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안 거미줄의 주인은 거미일까 작가일까

김민 기자

입력 2019-11-08 03:00 수정 2019-11-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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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예술가 토마스 사라세노展
생명과학-열역학 등 최신기술 활용…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관객에 어필


설치 작품 ‘아라크네, 우주먼지, 숨쉬는 앙상블이 함께하는 아라크노 콘서트’(2016년). 갤러리현대 제공
아르헨티나 출신 예술가 토마스 사라세노(46)의 작품 ‘하이브리드 건축물’은 거미가 주인공이다. 여러 종의 거미 2, 3마리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8주에 걸쳐 만든 거미줄이 결합돼 하나의 건축물이 탄생됐다. 또 다른 설치 작품 ‘아라크노 콘서트’에서는 거미가 일으키는 진동이 스피커로 울려 퍼지면서 어두운 전시장 속 먼지와 공명한다. 관객은 숨죽인 채 이 광경을 지켜본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사라세노의 개인전이 개막했다.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라세노는 10여 년간 거미와 협력자로 일했다. 그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국가관 가운데 ‘거미/줄’관을 세워 거미줄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어릴 적 오래된 집 다락방에 가득한 거미를 보고 ‘우리 집 주인은 거미일까 나일까’ 공상하던 소년은 거미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려 시도한다.

사라세노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대형 설치작품을 통해서다. 2008년 선보인 ‘Galaxies Forming Along Filaments’는 거미줄에서 영감을 얻어 인류의 새로운 주거 형태를 고민했다. 좁은 땅에 밀집한 도시의 주거를 벗어나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경계 없이 오갈 수 있는 시스템을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제안했다.

이번 개인전의 전시장 지하에서 만나는 ‘서울/클라우드 시티즈’는 이렇게 작가가 꿈꾸었던 ‘구름 도시’ 모습을 서울에 결합했다.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대규모 ‘구름 도시’는 관객이 직접 거미가 된 듯 투명한 구 형태의 공간을 오갈 수 있어 인기였다. 서울은 이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생명과학이나 열역학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관객을 매혹하는 방식은 덴마크 출신 예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이나 영국 기반 그룹 랜덤인터내셔널을 떠올리게 한다. 몰입에 가까운 경험과 사진을 찍고 싶은 비주얼도 이러한 경향과 맞물린다. 이 때문에 자연사박물관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회의적 시선도 있다. ‘예술의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라는 화두로 지켜보기에 흥미로운 작가다. 12월 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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