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샘물을 끓이고 식히기를 100번…조선 임금이 마신 최고의 물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19-10-27 15:01:00 수정 2019-10-27 15: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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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늦은 저녁부터 가래와 어지럼증이 더욱 심해지고 눈꺼풀이 감겼다 열렸다하며 손발의 온도가 여느 때와 다르십니다. 이는 필시 가래가 (목을) 막아 그럴 것입니다. 백비탕(百沸湯)을 먼저 드시고 계귤다(桂橘茶)에 곽향 한 돈을 더해 달여 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선 최고의 장수대왕 영조의 임종 직전 어의들이 내린 마지막 처방이다. 이 처방에 나온 백비탕은 그의 손자인 정조에게도 처방됐다. 정조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명정전을 방문할 때마다 과도한 슬픔에 빠져 갑작스런 가슴 답답증과 현기증을 호소했다. 그때 처방된 약이 바로 백비탕.

백비탕은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맹물을 끓여서 만든다. 맹물이라도 그냥 물은 아니다. 아침에 솟아나는 샘물을 끓이고 식히기를 100번 반복해 얻은 귀한 물이다. 음양론에 의하면 물은 음적(陰的)이다. 하지만 백비탕은 양적(陽的)인 물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지만 아침 샘물은 위로 솟구쳐 양의 기운을 머금었다. 100번 끓이는 과정에서 불이 양기를 충만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후궁이나 궁녀들을 거느린 조선왕들은 양기 보충을 위해 백비탕을 먹곤 했다.

반대로 가장 음적인 물은 정화수다. 아침에 우물물에서 맨 처음 길어 올린 물이다. 우물물은 머무른 채 흐르지 않으며 밤의 정화작용을 거쳐 더욱 맑고 깨끗해진다. 맑고 차가운 성질로 열성(熱性) 질환을 고친다. 실제 정화수는 조선 임금의 스트레스로 인한 열성 질환의 치료에 널리 쓰였다. 현종은 열성질환 중에서도 특히 종기로 인해 평생 고생을 했는데, 즉위 초 코에 붉은 발적이 생기자 주사비(딸기코)로 보고 어의들은 정화수에 웅담을 개서 바르도록 했다. 몸에 열이 차오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인조의 증상에도 청심원과 정화수가 처방됐다.


이 백비탕과 새로 길은 정화수를 반반씩 합해서 마시면 음양탕(陰陽湯)이 된다. 생숙(生熟)탕이라고도 하는데 음양의 균형이 깨졌을 때 먹으면 좋다. 갑작스런 구토와 복통에 주로 쓰이며 몸을 담구고 있으면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본초강목은 절기에 따라 물을 길어두고 특별한 용도에 사용할 것을 권했다. 입춘수는 봄이 만물을 탄생시키듯 임신에 좋은 사랑수다. 널리 알려진 약수(藥水)는 납설수다. 동지로부터 세 번째 말일인 ‘납일’에 내린 눈을 받아 독 속에 저장해두고 약처럼 마신다. 납설수는 응달에 두면 몇 년이 지나도 변치 않고 벌레가 생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조 10년 실록에는 ‘열이 오르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임금이 납설수에 녹두죽을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납설수의 해열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조선의 관리들은 절기마다 꽃에 맺힌 이슬로 ‘약술’을 만들어 먹는 풍류도 있었다. 홍도음은 봄 홍도(紅桃)에 맺힌 이슬을 털어 교서관(校書館)에서 만든 술이고, 장미음은 예문관에서 초여름에 장미에 맺힌 이슬로 빚은 술이다. 벽송음은 여름 솔잎에서 턴 술로 홍문관에서 빚은 술이었다. 특별한 효능을 가진 이슬도 있다. 눈을 밝히는 데는 잣나무에 맺힌 이슬을, 백반증을 치료하는 데는 부추에 맺힌 이슬을 매일 복용했다.

‘바다가 모든 계곡의 물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가장 낮기 때문이다.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성인이 항상 말을 겸손하게 하고 자신을 낮추는 이유다.’ 요즘 들어 물이 주는 약효보다 노자가 말한 ‘물의 처세’ 교훈이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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