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소굴을 습격한 길고양이

노트펫

입력 2019-10-07 09:07 수정 2019-10-0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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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의 놀라운 위력

[노트펫] ‘동물의 왕국’같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는 아프리카 사자가 물소나 얼룩말 무리들을 공격하여 사냥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아프리카의 마사이마라(Masai Mara National Reserve)나 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 같은 초원에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그와 유사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포식자와 먹잇감의 크기와 종류에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몇 년 전 KTX를 타고 서울에서 지방의 한 대도시로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역 광장 지하도 앞에서 만나기로 한 지인이 약속보다 십여 분 늦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그 근처에서 그 시간만큼 기다려야 했다. 잠시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오는 지하도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망중한(忙中閑)이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벤치에 앉은 지 5분도 흐르지 않아서 급작스러운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지하도 인근 화단으로 뛰어들었고, 1, 2초 사이에 십여 마리의 쥐떼들이 밖으로 순식간에 쏟아졌다. 거리에 나온 쥐들은 다른 화단으로 재빠르게 이동하였다.

고양이가 습격한 그 화단은 쥐들의 소굴이었던 것 같았다. 작은 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던 화단 속은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그러니 쥐의 입장에서 그 화단은 완벽한 은신처였던 것이다.

그곳에만 있으면 쥐들은 덩치 큰 동물이나 사나운 새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고양이가 아닌 다른 포식자에게는 통하는 수법이다. 고양이는 작은 체구에 민첩성을 갖춘 포식자여서 어지간한 장애물은 극복할 수 있다.

길고양이는 단 한 번의 급습에 성공하여 쥐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잠시 후 화단에서 나왔다. 그리고 유유히 사람들이 안 보이는 자신만의 은신처로 사라지고 말았다.

고양이가 벌인 소동이 잠잠해진 후, 지인이 도착했다. 지인에게 그 소동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더니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는 역 광장 일부 화단들은 이미 쥐 떼가 차지하고 있다면서 고양이가 없으면 쥐들이 더욱 극성을 벌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신도 이미 몇 차례 고양이의 쥐 사냥 장면을 본 적이 있다고 덧붙여주었다.

솔직히 길고양이에 대해 호의적은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아무도 길고양이의 도심 생태계에서의 생태학적 역할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하지만 길고양이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살면서도 도시의 생태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길고양이가 없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쥐들이 창궐하는 도심의 거리나 골목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쥐들과 함께 열차를 타고 이곳저곳으로 여행하고 다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비위생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 이는 어디까지나 고양이 덕분이다. 비록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지만 길고양이 덕분에 현대인들은 수많은 질병을 옮기는 쥐가 아닌 예쁘고 매력적인 고양이를 거리의 친척으로 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길고양이들의 수고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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