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참 순한’ 무대…찬란하지 않아서 괜찮아

양형모 기자

입력 2019-10-11 05:45 수정 2019-10-11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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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부를 통보받은 대학교 연극부가 마지막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주인공 이찬란(맨 앞)과 연극부원들이 MT를 떠나 바닷가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진제공|Con.T

■ 웹툰 싱크로율 100%…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까마중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
아기자기한 무대의 변신 인상적
반짝반짝 빛나는 대사들 긴 여운


웹툰을 연극으로 만드는 작업은 기존 히트곡들을 꿰어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작업이다. “캐릭터, 스토리 다 만들어졌잖아?” 하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웹툰은 웹툰이고, 연극은 연극이다. 웹툰에서 먹혔다고 연극에서도 먹힐 것이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오산이다. 그래서 망한 작품 참 많이도 보아 왔다.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까마중 작가가 쓰고 그린 동명의 웹툰이 원작. 대학생 이찬란이 겪은 한 시즌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잔잔한 스토리, 아름다운 그림체, 반짝반짝 빛나는 대사, 엄청난 공감력으로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10월 5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처음으로 관객을 만났다. 학교로부터 폐부를 통보 받은 유령 연극부에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이찬란과 부원들이 마지막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이 이 작품의 한 줄 스토리인데, 그 와중에 캐릭터 각자의 사연과 아픔이 치유되어 나간다. 어떻게 보면 다섯 명 모두가 주연인, 그런 작품이다.

무대는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미니멀하다. 정육면체의 큐빅을 잔뜩 쌓아 올려놓은 무대다. 이 상자들은 연극부 연습실이 되었다가, 커피숍이 되었다가, 산이 되었다가, 바다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영상의 스크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이 영상이 무척 아름답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무대의 밋밋함을 영상이 잘 잡아 주었다.

순한 연극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대사들이 참 반짝반짝 빛난다. 그래서 한술 입에 떠 넣으면 처음엔 밍밍한 것 같지만 금방 혀가 적응해 버린다. 대사의 잔잔한 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남는 연극이다. 그러니 이 멋진 대사들을 단숨에 꿀꺽하지 마시고, 조금은 길게 머금고 계셔 보시길.

출연배우들이 대부분 뮤지컬 배우라는 것도 눈에 띈다. 그래서일까. 극 중 대학교 축제 신에서 연극부원들이 노래를 하는 장면을 삽입했다. 꽤 신나는 ‘봄밤’이라는 곡인데, 이 작품의 음악감독인 조원영 감독이 작곡한 오리지널이다.

사진제공|Con.T

배우들은 웹툰에서 오려 붙여놓은듯 싱크로율이 높다. 연극부 회장 윤도래 역의 유제윤은 미소가 싱그러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진지함과 코믹을 오가는 모습을 웹툰 그대로 잘 표현했다.

이찬란 역의 박란주는 감정의 전달이 정확해 이 작품이 드러내놓은 (절대 감춰놓지 않는다) 메시지를 충실히 전해주었다. 이찬란의 어두움, 폐쇄적인 모습을 ‘자연스러운 애틋함’으로 그려냈다. 마지막의 긴 독백은 이 작품의 짧지만 더없이 강렬한 하이라이트. 여운의 꼬리가 더없이 길고 짙다.

최시온 역의 홍희원은 돋보이는 외모만큼이나 연기가 시원시원하다. 모범생 교회 오빠 이미지이지만 어딘지 모를 허당 끼가 큰 웃음을 준다. 요즘 핫한 배우로 급부상 중인 김현진은 막내 권유 역이다. 연기가 싱그러워 보는 이로 하여금 엄마, 이모, 형님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귀여움을 타고난 배우 같기도.

김혁진(진이라고 불러야 한다) 역의 이설희는 웹툰 속 진과 100%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웹툰의 한 페이지를 그대로 컬러 복사해 놓은 듯한 외모다. 실제로 이런 김혁진이 캠퍼스를 슬렁슬렁 돌아다닌다면 사람들의 눈에 ‘확’ 들어올 것이다.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웹툰 독자라면 두 배 세 배 더 재미있게 관극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냥 가도 좋겠지만 시간이 된다면 예습 차원에서 웹툰 앞부분만이라도 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제목 그대로 “당신은 지금 그대로 좋으니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작품. 조금 바꿔 말한다면 이런 것이겠지. 당신은 지금 그대로 찬란해. 그러니까 더 이상 찬란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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