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에 안 밀려”…54세 입문해 환갑 넘어 ‘야구의 신’으로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기자

입력 2019-10-12 14:00:00 수정 2019-10-12 16:04:17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배트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윤진숙 씨 제공.


한국 나이 54세에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속칭 ‘2030’으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주로 즐기는 스포츠인 야구에서 50세를 넘긴 나이에 입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바로 ‘야구의 신’으로 떠올랐고 환갑을 넘긴 지금도 ‘2030’에 전혀 밀리지 않고 경쟁하고 있다. ‘야구 선수’ 윤진숙 씨(62) 얘기다.

“난 좋아하는 것은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엉겁결에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어 이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악자전거(MTB)가 야구 뒤로 밀렸다.”


알파인보드를 타고 있는 윤진숙 씨. 윤진숙 씨 제공.

알파인보드 우승한 뒤 포즈를 취한 윤진숙 씨. 윤진숙 씨 제공.


2010년 4월 이었다. 알파인보드를 즐기는 동호회 ‘아스카론’을 주축으로 ‘아스카론’이란 야구팀을 만들었다.

“보드 멤버에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친김에 팀을 만들고 내가 초대 단장을 했다. 난 야구를 좋아는 했지만 해보진 않았다. 청백전 나가 ‘만세’ 몇 번 부르고 나니까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열심히 배웠다.”

그 즈음 현역 은퇴를 앞두고 있던 최향남 현 글로벌선진학교 감독(48)을 만났다. 아스카론 연습장에서 함께 훈련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당시 최향남 선수가 내게 ‘힘도 좋고 자세가 좋으니 투수를 해 보시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바로 최향남 선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투구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엄청나게 두드려 맞았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과거 MTB 최강자를 인연으로 다니던 자전거 회사 지하실에서 피나는 훈련을 했다.

“한쪽에 자전거 상자를 세우고 고무장갑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해 던졌다. 자전거를 세워둔 비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잘 못 던지면 자전거를 맞고 좌우 이쪽저쪽으로 튀었다. 너무 높게 던지면 천장 형광등이 깨기도 했다. 그렇게 수 천 번을 던지니 제구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무기가 체인지업인데 아직까지 요긴하게 쓰고 있다.”

야구대회에서 상을 받고 활짝 웃고 있는 윤진숙 씨. 윤진숙 씨 제공.
윤 씨의 별명이 ‘윤 제구(制球)’가 된 배경이다. 태권도와 알파인보드, 산악자전거로 다져진 탄탄한 몸을 가진 그는 바로 야구에도 적응했다. 아스카론은 창단 4년 만에 서울시장배에서 당시 최강이던 탑건설을 꺾고 4연패를 하기도 했다.

“아스카론이 너무 잘 나가서 난 나왔다. 내가 사는 경기도 용인지역에서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내가 현재 뛰고 있는 팀만 4개다. 과거 잠깐 거친 것까지 따지면 더 많지만….”

윤 씨는 각 팀에서 주전 투수와 중심 타자를 맡고 있다. 연령대에서 최고수이다보니 실버팀에서 나오라고 하지만 가급적 안 나가려고 한다. 스포츠를 할 땐 같은 나이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너무 싱겁기 때문이다.

“솔직히 난 아들벌인 20, 30대들과 야구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데 60대 팀에 나가면 재미가 없다. 제대로 던지지도 못하고 치지도 못하고. 속이 터진다. 하지만 그들을 보면서 내가 더 자극은 받는다.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겠다고.”

야구에서 심판 보기 전에 포즈를 취했다. 윤진숙 씨 제공.
윤 씨는 5년 전 심판자격증까지 땄다.

심판을 보기 위해 보호기구를 착용하고 있는 윤진숙 씨. 윤진숙 씨 제공.


