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픽션, 회화와 사진 경계를 넘어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10-10 03:00:00 수정 2019-10-10 11: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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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겸 행위예술가 고상우 16~29일 개인전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사진작가 고상우 씨가 ‘Hug’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갤러리나우 제공
《한 사내가 옷에 검정 잉크를 묻힌 채 바닥을 구르고 있다. 이어 장미꽃에 분홍색 페인트를 묻혀 천에 글씨를 쓴다. 그리고 천으로 몸을 둘둘 감싸고 또 구른다. 세상과의 완전한 고립. 겨우 일어선 그의 몸엔 검은색, 분홍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었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두 팔을 벌려 다가선다. “Hug me(안아주세요).” 그러나 10여 분이 흘러도 그를 안아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다. 그런 그를 옆에 있던 무용수가 살포시 안아 준다…. 》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개막식. 사진작가이자 행위예술가인 고상우 씨(40)의 퍼포먼스 주제는 ‘외로움’. 고독에 몸부림치던 사내의 옷에는 물감이 묻어 있었고, 오프닝에 참석한 관람객 중 그를 안아준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안아줄 때 퍼포먼스를 끝내려 했어요. 다 끝난 후에 남녀 2명이 저를 안아주려고 막 재킷을 벗고 나오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예정된 10분이 너무 짧아 아쉬웠죠. 만일 옷이 깨끗했다면 좀 더 빨리 허그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겠지요?”

미국 시카고예술학교를 졸업한 고 씨는 22세에 뉴욕 최대 아트페어인 아머리쇼에 참가하는 등 일찌감치 미 현대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1월에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막식에서도 ‘평화’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그는 퍼포먼스 도중에 자신의 얼굴이나 모델의 몸에 하트나 꽃을 그려 넣으면서 사진촬영을 한다. 자신의 얼굴에 Love(이마), Speak(입), Believe(목) 등의 글씨를 쓰고 촬영한 작품은 뉴욕 갤러리에서 팝스타 마돈나가 소장해 유명해졌다. 그는 “행위예술은 반쯤 미치지 않으면 그냥은 할 수가 없다. 200∼300명의 관람객에게 둘러싸인 채 하다 보면 때로는 감정 컨트롤이 어려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고상우의 ‘키스’. 보디페인팅을 한 남녀 모델을 촬영한 뒤 반전한 필름을 그대로 현상해 회화 작품 같은 느낌을 줬다. 고상우 작가 제공
그의 사진 속 사람 얼굴은 온통 푸른색이다. 색상이 반전(反轉)된 필름을 그대로 현상하기 때문이다. 그에겐 ‘푸른색 사진예술의 선구자’라는 칭호가 따라다닌다. 그는 “대학 시절 처음 암실에서 필름 속 내 얼굴을 봤을 때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며 “유령처럼 파란색 얼굴이 비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 안에서는 인종이든 성이든, 모든 경계선이 무너진다. 동양인의 노란색 피부는 푸른색으로, 흑인은 흰색으로, 백인은 검은색으로 반전된다. 그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반전시키고, 현실에서 환상으로 전도시킨다는 것이 제 첫 작업의 타이틀이었다”고 말했다.
 
고 씨의 푸른색 피에로 사자. 동물원에서 촬영한 뒤 사진 용량을 5GB까지 키워 석 달 동안 디지털붓으로 세밀하게 채색해서 완성한 작품이다. 갤러리나우 제공
고 씨는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 사진을 직접 찍고, 디지털로 채색해 하이퍼리얼(hyperreal)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다. 16∼2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나우에서 열리는 ‘고상우―경계의 확장’에서는 ‘피에로 사자’, 곰의 ‘겨울잠’, 코끼리의 ‘키스’, 호랑이의 ‘운명’ 같은 신작들을 전시한다.

그의 사진 속 사자와 호랑이의 노란색 털도 반전시켜 푸른색 피부가 됐다. 그의 ‘푸른색 피에로 사자’는 압도적인 눈빛과 분홍색 하트 모양이 신선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하트는 새로운 심장과 생명을 상징한다. 사진을 엄청나게 확대한 후 디지털 페인팅으로 세밀하게 채색하기 때문에 사자의 눈동자 속 홍채를 그리는 데만도 1주일 이상 걸린다고. 그는 “도심 빌딩이나 운동장, 동물원 등에서도 전시해 사람들 마음에 호소하고 싶어 극사실적인 채색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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