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나가게 해준 탁구…휠체어 타고라도 계속 칠 것”[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기자

입력 2019-10-26 14:00:00 수정 2019-10-26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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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복 원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이상국탁구교실에서 탁구채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지체장애 2급 손해복 장수한의원 원장(58)은 틈만 나면 집 근처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이상국탁구교실을 찾아 탁구를 친다. 왼쪽에 목발을 의지하고 치지만 스매싱, 드라이브, 백핸드 푸시 등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실력에 웬만큼 탁구 친다는 비장애인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손 원장은 태어나자마자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두 발로 걸어본 적이 없었지만 탁구를 치면서 희망을 찾았고 즐겁게 건강도 지키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께서 마당에 탁구대를 들여놨다. 탁구대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탁구를 치게 된 측면도 있지만 솔직히 밖에 나가기 싫어서 탁구에 매달렸다. 세상과 담을 쌓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보니 아버지와 두 형하고만 쳤다.”

손 원장은 어릴 땐 아이들이 ‘절름발이’라고 놀려 바깥출입을 가급적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엔 거의 가지 않았다. “난 초등학교를 사실상 3년밖에 안 다녔다. 친구들이 놀려 3학년까지는 학교에 가기 싫어 제적당하지 않을 정도로 가끔 갔다”고 했다. 4학년 때부터는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을 수 없었고 탁구를 치기 시작한 6학년 때부터는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손해복 원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이상국탁구교실에서 즐겁게 탁구를 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탁구는 손 원장에게 딱 맞는 스포츠였다. “한쪽을 제대로 쓰지 못하지만 탁구 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특히 상대의 허를 찌르며 공을 넘기는 게 너무 재밌고 좋았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장애인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많지 않다. 목발에 의지하지만 탁구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다. 내겐 더 없이 좋은 건강 유지법이자 소통 통로”라고 강조했다.

“탁구는 나를 세상 밖으로 나가게 해주는 창구였다. 우리 집에 탁구대가 있다는 소식에 아이들이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게 됐다. 자칫 내가 세상과 완전히 담 쌓고 성격도 모나게 될 수 있었는데 탁구를 친 덕분에 긍정적이고 활동적으로 바뀌게 됐다.”


중고교에 다니면서는 반장도 하는 등 적극적인 ‘학생’으로 바뀌었다. 사교성이 좋다보니 공부 잘 하는 친구부터 못하는 친구까지 두루 사귀었다. 손 원장은 탁구를 치면서 승부욕도 ‘싸움닭’처럼 강해졌다.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고교 3학년 때 전국장애인탁구대회에 출전해 준우승까지 할 정도로 한번 시작한 것에서는 꼭 ‘승부’를 냈다.

경희대 한의대에 진학하면서 탁구와 멀어졌다. 멀어졌다기보다는 잠시 ‘이별’이었다. 본격적으로 혼자 살아가야 할 시기가 다가왔고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에 매진해야 했다.

“한의학 공부가 쉽지 않았다. 6년을 공부하고 국가고시까지 준비하느라 탁구 칠 짬을 내기 힘들었다. 한의원을 내고서도 사회생활에 적응하느라 시간을 좀처럼 내지 못했다.”

결국 건강 때문에 다시 탁구를 치기 시작했다. 다양한 모임에 나가서 활동하면서 술을 많이 마셔서 살이 많이 쪘다.

“어느 순간 체중을 재보니 놀랄 정도로 늘어 있었다. 혈압도 110에 180까지 오를 정도였다. 이러단 오래 못 살 것 같아 방법을 찾았고 그게 탁구였다. 2007년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집 근처 이상국탁구교실을 찾았다. 처음엔 배가 접히지 않아 땅에 떨어진 공을 못 잡을 정도였다. 아들과 옆 사람의 도움을 받아 쳤다. 몇 분 치지도 않았는데 흠뻑 땀에 젖었다. 다시 학창시절 치던 ‘탁구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손해복 원장이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장수한의원에서 유명 탁구인 및 장애인탁구 관계자들과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역시 탁구는 좋았다. 짧은 시간에도 땀이 비 오듯 흘렀고 쌓였던 스트레스도 날아갔다. 그때부터 다시 탁구에 빠져들었다. 진료를 마치고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탁구장으로 간다.”

2010년 ‘반포탁사랑’이란 탁구 동호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했다.

“회원이 현재 46명이다. 그 회원들과 늘 탁구를 치며 함께 어울린다. 탁구 친 뒤에는 가끔(?) 술도 함께 마신다. 탁구가 맺어준 인연이지만 가족같이 끈끈하다. 비장애인과 격의 없이 지내고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밑바탕이 탁구다. 건강을 위해 탁구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탁구 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도 크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시장애인탁구협회 회장을 맡았다. 탁구는 다시 그를 ‘세상’과 연결했다. 당연히 건강도 되찾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에 봉사활동도 많이 한다. 한의원이 있는 서울 관악구 사회복지센터에 매월 기부금도 내고 있다.

손 원장은 아내도 스포츠행사에서 만났다.

“대학 때 동아리들이 모여서 체육대회를 한 적이 있다. 장애인들이 대학갈 때 핸디캡을 주는 제도를 없애자는 캠페인을 하면서 체육대회를 했다. 그 때 집사람이 자원봉사를 왔다. 내 맘에 꼭 들어 바로 대쉬했다.”

스포츠를 매개로 가장 중요한 사람과 건강유지법이자 평생 친구(탁구)를 얻게 된 것이다. 지금은 탁구도 아내와 함께 친다.

“내가 탁구를 시작하고 너무 좋아서 집사람에게 함께 치자고 했다. 탁구는 복식을 많이 치는데 내 움직임이 제한돼 민폐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했는데 아내와 치면서는 그런 게 없다.”

손해복 원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이상국탁구교실에서 즐겁게 탁구를 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손 원장은 반포탁사랑에서 ‘탁구 1인자’다. 동호회에서 1경기 당 1000원 짜리 칩 내기 게임을 많이 하는데 손 원장에겐 항상 칩이 쌓여 있다. 최근 열린 동호회 탁구대회에서도 1위를 했다. 최근엔 비장애인들이 참가하는 사회인 탁구대회에 연거푸 출전해 준우승과 3위를 했다. 손 원장은 “탁구는 내가 살아 있는 이유다. 운동량도 많고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다. 하루 중 탁구 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손 원장은 장애인들도 즐겁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들의 평균 수명이 비장애인보다 10년 정도 짧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장애로 인한 오장육부의 불균형과 운동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고 말했다. 손 원장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 탁구를 통해 장애에 대한 마음의 문도 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어느 누구나 불의의 사고에 노출되어 있고 또 노인성 질환인 뇌졸중 치매 파킨슨병 등 질병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미래의 장애인이다. 우리가 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 원장은 장애인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이름이 손해복입니다. 손해보고 복 받으라고 지어준 것 같습니다. 60살 가까이 장애인으로 살아보니 손해 보고 살아온 게 결코 손해 보는 삶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장애를 극복하려고 하는 것 보다는 장애인이길 인정하고 사는 길이 더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습니다. 탁구는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재활의지에 힘을 더해주는 좋은 친구이며 삶의 질도 개선해줍니다. 장애인들도 운동을 합시다.”

손해복 원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이상국탁구교실에서 탁구채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손 원장은 “탁구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친구이자 영원한 동반자”라며 “나이 들어 목발 짚고 못 칠 때가 되면 휠체어를 타고라도 탁구를 치려고 한다”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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