다.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객석까지 전이된다면 “고통의 소리를 마주해야 한다”는 원작자와 연출의 의도가 꽤나 맞아떨어진 셈이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한다”는 작품의 태생적 어려움이 불편하더라도 작품은 마주할 가치가 있다. 어떠한 고통이 실재했고, 지금도 이어진다는 걸 감각적으로 일깨우기 때문이다. 물론 이 미제(謎題)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공은 객석으로 넘어온다.

“당신은, 나와 같은 인간인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7일까지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전석 3만 원. 14세 관람가. ★★★★(★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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