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케어 2년, 대형병원으로 쏠리는 환자들… 건보 재정은 시름[인사이드&인사이트]

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

입력 2019-11-08 03:00 수정 2019-11-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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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의료보장 강화 명암… MRI-초음파 등 고가치료도 건보
연인원 3600만명 의료비 부담 줄어… 동네 병-의원은 존폐위기 내몰려
건보재정 지난해 적자 돌아서 2023년까지 9조7000억 달할듯
입원비-처치료-약값 하나로 묶는 新포괄수가제 확대 서둘러야


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
경남 창원에 사는 박모 씨(66·여)는 1년에 서너 번씩 서울행 KTX를 탄다. 2년 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서울아산병원에서 경과도 확인하고 다른 혈관 질환은 없는지 검사를 받기 위해서다. 집 근처에도 대학병원이 있지만 이른바 ‘빅5’로 불리는 큰 병원에서 진료받기를 박 씨와 가족 모두 원했다. 박 씨는 “담당 의사는 건강이 많이 회복됐으니 가까운 병원에 가도 괜찮다고 하는데 건강보험 덕분에 검사 비용 차이가 크게 없어서 계속 다니기로 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넓혀 국민 의료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났다.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면서 박 씨처럼 만족하는 국민이 많다. 큰 병원을 이용하려면 내야 했던 선택진료비가 폐지됐고 각종 초음파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도 건강보험이 부담해 준다. 고도비만 수술, 한방 추나요법, 병원 2·3인실 이용도 건강보험으로 보장되면서 환자 부담은 실제로 줄었다.

하지만 의료 현장의 얘기는 좀 다르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의료 전달 체계를 흔든다” “지속 가능성이 없다” 같은 경고음이 끊이지 않는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돼 서울과 지방의 의료 양극화가 심해졌고 늘어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지 장기 계획이 없다는 얘기다. 현 정부 임기 내 보장성 70% 달성이라는 목표만 좇다 보니 속도와 우선순위를 세밀하게 조정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빈번해진 과잉 진료, 의료 쇼핑

정부는 올 7월 문재인 케어 도입 2주년 성과를 발표했다. 올 4월까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 의료비 6조8000억 원 중 28%(1조9000억 원)를 급여화해 혜택을 본 국민이 연인원 360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 국민 1인당 월평균 급여비는 10만3261원으로 사상 처음 10만 원을 넘었다. 낸 보험료 대비 혜택 받은 급여 비율은 지난해 1.17배까지 꾸준히 올라 2010년 1.19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런 성과 너머의 그늘도 보인다. 자신이 부담할 진료비가 낮아지자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나 진료를 받는 과잉 진료는 더 잦아졌다. 병원에서는 “본인 부담금이나 비급여 항목은 실손보험으로 처리하면 된다”며 추가 진료를 권한다. 대형병원은 더 많은 의료행위로 실적을 낸 의사에게 성과급을 주는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 대형병원 전문의는 7일 “병원에 돈을 더 많이 벌어다 줘야 좋은 의사로 평가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는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손해보험업계 상위 5개사의 실손의료보험 청구금액은 올 상반기(1∼6월) 본인부담금 1조4500억 원, 비급여 진료 금액 2조6500억 원이었다.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14.2%, 6.9% 상승했다. 정부가 의료비 부담을 줄인 것 이상으로 국민 주머니에서 돈이 더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비급여 항목을 줄였더니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창출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며 “보장성을 더 강화해도 정부 목표인 70%에 도달하기 어려울 만큼 비급여 증가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본인 부담이 적다 보니 공동의 재원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와 ‘공유지의 비극’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 ‘대형병원은 웃었다’

지난 2년의 보장성 강화가 상급병원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대형병원은 환자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상반기 전국 42개 상급종합병원 급여비는 5조723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3% 급증했다. 종합병원도 16.8% 증가해 전체 급여비 증가폭(14.4%)을 웃돌았다. 병원은 11.0%, 의원은 12.4% 증가해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된 것을 볼 수 있다. 홍윤철 서울대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예방의학교실 교수)은 “의료 전달 체계가 왜곡돼 대형병원은 환자가 넘치지만 동네 병의원은 존폐 위기에 놓인 곳이 많다”며 “만성질환 환자의 대형병원 진료를 억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같은 급여비 증가폭은 앞으로 더 가팔라질 확률이 높다. 요즘 의료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내년 도입될 척추 MRI 급여화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직장인과 학생의 상당수가 허리와 목 통증을 호소하는데 척추 MRI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건강보험 지출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허리디스크 환자는 약 198만 명, 척추관협착증 환자는 약 165만 명으로 추산된다.

급속한 고령화도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총 진료비는 31조8235억 원으로 사상 처음 30조 원을 돌파했다. 총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8%였다. 올 상반기 노인 진료비는 17조4575억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41.6%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 대비(15조97억 원) 16.4%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노인 인구가 20%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에는 노인 진료비 비중이 6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 20조 적립금, 2023년 반 토막

건강보험 재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7년 연속 당기흑자를 낸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지난해 1778억 원 당기적자로 돌아섰다. 정부의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르면 올해 3조1636억 원, 내년 2조7275억 원 등 2023년까지 6년간 9조6932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연금처럼 쌓아놓고 굴리는 적립식이 아니라 그해 들어온 보험료 수입만큼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재정 운영 원칙이라는 주장이다. 그동안 과도하게 쌓아둔 측면이 있는 건강보험 재정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계획된 적자’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설명이 절반만 맞는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말 기준 약 20조 원의 누적 적립금은 2023년이면 반 토막 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이후의 재정 조달 계획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법으로 정한 국고 지원 규정을 지킨 적이 없다. 현행법은 매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20%(14%는 국고로, 6%는 담뱃세로 조성)를 건강증진기금으로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2007∼2019년 국고 지원율은 15.3%에 그쳤다.

인구 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건강보험 재정 전망은 더 비관적일 수 있다. 고령인구는 급증하고 보험료를 납부할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계속 감소해 보험료 수입으로는 급여비 지출을 감당하기 버겁다. 이상이 교수는 “재정 안정을 위해서는 올해 6.46%인 건강보험료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13% 수준까지 올려야 하는데 정부가 국민에게 이를 설득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장성 강화라는 생색은 이번 정부에서 내지만 그 부담은 미래 세대가 짊어지게 될 우려가 큰 것이다.


○ ‘과잉 진료 근절’이 지속 가능에 필수

전문가들은 문재인 케어가 지속 가능하려면 진료비 지불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잉 진료의 원인이 되는 행위별 수가(酬價) 제도 개선이 핵심이다. 행위별 수가 제도는 진료나 수술 같은 개별 의료행위마다 서비스 비용을 책정하는 것이다. 병원이 의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다. 환자도 모르는 새 불필요한 진료 항목이 추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입원비와 처치료, 약값을 하나로 묶어 미리 가격을 정하는 신(新)포괄수가제 확대가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재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민간과 공공을 합쳐 68곳뿐이다.

환자들을 동네 병의원으로 이끄는 유인책도 늘려야 한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의사는 원하는 처방을 마음대로 내리고, 환자도 가고 싶은 병원을 골라서 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구조”라며 “서울과 대형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동네 병의원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강화하는 주치의 제도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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