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의 기적… ‘심정지’ 프랑스인, 후유증 없이 고국으로

홍은심 기자

입력 2019-10-30 03:00:00 수정 2019-10-30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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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구로병원

일반 병실에서 회복 중인 다니엘 나파르 씨. 위급한 상황에 고려대 구로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됐던 나파르 씨(가운데)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의 완벽한 응급의료 시스템”이라며 “이 병원에 온 것은 나의 행운”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2일 오전 7시. 출장차 한국을 찾은 다니엘 나파르 씨(66·프랑스)는 갑자기 극심한 기침과 구토,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했다. 다급한 아내는 호텔의 도움으로 119에 신고했다. 위급한 상태였던 나파르 씨는 구급 대원들에 의해 곧장 국가 지정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고려대 구로병원으로 옮겨졌다.

2번의 심정지, 신속한 심폐소생술로 살려


희미하게 의식이 있던 환자는 병원 도착 직후 심정지가 일어났다. 의료진은 곧바로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했다. CPR 4분 만에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원인을 찾기 위해 검사를 하던 도중 찾아온 또 한 번의 심정지. 그야말로 생사를 알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다시 심폐소생술을 했고 기적적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환자의 의무 기록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심정지는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의료진은 오로지 환자의 상태만으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중환자실, 혈액투석, 에크모… 급박했던 당시

중환자실 입원이 시급했다. 나파르 씨는 응급 중환자실로 빠르게 옮겨졌다.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운영 중인 곳이었기에 가능했다. 혈압 상승제를 고용량으로 투여하고 인공호흡기에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는 신장내과와 논의해 24시간 혈액투석(CRRT)을 시작했다. 그러고도 호전의 기미가 없어 흉부외과 협진으로 체외순환장치인 에크모를 사용했다. 하지만 환자의 생사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최악의 순간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이영석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는 “일반적으로 나파르 씨 같은 상태라면 소생 가능성이 매우 작기 때문에 하루를 넘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설령 소생한다 할지라도 심정지를 두 차례나 겪은 환자이기 때문에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의식을 찾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신영 신장내과 교수는 “환자는 저혈압 때문에 소변량도 점차 감소했고 대사성 산증이 악화되고 있어 빠른 투석이 필요했다”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중환자 집중치료 시스템이 만들어 낸 기적

하지만 중환자 다학제 집중치료 시스템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나파르 씨는 입원 다음 날부터 혈압이 안정되고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3일째부터는 의식도 명료하게 회복됐다. 심정지를 겪은 환자가 후유증 없이 의식이 돌아온 것은 기적이었다. 보호자의 눈물이 미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파르 씨는 입원 일주일 만에 에크모를 제거하고 8일째에는 인공호흡기 없이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직은 일반 병실에서 천천히 회복 중이지만 본국인 프랑스로 돌아갈 채비를 할 만큼 상태가 호전됐다.

이 교수는 “중환자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라며 “나파르 씨는 심정지가 왔을 때 응급실에서 신속하게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중환자실에서는 신장내과, 흉부외과와의 협업으로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과가 협업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환자가 회복할 수 있었다”며 “이것이 우리 중환자실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나파르 씨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의 완벽한 응급의료 시스템과 팀워크가 나를 살렸다”며 “절박했던 순간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행운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은 수도권 9개 권역에 15곳의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해 운영 중이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A등급을 받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를 주축으로 여러 임상과가 다학제 협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다니엘 나파르 씨를 치료한 이영석 고려대 구로병원 중환자전담전문의 “중환자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


의사, 간호사, 약사, 영양사 다학제진료

중환자실은 생명에 위협을 받는 중증 환자가 고도의 집중적인 치료와 관리를 받는 곳이다. 고령화에 따른 중증질환 증가, 신종플루·메르스 사태와 같은 감염병 재난 등을 거치면서 중환자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최적의 치료를 위해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진료과별 담당의, 간호사, 약사, 영양사로 이뤄진 다학제팀이 주 3회 다학제 회진을 한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 약물과 영양 지원부터 입·퇴실 전반을 결정한다. 중환자실은 총 94병상으로 꾸려져 있다. 외과계·내과계·응급 중환자실·신생아 중환자실·통합 중환자실 등 다섯 파트로 나뉘어 운영된다.

특히 1인실과 2인실로만 이뤄진 통합 중환자실이 9월 오픈했다. 1, 2인실로만 돼있어 독립된 공간에서 환자별 집중 치료가 가능하다. 통합 중환자실은 2개의 메인 스테이션과 곳곳에 간호사 서브스테이션을 배치해 한 명의 간호사가 최대 2명의 환자를 전담 모니터링한다. 2개의 음압격리병실을 추가 설치해 메르스 등 감염성 질환에도 대비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의 강점은 ‘패스트 트랙(fast track)’과 ‘신속한 턴 오버(turn over)’다. 외상팀, 심혈관센터, 뇌신경센터 등 세 진료과 환자가 이송되면 응급의학과에 알람이 울린다. 패스트 트랙은 알람을 받은 전문의 교수가 즉시 환자 처지에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환자들은 골든아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다. 대형병원들의 응급실 적체가 심한 것에 비해 고려대 구로병원은 빠른 입·퇴원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국내 어디서든 최단 시간 내 응급환자의 헬기 이송을 할 수 있도록 신관 옥상에 헬리포트도 설치했다. 항공응급의료 시스템을 구축해 응급환자는 물론 긴박한 장기이식 수술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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