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인사’ 김아림의 벙커샷이 던진 페어플레이 논란[김종석의 TNT 타임]

김종석 기자

입력 2019-10-06 13:29:00 수정 2019-10-06 13: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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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개선 의혹 끝에 대회 기권
-KLPGA투어 허술한 경기 운영 지적
-심판 없는 골프에서 규칙 준수 중요성 새삼 부각


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에서 벙커샷 논란 끝에 기권한 김아림. 최혁중 기자

1. 2018년 US오픈. 필 미컬슨(미국)이 경기 도중 퍼트한 공이 내리막 경사를 타고 굴러갔다. 미켈슨은 공이 채 멈추기도 전에 퍼트를 했다. 움직이는 공을 치면 안 된다는 골프 규칙 14조 5항 위반이었다. 그에게는 2벌타가 내려졌다. 아마추어 주말골퍼들도 좀처럼 하지 않는 이 같은 룰 위반 행동에 ‘필드의 신사’라던 그의 이미지에 크게 흠집이 생겼다. 며칠 후 그는 사과문을 냈다. “더 일찍 사과했어야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시간이 걸렸다. 실망스러웠던 저의 행동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분노와 좌절감 때문에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

2. 2004년 한국오픈. 당시 대회를 개최한 충남 천안 우정힐스CC는 깊은 러프로 악명이 높았다. 초청선수로 나선 어니 엘스는 러프에 빠진 공이 자신의 것이 맞는지, 공이 지면에 박혔는지를 확인하겠다며 경기위원을 불렀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엘스는 공을 원래 있던 위치가 아닌 풀 위에 약간 올려놓은 채 플레이하려 했다. 이를 지켜본 당시 경기위원이 원래대로 공을 더 깊게 놓으라고 몇 차례 지시한 끝에 플레이가 속개됐다. 그 경기위원은 “공이 낙하의 충격으로 지면에 박혔을 경우 구제가 가능할 수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엘스가 룰을 이용해 라이를 개선할 의도로 보여 저지했다. ‘황태자’로 불리던 엘스가 당시 강한 러프 저항에 다시 그린 옆 러프에 공을 빠뜨리자 장갑을 내팽개치더라”고 말했다.

장타자 김아림(24)은 역대 최고 우승 상금 3억7500만 원이 걸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 2라운드를 마친 뒤 기권했다. 중간합계 1오버파로 컷 통과선을 여유 있게 넘었지만 3라운드 출전을 스스로 포기했다.


이 대회를 포함해 KLPGA투어 107개 대회에 출전한 김아림이 2라운드 종료 후 기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6년 한화클래식 첫 날 80타를 친 뒤 기권한 적이 있다. 생애 두 번째 기권.

벙커에 깊게 박힌 공이 자신의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공을 꺼내고 있는 김아림(왼쪽 사진). 김아림이 공을 확인한 뒤 다시 놓고 벙커샷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라이 개선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났다. 프리랜서 박태성 기자 제공

기권 사유는 잘 알려진 대로 이 대회 1라운드에서 나온 벙커샷 논란 때문이다. 7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이 벙커 안 모래에 공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박혔다. 자신의 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기위원을 불렀다. 경기위원의 ‘OK’ 사인에 따라 공을 확인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공을 처음과 다르게 내려놓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푹 박혔던 공을 어느 정도 꺼내 놓고 친 게 라이 개선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골프는 늘 원래 있던 상태 그대로 쳐야한다는 기본적인 규칙을 어겼기에 2벌타에 해당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플레이가 이어졌다. 김아림 동반자들이 공의 위치가 잘못됐다고 지적했지만 “공을 쳐도 된다”는 경기위원의 말에 강한 이의제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경기 후 TV 중계팀 제보 등으로 논란이 커지자 당시 상황을 확인한 KLPGA 경기위원회는 “경기위원의 잘못된 판정”이라고 오심을 인정했다. 다만 경기위원회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보니 공을 확인하고 치는 과정까지는 경기위원이 개입했고 선수는 이를 따랐을 뿐”이라며 “선수의 규칙 위반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김아림은 해당 홀에서 보기를 적어냈다. 당시 경기를 담당한 경기위원은 “벙커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선수 뒤에서 과정을 지켜봤다”며 “뒤에서 봤을 때는 원래대로 공이 박힌 것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영상으로 확인하니 전혀 다른 상황이 돼 있었다”고 해명했다.

자신에 유리하도록 룰을 이용했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은 김아림 측은 “논란으로 인해 동료 선수들과 협회, 스폰서 등 투어에 피해를 준 것 같아 책임지고 기권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아림의 한 지인은 “순간적으로 룰에 대해 착각을 했다고 하더라. 의도한 건 아닌데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 기권을 결심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한 골프전문가는 “벙커샷 논란에 앞서 KLPGA 경기위원회 대처도 미흡했다. 현장에서 문제를 바로 인지해 원래 상태로 공을 돌려놓도록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거나 아님 스코어카드 제출 이전이었다면 2벌타를 미리 부과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경기위원 출신 한 골프 관계자는 “선수들이 해외 진출을 위해 영어, 일본어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인 룰을 잘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개선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KLPGA는 10월에만 전체 상금 규모 60억 원이 넘는 4개 특급대회가 쏟아진다며 ‘골든 먼스’라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외형적인 성장의 단맛에 취해 정작 경기 운영 등은 소홀히 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디 오픈 출전 당시 퍼팅 연습을 하고 있는 필 미컬슨. 동아일보DB

미컬슨은 ‘퍼팅 사건’ 후 2주 만에 출전한 디오픈 연습라운드 때 그린 옆 리더보드에 우연히 ‘규칙은 알고 골프 하니?(Think you know the Rules)’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마침 퍼팅 연습을 하던 미컬슨이 다시 한번 룰 위반에 따른 세인의 조롱 섞인 입방아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신뢰는 쌓긴 힘들어도 잃기는 쉽다.

특유의 ‘배꼽 인사’로 유명한 김아림. KLPGA투어 제공

평소 김아림은 호쾌한 장타에 플레이 도중 수시로 선보이는 ‘배꼽 인사’로 필드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175cm의 큰 키에 차세대 대형 스타로 주목받았다. 이번 시즌 전반기 마지막 대회에서 첫 우승을 신고한 뒤 기대감을 높였다.

벙커샷 논란에 대해선 본인도 아쉬운 부분도 많을 것 같다. 의도성은 없었다고 하나 배나무 밑에서는 갓끈도 고치지 말라고 했다. KLPGA의 허술한 경기 운영과 대처도 원성을 샀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 있다고 한다. 우선 실망한 팬들의 목소리부터 귀담아 헤아려야 할 것 같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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