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분양 30채 룰’ 암초… 소규모 주택 공급도 위축 우려

유원모 기자

입력 2019-10-19 03:00 수정 2019-10-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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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상한제 불똥 튄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

기존 653채 규모의 단지를 리모델링을 통해 740채로 확대할 예정인 서울 용산구 이촌현대 아파트의 모습. 이촌현대리모델링조합은 내년 8월 리모델링 과정에서 늘어나는 97채를 일반분양할 계획이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현행 주택법에 따르면 30채 이상을 일반분양하는 주택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이 된다. 물론 소규모 정비사업도 30채 이상을 일반분양한다면 이에 포함된다.”

1일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은 ‘최근 부동산 시장 점검 결과 및 보완방안’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 과정에서 이같이 말했다. 리모델링 등 소규모 정비 사업장에도 민간택지로 확대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강화된 재건축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올랐던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조합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일반분양 30가구 룰에 발목 잡힌 리모델링

“리모델링은 말 그대로 집을 고쳐 쓰는 겁니다. 기존 주택 구조를 활용해야 하는 등 태생적 한계로 주변 시세보다 가격이 낮을 수밖에 없는데 규제를 가한다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이근수 서울 용산구 이촌현대 리모델링 조합장은 18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한숨을 쉬며 이처럼 말했다. 리모델링은 기존 가구 수의 15%까지만 일반분양이 허용돼 재건축보다 수익성이 낮은 편이다. 1974년 준공된 이촌현대아파트는 현재 지상 12∼15층, 8개동 653채 규모의 단지를 750채로 늘리는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올해 8월 사업시행 인가를 받았고 내년 상반기부터 이주를 진행해 내년 8월 착공과 입주자 모집 공고(일반분양)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일반분양 물량이 30채를 넘어가면서 발생했다. 이 아파트는 현행법상 리모델링을 통해 최대로 늘릴 수 있는 기존 가구 수 대비 15% 규정을 꽉 채운 97채를 일반분양할 예정이었다. 이 조합장은 “애초 계획한 조합원 분양가는 3.3m²당 5000만 원이고 일반분양가는 4400만 원 정도로 낮게 잡았다”며 “분양가상한제로 일반분양가가 3000만 원대로 떨어지면 조합원당 분담금이 기존 2억∼3억 원에서 추가로 1억∼2억 원이 오르게 돼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18일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현재 수도권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사업장은 총 33개 단지, 2만810채 규모다. 이 가운데 일반분양 가구 수를 30채 이상으로 계획한 곳은 18개 단지, 1만4072채에 달한다. 이들 단지 가운데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이촌현대아파트가 내년 하반기에나 일반분양이 가능해 대부분의 사업장이 ‘6개월 내 입주자 모집 공고’라는 분양가상한제의 유예 조건에 포함되기 힘들다.

리모델링과 비슷한 성격의 소규모 재건축인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현재 가구 수가 확정된 서울시내 26곳의 사업장 중 7곳이 일반분양 규모가 30채가 넘는다. 다만 이들 사업장 대부분의 사업 진척 속도가 빨라 6개월 내 분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곳이 아닌데도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김정기 서울 강동구 둔촌현대1차 리모델링조합장은 “일반분양이 74채에 불과하고 분양가 역시 3.3m²당 3000만 원 정도라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낮게 책정됐다”며 “인근의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는 둔촌1동이고, 여기는 둔촌2동이라 규제 지역을 동별로 지정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계획한 일반분양 물량을 줄이는 식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아 리모델링 추진위 관계자는 “원래는 148채를 일반분양할 계획이었는데 상한제 규제와 관련한 우려가 커지면서 1+1 분양이나 전용면적을 늘리는 등의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신답극동리모델링조합은 최근 시공사를 선정하면서 일반분양 가구 수를 29채로 확정했다. 30채 룰을 가까스로 피한 것이다.


○ 소규모 주택 공급마저 위축 우려

리모델링제도는 2001년 처음 도입됐다. 평균 10년 이상 걸리는 오랜 사업 기간과 건물을 완전히 철거한 후 새로 짓는 재건축·재개발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제도 운용 초기에는 기존 주거 면적을 넓히는 수준으로만 리모델링이 허용돼 사업비 조달의 어려움 등으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2001∼2014년 리모델링 완공에 이른 단지는 14곳에 불과했다.

이에 정부는 2014년 관련법을 개정해 3개층까지 더 높일 수 있는 수직 증축을 허용하고 기존 가구 수의 15% 이내에서 일반분양을 진행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줬다. 여기에 준공된 지 15년만 지나면 새 집으로 바꿀 수 있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나 기부채납, 임대주택 의무 조성 등도 리모델링은 예외로 해주면서 재건축의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정책위원장(무한건축 대표)은 “리모델링은 신축 아파트 못지않은 양질의 아파트를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집값 안정책으로 볼 수 있다”며 “일반분양을 허용한 것은 수익을 낸다기보다 최소한의 사업 진행을 위해 틀을 만들어준 것인데 여기에 상한제를 적용하면 리모델링 시장에 큰 악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분양가상한제의 기준을 완화하는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이 올해 9월 대표 발의한 ‘주택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일반분양 물량이 200채 미만일 경우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토부 관계자는 “리모델링 등 소규모 정비사업의 경우 일반분양이 30채 미만인 경우가 많아 분양가상한제의 주된 대상은 아니다”라며 “입법 절차가 본격화되면 정부의 입장을 추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규모 정비사업마저 규제에 묶이면 주택 공급 축소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리모델링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 조금씩 활기를 띠어가던 각종 도시재생 사업들도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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