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아파트 4채 중 1채, 지방 ‘현금 부자’들이 매입”

유원모기자

입력 2019-10-09 18:34 수정 2019-10-0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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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모 씨(69)는 올해 7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전용면적 59㎡ 아파트를 12억3000만 원에 구입했다. 부산 해운대구에 아파트 한 채를 보유 중이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딸에게 증여하기 위해서였다. 이 씨는 “부산 아파트는 가격이 오를 기미가 없는데 서울 강남권은 꾸준히 상승하는 것 같아 구입했다”며 “한 달만에 시세가 1억 원 이상 올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 씨뿐만이 아니다. 서울 강남권에서 거래되는 아파트의 4채 중 1채는 지방의 ‘현금 부자’들이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2017~2019년 강남4구 매입자별 아파트 매매거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강남구에서 거래된 아파트 2252채 가운데 서울 외 거주자가 555채를 매입해 24.6%를 차지했다. 2017년 22.6%에서 지난해 24.3%로 상승한 데 이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서초구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방 거주자가 차지하는 아파트 매매 비중이 2017년 18.4%에서 지난해 19%로 올랐고 올해는 20.7%로 뛰었다. 송파구는 2017년 21.7%에서 지난해 25.7%로 올랐지만 올해는 23.1%로 소폭 하락했다.

현장의 공인중개사들은 지표로 나타난 숫자보다 지방 거주자들의 강남권 아파트 매입 비중이 더 높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홍숙년 래미안대치팰리스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지난달에만 지방에서 올라온 고객 중 3명이 물건이 없어 매수 대기만 걸어놓고 돌아갔다”며 “실제 거래된 아파트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지방에 거주하는 분들이 매입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방 거주자들은 주로 투자용으로 매입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전세 구하기가 용이한 소형 평수를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럼에도 액수가 20억 원 이상이 되는데 대부분 대출이 아닌 현금성 자산으로 조달한다”고 말했다.

서울과 지방 부동산 시장의 가격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지방 현금 부자들의 자금이 강남권으로 유입됐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7일 공개한 ‘지역부동산 시장 리스크 진단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경남과 경북, 충남과 충북 지역은 아파트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40개월 이상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과 울산, 강원, 전북, 제주 역시 20개월 이상 하락 국면에 놓여 있다. 반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한국감정원 집계 결과 7월 첫째 주부터 마지막 조사가 이뤄진 9월 다섯째 주까지 14주 연속 상승 중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준금리가 낮아져 유동자금이 풍부해지는 상황에서 지방 부자들이 주식과 지방 부동산 등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니 안전자산 개념으로 강남권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내년부터 본격 개발할 예정인 3기 신도시의 토지보상금이 집행되면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토지보상·부동산개발 플랫폼인 ‘지존’은 내년부터 3기 신도시 보상금으로 45조 원가량이 집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2009년 2기 신도시 개발 당시 34조8554억 원 규모였던 토지보상금보다 10조 원가량 많아진 수치다.

민 의원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 등 각종 공급 규제로 인해 서울 집값이 계속 오르면 지방 투자자들의 강남권 행렬을 부추길 수 있다”며 “공급 확대 등 정부 부동산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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