“야구 룰을 잘 몰라 공부하는 셈 치고 심판 강습을 들었다. 내친김에 자격증까지 땄다. 지금은 내가 사는 용인지역 심판장을 맡고 있다. 그래서 심판할 때도 있고 경기할 때도 있다.”

윤 씨를 용인에버야구장에서 만난 8일 그는 오후 6시50분 경기에선 심판을 봤고 9시 경기에선 선수로 활약했다. 그의 하루는 새벽 5시30분에 시작된다. 건설업을 하고 있어 현장에 6시30분까지 나가서 일을 보고 퇴근하면 오후 5시30분에서 6시 정도. 평일 밤 경기가 회사원 퇴근을 감안해 보통 6시30분 넘어서 열리니 일찍 끝나는 날에는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체력단련을 하고 나온다. 8일 같이 심판보고 밤 9시 경기까지 마치면 밤 11시50분. 끝나고 집에 가면 12시다. 집이 용인에버야구장에서 5분 거리에 있어 가능한 일이다. 거의 매일 이렇게 살고 있다.

야구 유니폼을 입은 윤진숙 씨가 8일 경기도 용인에버야구장에서 산악자전거에 올라 활짝 웃고 있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밤까지 야구를 한다고 보면 된다. 심판도 보고 선수로 뛰기도 하고. 잠깐 쉬는 시간이면 MTB를 타고.”

윤 씨는 타고난 ‘스포츠인’이다. 전문 운동선수는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운동’과 함께 했다. 학창시절 태권도 3단을 딴 윤 씨는 우여곡절 끝에 일찍 사회에 뛰어들었다. 군대에선 태권도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군 시절 태권도 대회에 나가서 요추를 크게 다쳤다. 수술을 거부하고 의가사 제대했다. 아프다고 누워만 있으면 몸이 약해질 것 같아 근육운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보디빌딩이라고 하지만 그 땐 육체미로 불렸다. 지도자 자격증을 따 지도자 및 선수생활도 했다.”

겨울엔 보드를 탄다.

“1990년대 지산스키장이 생길 때쯤이다. 친구가 스키장에 가자고 해 갔다가 보드를 타게 됐다. 그 때까지 스키만 알고 있었는데 이상한 판때기를 타고 내려오기에 한번 타고 내려오다가 죽는 줄 알았다. 남들은 하는데…. 그래서 배웠다. 한 3년 지나니 알파인보드가 나왔다. 바로 알파인보드로 바꿨다. 보드에서도 최강이 됐다. 아마추어, 프로 다 우승했다. 마지막 우승이 2011년이다. 50세를 넘었을 때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는 윤진숙 씨. 윤진숙 씨 제공.
1998년부턴 MTB를 타기 시작했다.

“보디빌딩을 하는 친구 하체가 나보다 좋았다. 알고 보니 MTB를 타고 있었다. 당시 유명했던 ‘와일드바이크’라는 사이트를 통해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 바로 MTB계에서 강자로 떠올랐다. 각종 대회를 휘어잡았다. 그 즈음부터 MTB를 탄 사람이라면 내 별명 ‘독수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MTB를 탈 때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준 별명이다. 산악마라톤 계에서 대통령으로 불렸다. 당시 가수 김세환 씨와 함께 MTB 발전에도 기여했다. 그 무렵 만들어진 MTB 대회의 창립에 많이 기여했다.”

2000년 만든 ‘280랠리’는 MTB 마니아들에게 로망이다. 산악 280km를 36시간에 완주하는 대회. 순위를 가리는 게 아니라 완주가 목표인 ‘자신과의 싸움’이다. MTB마니아들에게는 280랠리를 완주한 사람과 못한 사람으로 나뉠 정도로 유명하다. 윤 씨가 초대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1998년 MTB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무작정 달린 게 280랠리의 시작이다. 도심을 떠나 산악을 달렸다. 장시간 산악 라이딩을 하면서 열악한 기상 상황에 힘겨웠고 배고픔에도 직면했다. 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으로 생각하고 계속 달렸다. 달리고 봤더니 280km였고 36시간이었다. 그래서 36시간 안에 280km 달리는 280랠리를 만들었다. 매년 6월 마지막 주 토, 일요일에 열린다. 더운 날씨에 비, 태풍이 와도 대회는 열린다. 자전거만 잘 탄다고 되는 게 아니다. 체력도 좋아야 하고 전략도 잘 짜야 한다. 한마디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대회다.”

