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안 10%까지만 변경’ 규정에… 재건축 사업 잇단 주춤

유원모 기자

입력 2019-11-14 03:00 수정 2019-11-14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서울시 “업체 과도한 특화설계로 공사비 부풀려 조합원 부담” 강화
성동구 한남하이츠 시공사 입찰, GS건설 한곳만 참여해 결국 유찰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도 고강도 점검으로 사업 일정 중단
전문가들 “10% 룰 지나친 규제”


“최근 특별점검에서 건설사의 과도한 특화 설계안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입찰참여를 미루게 됐습니다.”

지난달 31일 마감된 서울 성동구 옥수동 한남하이츠 재건축 시공사 입찰에서 현대건설은 이 같은 입장을 내고 참여하지 않았다. 공사비 3400억 원 규모에 한강 조망이 가능한 대단지라는 점에서 대형 건설사들의 치열한 다툼이 예상됐던 곳이다. 하지만 GS건설 한 곳만 입찰에 참여하면서 경쟁입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유찰됐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인근의 한남3구역 입찰에 참여한 시공사들의 설계안에 대해 강도 높은 특별점검을 하는 상황”이라며 “한남하이츠에서도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설계안을 꼼꼼히 점검해 다시 응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의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설계안 논란으로 인해 사업 진행이 지체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서울시가 올해 5월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을 개정하며 만든 ‘대안설계 10% 제한’ 규정 때문이다. 기존 조합 측에서 사업시행인가 때 제출한 설계안의 10% 이내에서만 시공사가 설계안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달 18일 대림산업, 현대건설, GS건설 등 3개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한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도 이달 4일부터 15일까지 서울시와 국토부, 한국감정원 등 관계기관에서 설계안의 위법 요소를 검토하는 합동점검을 진행 중이다. 각 건설사가 특화설계안으로 제시한 △동 위치 변경 △한강 조망 가구수 확대 △4베이(방 3개와 거실을 전면부에 배치) 평면 확대 등이 10% 룰을 벗어나는지 등이 쟁점이다. 이로 인해 재개발 사업 일정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5월 강화된 규정이 발표된 이후 큰 시공사 선정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관련 규정을 적용하는 곳이 한남3구역”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이 같은 규정을 신설한 이유는 시공사들이 입찰에서 내세우는 과도한 특화설계안으로 인해 공사비가 부풀려지고 조합원 부담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7년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재건축 수주 과정에서 건설사들의 지나친 특화설계안 경쟁으로 지금까지 사업이 지체되며 조합원들 간에 분쟁을 겪고 있다”며 “지자체 심의를 통과한 설계안을 제대로 준수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는 △사업비 10% 이내 △가구당 주거전용면적 10% 범위 이내 내부구조 위치 변경 △부대시설 설치 규모 확대(위치 변경 제외) 등을 기준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설계를 10% 기준에 맞춰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고, 모호한 기준이 많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서울 강남권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조합이 만든 설계안은 아무래도 지자체의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성격이 크고, 실제 착공·준공 기준으로 보면 5∼10년 전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건설사에서 내놓는 대안설계안대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홍보요원(OS)과 이사비 지원 등이 엄격히 금지된 상황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설계안밖에 없다”며 “10% 규정에 일률적으로 맞추라고 하니 교묘히 특화 조건을 내세우는 등의 꼼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특화설계안 경쟁으로 인한 분쟁을 막기 위한 규정은 필요하지만 창의적 아이디어가 쏟아져야 하는 설계를 10% 기준에 맞춰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과열된 수주 시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설계도면 제출 강화와 공사비 명세의 정확한 근거 제시 등의 합리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