2006년 12월 행정자치부장관으로부터 받은 표창장. 윤진숙 씨 제공.
윤 씨는 2006년 12월 행정자치부장관으로부터 표창장도 받았다. ‘평소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 노력하여 왔으며, 특히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기여한 공이 컸다’는 게 표창 이유다. 30대엔 축구하다 양쪽 전방십자인대가 나가기도 했다. 이렇게 활력적인 스포츠를 좋아하다 지금은 야구를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야구도 정적인 것 같지만 활력적이다. 야구의 매력? 내가 던진 공을 상대가 못 치게 만들고, 내가 상대공을 쳐낸 뒤 느끼는 전율은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모른다. 또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아주 섬세한 스포츠다.”

윤 씨는 그 누구보다 야구에 자신이 있다.

윤진숙 씨가 8일 경기도 용인에버야구장에서 투구를 하고 있다.
“지금도 올라가서 바로 던지면 스트라이크다. 매일 던질 수도 있다. 근육 운동을 매일 하기 때문에 매일 던져도 힘들지 않다.”

야구하다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2011년 9월 리그 결승전에서 코에 공을 맞아 수술까지 했다.

“당시 선발이 일찍 무너지는 바람에 내가 급하게 마운드에 올랐다. 득점권 상황에서 중전 안타를 맞고 투수판을 돌아서던 순간 눈앞에 공이 있었다. 중계플레이 되던 공이 내 얼굴로 날아온 것이다. 성형이 필요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 있다.”

윤진숙 씨가 8일 경기도 용인에버야구장 사무실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팀의 유니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그래도 야구는 항상 그의 친구였다. 윤 씨는 한달에 최대 24경기, 1년에 200경기 가까이 소화한다. 그에게 야구는 삶 자체다.

“내 주변에 돈 많이 번 사람들 치고 건강이 좋은 사례가 많지 않다. 욕심이 건강을 버리게 만든다. 나도 사업할 땐 1년에 2번 씩 병원에 가 위궤양 치료를 받았다.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다. 벌만큼만 벌면 된다. 나도 사업을 크게 망한 적이 있다. 그 때 알았다. 돈이 많으면 뭐하나. 건강 잃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난 운이 좋았다. 30대 때 크게 망한 뒤 그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욕심을 버리고 나니 스노보드, 자전거,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몸도 마음도 편하다. 난 금요일까지만 일하고 주말에는 야구와 MTB에 집중한다.”

그래도 절대 무리는 하지 않는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모습. 윤진숙 씨 제공.
“과유불급이라 했다. 적당하게 한다. 사실 아직 웨이트트레이닝에서 스쿼트(바벨 메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110kg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젠 60~80kg으로 한다. 무리하다 다치면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못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게 가장 좋은 것이다.”

윤 씨는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다.

“나 때문에 운동한 친구들이 많다. 한 30대 친구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레그프레스(발로 중량 밀기) 130kg를 밀지 못했다. 내가 가볍게 성공하니 충격을 받았고 운동을 시작해 지금은 아주 멋진 몸매를 갖추고 있다. 어떤 친구는 오랜 만에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하고 왔는데 몸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를 보고 따라했다고 했다.”

윤 씨가 자신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운동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를 보고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부심을 느낀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야구와 MTB를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야구와 MTB가 없는 삶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100세 넘을 때까지 즐기려 노력하겠다.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아야지 병상에서 살면 무슨 의미가 있나?”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